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노트] 복지를 금융에 떠넘기면 시장이 망가진다

2025-11-21     정희진 기자

[뉴스웍스=정희진 기자] 위험이 높을수록 이자를 더 내는 것이 금융의 상식이다. 그런데 최근 그 상식이 흔들리고 있다. 고신용자가 더 많은 금리를 부담하고, 위험 차주는 오히려 혜택을 받는 역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은행연합회 소비자포털 자료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말 신용점수 600점 이하의 고위험 차주가 윗단계(650~601점) 차주보다 낮은 금리로 가계대출을 받은 은행이 6곳에 이른다.

은행의 본업은 예대금리 차이에서 마진을 창출하는 것이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 지표가 순이자마진(NIM)이다. 그러나 기준금리 인하 기조와 대내외 불확실성이 겹치며 올해 들어 NIM은 정체하거나 하락세로 돌아섰다. 이같이 핵심 수익 기반이 약해지는 상황에서도 정부는 취약 차주 지원과 채무조정을 앞세워 금융기관에 복지 부담을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압박이 금융권의 정권 주기 맞춤형 투자 경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 기조에 호응하기 위해 '향후 5년간 ○○조원 투자'를 약속하는 구조가 반복되지만, 이는 단기적 자본 배분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포용을 멈추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선한 의도'라는 정책 동력만으로는 금융의 지속 가능성을 지킬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확한 위험 분담과 방향성 설정이다. 

우선 금융이 감당할 수 없는 위험(필요 이상의 복지)까지 부담하게 될 때 그 손실을 누가, 어떤 기준으로 책임질 것인지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취약 계층 지원이 필요하다면, 그 부담은 재정과 보증기금 등 정부의 제도적 장치로 흡수돼야 한다. 

또한 은행의 수익 구조를 비난할 게 아니라, 그 수익이 어디로 어떻게 흐를지 명확히 설계해야 한다. 지속 가능한 생산적 금융은 투자 총액 경쟁이 아니라, 중장기적 기업금융 생태계를 통해 이뤄진다.

금융이 사회적 공공재 역할을 수행해 왔다고 시장 원리를 거스르는 공공책임까지 모두 떠안기는 것이 합리적인지는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포용과 상생의 목표가 금융의 기반을 훼손하는 방식으로 적용된다면, 그 피해는 결국 보호해야 할 소비자에게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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