젠슨 황 "한국 PC방 없었다면 지금의 엔비디아도 없다" 평가…어떤 연관?
PC방 폭발적으로 늘면서 엔디비아 고성능 그래픽 카드 '지포스' 수요 급증 "GPU 기반 가상화폐 채굴기 효율적" 소문에 물량부족 이어져 두 번째 활황
[뉴스웍스=채윤정 기자] 지난주 15년 만에 공식 방한한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한국의 PC방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엔비디아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왠 PC방?'이라는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젠슨 황은 한국의 PC방과 용산 전자상가가 현재의 엔비디아를 있게 했다고 밝혔는데, PC방과 도대체 어떤 연관이 있는지 관심을 끈다.
젠슨 황은 지난달 30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및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서 '치맥 회동'을 가진 것이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젠슨 황은 이 회동에서 "한국 게이머와 PC방 업주가 엔비디아의 초석이었다"며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젠슨 황은 이날 코엑스에서 열린 엔비디아 그래픽카드(GPU) '지포스'의 한국 출시 25주년 행사에서 "엔비디아의 첫 시장은 PC 게임이었고, 한국은 스포츠라는 새로운 혁명의 중심지로 한국에 아주 오래 머물렀다"고 언급했다. 한국어로 '피시방'이라고 발음하기도 했다.
그는 "엔비디아가 발명한 GPU, 지싱크(G-SYNC), 저지연 리플렉스 등은 모두 e스포츠 덕분이고 한국 덕분"이라며 "인공지능(AI) 핵심 인프라로 꼽히는 그래픽처리장치(GPU) 등이 e스포츠와 한국 때문"이라고 공을 돌렸다.
엔비디아는 젠슨 황이 1974년 오리건 주립대학교에서 전기공학 학사, 1992년 스탠퍼드 대학원에서 전기공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1993년 창업한 회사다.
1990년대 후반 한국 PC방 붐이 엔비디아 성장에 큰 영향을 준 일화는 매우 유명하다. 젠슨 황은 1990년대 중반부터 한국을 매우 자주 방문했다. 한국에서 PC방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고성능 그래픽 카드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젠슨 황이 한국에 오면 가장 먼저 들리던 곳이 용산전자상가였다. 젠슨 황은 회사를 알리기 위해 용산 전자상가를 찾아 각 상가를 돌아다니며 점주들과 대화를 나눴다. 직접 명함을 돌리며 영업했다.
용산은 당시 아시아 최대 규모 전자제품 상가였다. 대부분 PC방용 PC가 용산 전자상가에서 조립·공급됐기 때문에 소비자와 업주들의 피드백을 직접 듣고 시장 트렌드를 파악하기에 최적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용산에서 엔비디아 교육관을 열었을 때 젠슨 황은 직접 한국을 방문해 강연할 정도로 한국 PC방에 진심이었다.
특히 1990년대 용산에서 PC를 조립해 사용하던 세대라면 엔비디아의 지포스 그래픽 카드를 모를 수 없다.
엔비디아가 CPU보다 훨씬 더 빠른 연산이 가능한 컴퓨터용 게임 그래픽카드 '지포스' 시리즈를 개발한 것은 게임 업계에 엄청난 파란을 일으켰다.
전 세계 엔비디아 팬들에게는 젠슨 황이 애증의 대상이기도 하다. 매 세대마다 그래픽카드 라인업을 단계적으로 극도로 세분화해서 팔기 때문에 일찍 그래픽카드를 구매한 사용자들에게는 가격은 더 싼데 성능은 비슷한 하위 카드가 나오는 상황이 불쾌할 수밖에 없다.
젠슨 황의 유명 어록으로 "The more GPU you buy, the more money you save(그래픽카드를 많이 살수록 더 많은 돈을 아끼게 된다)"는 말은 아직도 회자되고 있을 정도다.
2000년대 초 스타크래프트의 열풍과 함께 전국적으로 PC방이 2만개까지 늘었다. 이 시기에 엔비디아의 그래픽 카드 '지포스'는 수많은 컴퓨터에 탑재되며 폭발적인 성장을 이끌었다.
