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온실가스 감축안 발표에도…한국 기후금융 제도적 뒷받침 부족"

[뉴스웍스가 만난 사람]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총장 "기후위기 해결 5년짜리 정권 아젠다 아니다" "정책·투자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시장 반응"

2025-11-14     정희진 기자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총장. (사진제공=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뉴스웍스=정희진 기자] 정부가 지난 10일 '녹색 성장'을 위한 온실가스 감축안을 내놓으면서 기후위기 대응에서 금융권이 맡아야 할 역할도 더욱 무거워지고 있다. 탈탄소 전환의 방향이 제시된 만큼 이를 뒷받침할 금융·산업 구조의 변화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ESG 공시 의무화, 금융배출량 산정, 감축목표 설정 등 전환정책의 기반이 되는 핵심 제도는 여전히 장기간 논의에만 머물러 있다. 정책 방향이 제시됐음에도, 정작 이를 실행할 제도적 틀은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종오 사무총장은 한국 ESG·기후금융의 초기 현장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봐 온 인물이다. 2006년 창립 준비 단계부터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 실무를 맡아 금융기관·정부·시민사회와 함께 책임투자 체계를 확산시키는 데 주력해 왔다. ESG가 국내에서 생소하던 시절부터 지속가능성 보고서, 기후 데이터, 금융 배출량, 기업 관여활동 등을 제도권 의제로 끌어올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14일 뉴스웍스가 만난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총장은 “정책 방향은 나왔지만, 이를 실행할 제도적 틀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금융권이 직면한 과제를 조목조목 짚었다.

- 왜 한국 금융권은 여전히 화석연료에 173조원을 투자하나

"화석연료 투자가 오랫동안 '수익성과 안정성'을 갖춘 투자로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석탄은 한국 제조업 구조에서 가장 저렴한 전력원으로 활용됐고, 발전 공기업이 운영을 보장하는 만큼 채권·보험 모두 위험이 낮다고 판단해 왔다.

문제는 이런 판단이 발전단가만 본 '협의의 비용 계산'에 기반해 있었다는 점이다. 미세먼지·건강 피해·폐기물 처리 등 사회적 비용까지 감안하면 석탄과 원전은 결코 싼 에너지가 아니다. 기술 발전과 정부 지원으로 재생에너지 단가는 더 내려가며 시장 구조가 빠르게 바뀌는 중이다.

또 하나는 장기 투자를 감내할 인내자본의 부족이다. 기후전환 투자는 중장기 전략이 필요한데, 한국 금융은 단기성과 중심으로 움직여왔다. 기후 분야가 본격적으로 수익성을 갖추기 시작했지만 금융권의 관성은 여전히 완전히 바뀌지 못한 상태다."

- 기후위기, 금융권에 비용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이미 일부 금융 부문에서는 기후위기가 직접적인 비용 증가로 나타나고 있다.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곳이 보험업이다. 자연재해가 빈발해지면서 주택·농작물 등 손해보험 분야의 손실률이 크게 높아졌다. 미국은 산불·홍수로 일부 지역의 주택보험 인수를 아예 중단하기도 했다. 국내 농작물보험도 기후 예측이 어려워지면서 손해율이 급증했다.

보험은 본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한 장치인데, 기후 불확실성이 너무 커지면서 오히려 보험사가 위험을 감당하지 못해 인수 자체를 꺼리는 역전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단순히 개별 상품의 문제가 아니라 보험 산업의 시장 자체가 축소될 수 있다는 신호다."

- 기후 스트레스테스트 의무화가 어려운 이유는

"기술적 한계보다는 한국 관료조직의 '추격 전략' 인식이 더 큰 문제라고 본다. 한국은 오랫동안 해외 제도를 보고 따라가는 방식으로 산업을 성장시켰지만, 기후위기처럼 전환기에는 이 전략이 통하지 않는다. 선제적으로 기준을 만들고 룰세터가 되는 국가가 경쟁력을 갖는다.

