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보레는 뒷전, '2억 캐딜락' 앞세운 한국지엠…진짜 속내는
캐딜락만 올해 연이어 두 차례 출시…쉐보레는 '신차 실종' 2028년 이후 생산 계획에도…정비망 축소에 철수설 고개
[뉴스웍스=정현준 기자] 한국지엠이 판매가 저조한 고가 브랜드 캐딜락에 집중하면서 정작 내수 시장 주력 브랜드인 쉐보레는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고가 수입차 출시에만 몰두하는 이 같은 행보가 철수설을 자초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뒤따른다.
한국지엠은 지난 19일 캐딜락의 전기 SUV '에스컬레이드 IQ'를 국내 출시했다. 가격은 2억7757만원으로, 지난 4월 출시된 '더 뉴 에스컬레이드'에 이은 초고가 모델이다. 캐딜락은 연간 국내 판매량이 1000대에도 미치지 못하는 비주류 브랜드임에도, GM은 해당 브랜드의 모델만 올해 두 번이나 신차를 투입하고 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가 발표한 10월 수입 승용차 등록 자료에 따르면 캐딜락은 올해 1~10월 누적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6.2% 증가한 614대로 집계됐다.
반면 대중 브랜드인 쉐보레는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 올해 1~10월 쉐보레의 국내 누적 판매량은 1만2979대로 전년 대비 38.8% 감소했다. 같은 기간 르노코리아(4만3925대)와 KGM(3만4469대)의 실적과 비교해도 뚜렷한 부진이 이어진다. 지난해 출시를 예고한 '이쿼녹스 EV'는 환경부 인증까지 마쳤음에도 출시가 지연 중이다.
쉐보레 내수 신차가 미뤄지는 사이, 에스컬레이드 IQ는 발 빠르게 인증과 출시를 마쳤다. 업계에서는 내수 확대가 시급한 상황에서 이 같은 '선택적 출시 전략'이 소비자 혼란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한다.
여기에 정비 인프라 축소 움직임까지 더해지며 철수설 논란은 한층 가중됐다. 한국지엠은 지난 7일 노조에 직영 정비센터 9곳 매각 방침을 공식 통보했다. 이는 지난 9월 임단협 타결 당시 고용안정특별위원회에서 논의하겠다고 한 노사 간 합의와 배치되는 결정으로, 노조는 이를 철수 수순으로 보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지엠은 2028년 이후 생산 계획이 있다며 철수설을 부인하면서도 구체적인 신차 일정이나 모델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고 있다. 업계 안팎에서는 국내 소비자와 노조를 안심시킬 만한 실질적 조치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현재 한국지엠이 국내에서 생산 중인 모델은 트랙스 크로스오버와 트레일블레이저 두 대뿐이며, 이 중 96.4%가 수출용이다. 내수 확대를 위한 신차 투입 없이 정비 네트워크까지 축소되면, 소비자 이탈은 피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트랙스 크로스오버는 2026년형 LS 트림 기준 시작가가 2155만원으로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대를 형성했다. 하지만 이를 제외하면 뚜렷한 경쟁 우위를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레일블레이저 역시 성능은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경쟁사 동급 모델보다 시장 존재감은 미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해법으로 하이브리드 신차 출시를 꼽는다. GM은 지난해 9월 현대차와 '포괄적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뒤, 11개월 만인 올해 8월 중남미 시장을 겨냥한 소형 SUV, 세단, 소형·중형 픽업트럭 등 4종과 북미용 전기 밴 1종 등 총 5개 차종을 공동 개발하기로 합의했다. 이 중 4개 모델에는 내연기관과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이 적용되며 하이브리드 기술은 현대차가 제공할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한국지엠이 하이브리드 기술을 활용한 신차를 국내에서 직접 생산하도록 GM 본사를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내수 회복과 시장 신뢰 회복을 위해선 국내 생산 기반 확대가 필수적이며, 이러한 조치 없이 철수설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국내 생산을 통해 매출을 올리고 시장 점유율도 높이는 동시에, 노조의 불안을 해소하고 국내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이 같은 조건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철수설은 앞으로도 계속 제기될 수밖에 없고, 2027년이 가까워질수록 그 목소리는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철수설에 선을 긋는 신중론도 나온다. 권용주 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학과 교수는 "정비센터 매각은 전기차 시대에 따른 구조조정 차원"이라며 "브랜드별 전략 차이일 뿐 아직 철수라 단정하긴 이르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