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걸음 더 빨라진 이재용…정부 측면 지원에 연이은 글로벌 거물 회동까지

2025-11-23     채윤정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달 30일 열린 '지포스 게이머 페스티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뉴스웍스=채윤정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행보가 점차 빨라지고 있다. 올해에만 글로벌 경제계 거물들과 수차례 회동하며 삼성전자의 입지를 넓힌 것은 물론, 대미 관세 협상 등 우리 정부의 현안에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이 회장의 내년 행보가 더 기대되는 이유다.

23일 재계에 따르면, 한미 관세협상 과정에서 이 회장은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등과 함께 정부와 현지 동행하며 협상 타결에 큰 힘을 보탰다. 최근에는 이재명 대통령의 해외 순방길을 함께하며 정부를 측면 지원하고 있다.

삼성전자에 정통한 소식통은 "관세 협상은 정부와 기업이 공조하는 것이다. 정부만의 문제가 아닌 만큼 기업이 이를 적극 지원한 것"이라며 "이 회장은 정부 측 인사에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CEO)를 직접 소개할 정도로 수많은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재용(왼쪽) 삼성전자 회장과 샘 올트먼 오픈AI 대표가 최근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열린 '글로벌 AI 핵심 인프라 구축을 위한 상호 협력 LOI 체결식'에서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연이은 정부 동행 출장과 글로벌 CEO 만남…수주 성과로 돌아와

이재용 회장은 지난 7월 29일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 간 무역 협상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 7월 출장에서 정의선 회장과 미국과 관세 협상을 측면 지원하며 상호 관세를 낮추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 7월 30일 큰 틀의 관세 협상을 타결하며, 자동차 관세를 낮추는 데 합의했다. 

그는 8월 15일까지 17일간의 장기 출장을 이어가며 굴지의 글로벌 빅테크 기업 CEO들과 회동했다. 이후 미국 테슬라와 애플 등 굵직굵직한 대규모 파운드리 공급 계약을 삼성전자가 발표한 것은 미국 출장의 성과로 평가된다. 테슬라의 차세대 칩인 'AI6' 생산 계약을 따냈고, 최근에는 'AI5' 칩 제조까지 맡았다. 8월에는 애플로부터 '아이폰'용 이미지 센서 계약까지 따냈다. 파운드리 사업은 매 분기 수 조원의 적자를 내왔으나, 내년 말 이후 본격적인 매출을 거두면 적자 폭도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후 이 회장은 지난 8월 25일 한미 정상회담 경제사절단에 동행한 뒤, 워싱턴 D.C.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했다. 이 출장은 이 대통령의 방미에 맞춰 이뤄진 것으로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 등도 동행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첫 한미 정상회담을 진행했고, 성공적인 결과를 끌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10월에는 일본 도쿄에서 개최된 '한미일 경제 대화(TED)'에 참석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골프 회동에도 참여했다. 한미일 경제 대화는 정·재계 인사가 참석하는 민간 협의체다. 미국에서는 빌 해거티 미국 상원의원, 일본에서는 도요타자동차, 소니그룹 등 경제계 인사들이 참여해 사업 협력을 논의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 초청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소유하고 있는 마러라고도 방문했다. 

이달 17일 이 회장은 이재명 대통령 아랍에미리트(UAE) 국빈 방문 기간에 열린 '한-UAE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 참석을 위해 출국했다. 이 자리에는 정의선 회장, 류진 한경협 회장 등이 참석해 UAE와 첨단 인프라, 에너지, 방산, 문화 등 양국 협력 방안을 모색했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 소장은 "이 회장이 관세 협상을 측면 지원한 것은 관세 결과에 따라 기업에 미칠 파장이 크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을 최대한 반영할 수 있도록 정부에 요청하는 동시에 협상에서 우위를 가져올 수 있는 투자나 기술 지원에 힘을 보태주기 위한 것"이라며 "정부와 기업이 한 팀으로 움직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국내에서도 이 회장과 글로벌 기업 CEO와의 회동은 이어졌다.

