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조정조서 없는 퇴거 합의…임대인만 두 번 우는 이유

2025-11-06     차진형 기자
엄정숙 법도 종합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명도 분쟁 현장에서 역설적인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임차인과 원만히 합의해 법정 다툼을 피하려던 임대인들이 오히려 더 큰 손해를 입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임대차가 종료된 후 임차인이 자진 퇴거를 약속했음에도 실제로는 나가지 않아, 임대인이 다시 법원 문턱을 넘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불상사가 발생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당사자 간에 작성한 퇴거합의서는 임대차 종료 의사를 문서로 남긴 것에 불과하며, 법적으로 강제집행 효력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임차인이 합의 내용을 이행하지 않으면 결국 임대인은 명도소송을 새로 제기할 수밖에 없다.

우리 민사집행법상 강제집행이 가능하려면 판결문, 조정조서, 제소전화해조서 등 이른바 '집행권원'이 필요하다. 아무리 정중하게 작성된 합의서나 각서라 하더라도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따라서 임대인이 소송을 제기하지 않고는 퇴거를 강제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법원을 통한 조정절차나 제소전화해를 활용하면 합의 내용을 법원 조서로 남길 수 있다. 이 경우 추후 불이행 시 별도의 소송 없이도 즉시 강제집행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전혀 다르다.

실무에서는 제소전화해를 통해 합의를 미리 법적 절차로 확보해 두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조정절차 역시 합의 내용을 법원 조서로 확정시킬 수 있어 강제집행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다. 명도소송을 피하려다 오히려 두 번의 소송비용과 시간을 잃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초기 대응의 미숙함에서 비롯된 결과다.

현장에서는 임차인이 합의 후에도 점유를 유지하거나 제3자에게 점유를 넘기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점유이전금지가처분을 함께 신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임차인이 신뢰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반드시 병행해야 할 조치다.

임대차 종료 후 명도 문제는 '시간이 곧 손실'인 사안이다. 한 달이 지체될 때마다 임대인의 기회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따라서 합의가 성립됐다면 단순 문서로 남기기보다, 반드시 법원을 통해 조정이나 제소전화해 절차로 옮겨야 한다. 이것이 임대인이 두 번 우는 상황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엄정숙 법도 종합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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