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규제 역풍…주담대 잡으려다 '전세시장'까지 얼었다
4대 은행 전세대출 4개월째 100조 정체 서울 전세 매물도 2만4000건 제자리
[뉴스웍스=정희진 기자] 금융권의 대출 규제가 강화된 이후 전세시장이 급속히 얼어붙고 있다. 정부가 가계부채와 주담대 과열을 억제하기 위해 대출 규제를 강화했지만, 이 과정에서 전세자금 흐름까지 묶이면서 전세 공급이 위축되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4대 시중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전세자금대출 잔액은 6월 98조9319억원에서 10월 100조751억원으로 사실상 제자리 수준에 머물렀다. 같은 기간 주택담보대출은 484조원대에서 495조원대로 늘어난 것과 대조적이다.
거래량이 줄었음에도 주담대 잔액이 늘어난 것은 다소 이례적이다. 이는 신규 매수 증가가 아니라, 기존 차주들이 금리 인하에 자금 확보를 위해 대출을 갈아타거나(대환) 생활자금 목적의 대출을 미리 받아두는 사례가 늘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금리 하락 기대감 속에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 상품으로 옮기는 수요가 많았고, 향후 규제 강화로 대출 한도가 줄 것을 우려한 차주들이 선제적으로 유동성을 확보한 영향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규제 강화로 신규 매수 수요는 줄었지만, 기존 차주의 대환과 생활자금 목적 대출이 늘면서 주담대 잔액이 증가한 측면이 있다"며 "시장 거래는 위축됐지만 잔액만 불어난 것은 이런 비거래성 수요가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시장 유동성 전반이 얼어붙었다. 매매 거래가 빠르게 줄었고, 전세 매물도 늘지 못한 채 보합세에 머물렀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Asil)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 매물은 6월 7만4779건에서 10월 6만4618건으로 13% 이상 줄었다. 같은 기간 전세 매물은 2만4279건에서 2만4861건으로 사실상 제자리 수준을 보였다. 규제의 여파가 매매시장뿐 아니라 전세시장 전반으로 번지며, 거래와 공급이 동시에 식어가는 양상이다.
10·15 대책 이후 시장 위축은 한층 뚜렷해졌다. 정부가 서울 전역을 규제지역으로 지정한 데 이어 경기권 12개 시·군까지 포함시키면서 수도권 전반으로 규제 강도가 확대된 영향이다. 서울의 전체 매물 수는 11만8099건에서 11만226건으로 줄었고, 수도권 전체로도 17만4738건에서 16만5348건으로 감소했다.
전세 매물 감소의 배경에는 정부의 연속된 대책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6·27 대책에서는 전세대출을 가계부채 총량관리 항목에 포함하고 다주택자 신규대출을 제한했다. 또 전입 의무를 강화해 실거주 목적이 아닌 대출을 차단했다.
9·7 대책에서는 임차보증금 7억원 초과 고가 전세의 담보인정비율(LTV)을 60%에서 40%로 낮추고, 고소득층 대출 한도를 축소했다. 이어 10·15 대책에서는 법인·다주택자·고소득층 전세대출을 전면 제한하며 규제지역을 서울에서 경기 주요 도시로 확대했다. 그 결과 수도권 전반에서 매물과 거래가 동시에 위축됐다.
국민은행 부동산연구팀은 '주택시장리뷰'에서 이러한 흐름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연구팀은 "대출 규제로 갭투자가 어려워지면서 전세물량이 감소한 데다, 신규 입주 예정 물량까지 줄어들어 공급 부족 현상이 장기화하면서 전세가격 상승 압력이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전세 공급물량 부족 현상이 이어지면서 향후 전세가격은 추가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