EU는 이미 의무 공시와 스트레스테스트를 강하게 밀어붙이며 글로벌 기준을 만들고 있다. 반면 우리는 "외국도 완전히 의무화한 건 아니다"라는 이유로 도입을 미루고 있다. 이는 결국 뒤따라가는 구조를 고착화한다. 기술 산업에서 노키아가 뒤처졌듯, 기후금융에서도 늦으면 금융 시스템 전체가 경쟁력을 잃게 된다."

이종오 사무총장이 세이프하버 제도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사진=정희진 기자)

- KoSIF가 제안하는 '세이프하버 제도'란?

"세이프하버는 ESG 공시를 시작하는 초기 단계에서 기업이 과도한 법적 부담을 지지 않도록 일정 부분 책임을 면제해주는 장치다. ESG 데이터는 정량·정성 요소가 섞여 있고 측정 방식도 완전히 표준화돼 있지 않기 때문에, 공시를 시작하자마자 '허위공시' 논란이나 법적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가 기업 쪽에 오래전부터 있었다. KoSIF가 세이프하버를 제안한 이유도 이런 불확실성을 완전히 해소하자는 취지라기보다, 일단 공시를 시작하게 만드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하자는 데 있다.

세이프하버가 도입되면 기업은 공시 리스크에 대한 두려움 없이 ESG 데이터를 공개할 수 있고, 감독당국은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산업별 기준을 정착시킬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이 제도가 영구적인 보호막이 아니라는 점이다. 공시 체계가 안착되면 세이프하버는 자연스럽게 사라져야 한다.

금융권에는 두 가지 변화가 예상된다. 첫째, 기업 공시 데이터의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금융기관들이 실제 기후·ESG 리스크를 분석할 수 있는 기반이 생긴다. 둘째, 산업 전반의 공시 수준이 일정하게 맞춰지면 투자·대출 심사에서도 '데이터 부족'이 아닌 질적 비교와 리스크 관리가 본격적으로 가능해진다. 결국 세이프하버는 공시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장치가 아니라, 공시 체계를 출발선에 올리는 역할을 하게 된다."

- 금융권이 지금 당장해야 할 현실적 조치는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공시 의무화다. 지금처럼 기업이 각자 방식으로 ESG 정보를 자율 공시하면 금융권은 기업 간 배출량과 리스크를 비교할 수 없다. 대출·투자·보험 인수의 기초가 되는 데이터가 공시인데, 기준이 통일되지 않으면 금융배출량 산정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정보 공개를 제도적으로 정착시키는 것이 출발점인 이유다.

두 번째는 공시된 데이터를 토대로 금융배출량을 산정하고, 그에 맞는 감축 목표를 세우는 일이다. 감축은 '의욕'이 아니라 기후과학에 기반해야 한다. 그 기준이 SBTi(과학기반감축목표 이니셔티브)의 '1.5도'다. 금융권도 이 기준에 따라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마지막은 실행이다. 목표를 세운다고 배출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금융기관은 투자·대출 기업에 대해 관여활동을 해야 한다. 배출이 과도하게 증가하는 기업에는 개선을 요구하고, 필요하면 투자 축소나 철회까지 포함해야 한다. 이는 고객의 자산을 보호해야 한다는 스튜어드십 원칙에 기반한 금융의 핵심 책무이기도 하다."

- 한국형 공시 기준 문제는

"현재 국제 무대에서는 여러 공시 기준이 병존한다. 그중 한국이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은 IFRS 재단 산하 ISSB가 만든 IFRS S1(일반 공시 요구사항)과 IFRS S2(기후 관련 공시 기준)이다. 

한국은 ESG 공시 의무화를 추진할 경우 이 가운데 IFRS S2를 기반으로 '기후 공시'부터 시작하는 방향을 논의하고 있다. ISSB 기준의 핵심은 단일중대성, 즉 지속가능성 이슈가 기업의 재무 성과에 미치는 영향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다.

문제는 한국이 ISSB 기준을 채택하면서 단일중대성만 적용하기로 사실상 결정했지만,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인권·노동·공급망 영향 등 기업이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공시해야 한다고 요구해온 시민사회는 이 부분에서 아쉬움을 제기하고 있다."

