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국내 125조 '통 큰' 투자…전문가들 "수익성 확보가 과제"
역대급 투자 발표엔 '환영'…실질적 신규 투자 비중 제한에는 '아쉬움' 수익성 둔화 땐 투자 지속성 '흔들림' 우려…노사 안정·규제 개선 필요
[뉴스웍스=정현준 기자] 현대차그룹이 향후 5년간 국내에 총 125조2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16일 발표했다. 이는 연평균 25조원을 투자하는 것으로 직전 5년 대비 40% 이상 늘어난 역대 최대 규모다.
업계에서는 국내 산업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을 대규모 투자라는 평가 속에서도, 지속적인 수익성 확대가 뒷받침되어야 하며, 공급망·산업 생태계 구축과 노사관계 회복 등의 과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이번 발표는 지난 16일 주요 그룹 총수가 참석한 한미 관세 협상 후속 조치 회의 직후에 전격 공개됐다. 이를 두고 한미 양국 간 3500억달러(약 510조원) 전략적 투자 업무협약(MOU) 체결로 국내 투자가 위축될 것이란 우려를 의식해 정부 요청에 기업들이 화답한 성격이 강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차그룹은 투자를 ▲인공지능(AI)·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전동화·로보틱스·수소 등 미래 신사업에 50조5000억원 ▲신제품·핵심기술 확보를 위한 연구·개발(R&D) 38조5000억원 ▲생산·운영 기반 유지를 위한 경상 투자 36조2000억원으로 각각 배정했다.
또한 국내 생산 거점 경쟁력 강화를 위해 완성차 수출 지역을 다변화하고, 전기차 전용 공장을 글로벌 마더팩토리로 육성해 수출을 확대하기로 했다. 완성차 수출은 지난해 218만대에서 2030년 247만대, 같은 기간 전동화(EV·PHEV·HEV·FCEV) 차량은 69만대에서 176만대로 확대 목표를 제시했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현대차·기아와 직접 거래하는 1차 협력사의 대미 15% 관세 부담을 현대차그룹이 전액 지원하기로 한 점이다. 현대차그룹의 미국 생산법인에 공급하는 과정에서 실제 부담한 관세를 매입 가격에 반영하는 방식이다.
이 밖에도 직접 거래가 없는 2·3차 중소 협력사 5000여 곳을 대상으로 신규 지원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원자재 구매와 운영자금 확보, 이자 상환 등을 지원한다. 그룹 차원의 공급망 상생 기조를 한층 강화한 셈이다.
그러나 업계 일각에서는 기대만큼 '새로운 투자'라고 보기 어렵다는 신중한 평가도 나온다. 대규모 국내 투자 발표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실질적 신규 투자 비중이 제한적이라는 점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향후 투자의 지속 가능성이 노사관계 안정과 제도적 지원에 달려 있다고 내다봤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AI 데이터센터, 수소, 로봇 등 신사업에서 직전 5년 대비 36조원이 늘어난 것은 의미가 있다"면서도 "협력사 상생 프로그램은 이미 운영 중인 내용이고, R&D·경상 투자도 기존에 계속해 온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향후 핵심 과제로 공급망·산업 생태계 구축을 꼽았다. 특히 소재·부품·장비(소부장) 협력업체들이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 체계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연구위원은 "현대차가 협력업체 지원 확대를 약속한 만큼, 정부도 현대차 중심 공급망을 어떻게 육성하고 어떤 정책적 지원을 제공할지 구체적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국내 투자 확대는 일자리 창출과 내수 활성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특히 1·2차 협력업체가 부담해야 할 대미 관세 비용까지 지원하겠다는 것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차원의 결정"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올해 영업이익이 지난해 약 29조원보다 15%가량 감소하는 수준이라면 감내할 수 있겠지만, 20% 이상 줄어든다면 향후 5년간 공언한 투자를 지속적으로 집행하기에 자금 여력면에서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국내 투자의 가장 큰 리스크로 꼽히는 것이 노사관계의 불확실성인데, 기업이 대규모 국내 투자를 약속한 만큼, 노사 간에 더욱 원만한 협상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변화가 필요하다"며 "한국은 첨단산업 육성에 필요한 법·제도 환경이 아직도 지나치게 '포지티브 규제' 중심이다. 전문성을 갖춘 담당 조직이 규제체계를 선제적으로 정비하고 산업계가 따라올 수 있도록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