다만 엔비디아가 게임 업계를 한정으로 영업을 진행하다 보니, 당시 아직은 크지 않은 회사에 불과했다. 엔비디아가 큰 규모의 회사로 성장하는 데는 가상화폐(암호화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대량의 그래픽 카드들이 암호화폐 획득 목적의 채굴기로 사용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그래픽 카드 물량 부족이 심해지는 현상이 벌어졌다. 이에 따라 컴퓨터 가격이 일제히 폭등해 전 세계적으로 큰 혼란을 줬다. 'IT 석유 파동'으로 봐도 무방하다고 평가된다.
GPU 기반 채굴기가 기존 CPU 대비 훨씬 효율적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엔비디아는 두 번째 큰 활황을 맞게 됐다.
이더리움·라이드코인 등 많은 코인이 엔비디아 GPU로 채굴되기 시작했다. 채굴 붐일 때마다 전 세계적으로 그래픽카드가 동이 났다. 게이머들은 GPU 품귀 현상에 '그래픽카드가 금값이야'라고 외치기도 했다.
엔비디아가 책정한 총 권장소비자가격(MSRP)부터 10만원 이상씩 올랐다. 수급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2020년 12월 15일 이전 가격과 비교해 상당히 오른 가격으로 거래될 수밖에 없었다.
엔비디아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채굴업자들이 게이머용 그래픽카드를 LHR(라이트 해쉬 레이트) 모델을 내놓으며 채굴 효율을 인위적으로 낮추기도 했다. 이는 게이머들에게 돌아가야 할 그래픽카드를 돌려주겠다는 의도였다.
2022년 이더리움이 채굴에서 지분증명으로 전환되며, GPU 채굴 수요는 확 줄었다. 엔비디아 그래픽카드 가격도 급락했다. '채굴 시대가 끝났다'는 자조 섞인 평가가 나왔다.
이 시기에 엔비디아에 대해 '보여 주기 식' 행보라는 비난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래픽카드 물량이 부족하다'는 관련 업계의 주장과 달리 의도적으로 물량을 통제하고 있다가 채굴시장 붕괴로 역풍을 맞았음에도 인상한 가격을 포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AI 시대에 돌입하면서 LLM 기반 오픈AI의 '챗GPU'가 등장했고, 오픈AI가 GPT를 훈련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 엔비디아의 GPU인 것이 밝혀지면서, 너도나도 GPU를 확보하는데 혈안이 됐다.
엔비디아가 지난 5~7월까지 기록한 매출은 467억 달러(64조4000억원)에 이른다. 영업이익률도 60~70%에 달하고 있다. 특히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은 최근 5조 달러(7231조원)를 넘어서기도 헀으며, 4~5조 달러 대를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12시 30분 기준 엔비디아 시가총액은 4조 7436억원에 달한다.
젠슨 황이 이번 방한 때 엔비디아의 뿌리이자 정체성인 게임용 GPU로 한국을 찾아 메시지를 전달한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겼다.
한편, 젠슨 황이 '한국의 차세대 산업혁명'이라는 제목으로 31일 유튜브 계정을 통해 올린 '한국 헌정 영상'은 아직도 큰 화제가 되고 있다. 3분 16초 길이로 제작됐다.
젠슨 황 CEO는 "대한민국,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나라. 여러분의 결단력과 희생으로 단순한 재건을 넘어 역사상 가장 빠른 산업화를 이뤘다"고 설명했다.
이어 "작은 공방에서 시작해 대규모 공장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한국을 만들었다"며 한국의 철강, 반도체, 전자제품, 선박, 자동차 분야는 물론, 기술을 통해 전 세계에 한국의 이름을 알렸다고 소개했다.
영상에는 과거 설탕 공장, 가전 및 자동차 공장 등 산업 현장의 사진 및 영상 여러 장이 포함됐다.
젠슨 황은 "한국이 삼성, 현대, SK, 네이버, LG에 이르기까지 디지털트윈, 스마트로봇, 스마트 팩토리, 산업혁명에서 AI 혁명으로 한국은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며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으로 생각한다. 기적이 계속되는 이곳 한국에서"라고 영상을 끝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