- 한국형 공시 기준을 도입할 경우 역효과는

"공시는 일부 영역에서 국가별 특수성이 반영될 수 있지만, ESG 전체를 '한국형'이라는 이름으로 별도 설계하는 방식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ESG 공시는 투자자가 활용하는 정보인 만큼, 국가별 특수성보다 국제적 정합성과 비교 가능성이 우선돼야 하기 때문이다.

지배구조나 기후정보처럼 이미 글로벌 표준이 자리 잡은 영역은 특히 그렇다. 예컨대 한국 기업집단의 특수한 지배구조를 이유로 공시 기준을 따로 만들면, 해외 투자자 입장에서는 오히려 불투명성이 높아진 것으로 인식될 수 있다. 국제 시장에서 한국 기업이 평가받는 기준은 결국 글로벌 표준이기 때문이다.

한국형 기준이 필요한 경우는 특수성이 불가피한 일부 인권·노동 분야 정도이며, 그 외 영역까지 일괄적으로 'K'를 붙이는 방식은 오히려 국제 기준과의 정합성을 해칠 가능성이 크다."

이종오 사무총장이 기자의 질문에 답을 하고 있다. (사진=김다정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연구원)

- 정부 감축 목표 '53~61% 레인지'의 문제점

"이번에 정부가 제시한 감축 목표는 산업계·시민사회·기후과학의 견해 차이가 그대로 드러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범위를 제시하는 방식 자체가 금융권과 산업계에 잘못된 유인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53~61%라는 레인지를 주면, 실제 현장에서는 상단이 아니라 하한선인 53%에 맞추려는 경향이 생긴다. 비용을 최소화하면서도 '정부 목표는 충족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과감한 감축이 필요한 전환기 국가 입장에서는 오히려 부정적 신호가 된다.

금융권 입장에서도 이 간극은 뚜렷하다. 금융은 정책 목표를 기준으로 리스크 관리와 투자 전략을 설계하는데, 목표 자체가 모호한 범위로 제시되면 감축 속도와 경로를 명확히 예측하기 어렵다. 결국 금융기관은 보수적인 쪽, 즉 최소 감축 시나리오를 기준으로 계획을 세우게 되고, 이는 국가 전체 감축 속도를 늦출 수 있다."

- 레인지가 아니라 단일 숫자 제시가 타당한가

"가장 객관적인 기준은 IPCC(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가 제시한 감축 경로다. IPCC는 2035년까지 약 61% 감축이 1.5℃ 목표를 지키기 위한 최소 조건이라고 본다. 

산업계가 제시한 48%는 '현실적 부담'을 이유로 든 수치지만, 현실이라는 것은 단기 비용만을 기준으로 산정된 현실인지, 장기적 전환비용과 기후 리스크까지 고려한 현실인지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된다. 단기적 부담을 줄이는 선택이 장기적으로 더 큰 비용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현 정부가 이전보다 기후·ESG 정책을 실용적으로 접근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긍정적이라고 본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일관성과 지속성이다. 우리나라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후·ESG 정책이 단절되는 경험을 반복해 왔고, 그 결과 산업계와 금융권은 이를 '5년짜리 아젠다'로 인식해 왔다. 기후위기는 그런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어떤 방향을 정했다면, 과거로 되돌릴 수 없는 현재를 만드는 수준까지 정책·투자가 뒷받침돼야 시장이 움직인다.

또 하나는 정책의 파편화 문제다. ESG·기후 정책은 생태계 전체가 맞물려야 효과가 나는데, 지금은 특정 이슈가 부각될 때마다 하나씩 덧대는 방식이 반복되고 있다. 산업재해, 공급망, 공시, 조달 등 개별 규제를 따로 강화하는 방식으로는 전체 그림이 정합적으로 작동하기 어렵다. 금융기관, 기업, 평가기관, 검증기관, 소비자, 정부가 모두 하나의 흐름 속에서 정보를 주고받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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