샘 올트먼 오픈AI CEO는 10월 1일 삼성전자를 방문해 '글로벌 AI 핵심 인프라 구축을 위한 상호 협력 LOI(의향서)를 체결했다. 이를 통해 삼성전자는 5000억달러(약 700조원) 규모로 조성된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 고대역폭메모리(HBM) 등을 공급하게 된다. 같은 달 30일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정의선 회장과 가진 일명 '깐부 회동'은 아직 회자되고 있다.

이달 13일에는 올라 칼레니우스 메르세데스-벤츠 회장과 만나 삼성이 보유하고 있는 반도체 배터리 분야에서 벤츠와 어떻게 협업할지를 논의했다. 

오는 25일 1박 2일 일정으로 방한하는 무케시 암바니 인도 릴라이언스그룹 회장과의 회동도 주목된다. '아시아 최대 부호'로 알려진 암바니 회장은 이 회장과 함께 수원 사업장을 둘러보면서 미래 사업 협력을 논의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는 5G 통신장비 생산라인과 6G 연구개발 현황을 소개할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올해 하반기 들어 실적이 뒷받침되면서, 이 회장의 행보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반도체·휴대전화 사업도 견조하게 정상궤도로 올라가고 있다"며 "앞으로 이 회장의 대외 행보는 더 적극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해소된 상황에서 적극적 행보는 예상됐던 상황"이라며 "향후에도 글로벌 빅테크 기업 CEO들과 잇달아 만나 성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했다. 

한편으로는 이 회장의 활발한 행보가 초대형 인수합병(M&A)으로 결실을 맺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온다.

최근 삼성전자는 수천억원대 규모나 수조원대의 M&A를 잇달아 발표하고 있지만, 10조원 이상의 초대형 M&A는 하만 인수 이후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 미래 사업 확보를 위해 초대형 M&A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삼성전자는 조직개편을 통해 M&A팀을 신설해 주목된다.

오일선 소장은 "팀 신설로 초대형 M&A에 대한 기대감은 매우 높아졌다"며 "다만 어떤 기업을 어느 시점에 인수합병해 시너지를 낼 지는 좀 더 신중하게 판단할 것으로 본다"고 예상했다. 반면, 박주근 대표는 "팀이 신설됐지만, 초대형 M&A가 곧바로 나올 것 같지는 않다"면서 "내부 사업부와 시너지를 내고 인공지능(AI) 트렌드를 맞춰갈 수 있는 소규모의 M&A에 집중할 것 같다"고 내다봤다.  

전영현(왼쪽) 부회장과 21일 사장단 인사에서 대표이사로 선임된 노태문 사장. (사진제공=삼성전자)

◆'안정' 우선한 사장단 인사…일각에선 "변화 의지 없다" 우려도 

전문가들은 지난 21일 삼성전자의 '2026년도 정기 사장단 인사'에서 윤장현 사장이 CTO를 맡은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기술의 삼성을 강화하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았다는 해석이다.

오일선 소장은 "인사의 큰 특징은 '안정 속 변화’와 ‘기술의 삼성 강화’로 요약할 수 있다. 전영현 부회장과 노태문 사장은 모두 2028년 3월에 임기가 만료된다. 내년에도 현 체제를 유지하면서 노 사장을 대표이사로 선임, 투톱 체제를 좀 더 견고히 한 것"이라며 "이런 가운데, 윤 사장에게 CTO를 맡겨 기술 강화 의지를 피력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1968년생인 윤 사장은 2011년 12월 임원 인사에서 삼성전자 임원에 처음 이름을 올렸다. 당시 43세의 나이로 ‘삼말 사초 임원'(30대 후반~40대 초 임원이 된 슈퍼 인재)에 해당됐다. 특히 그는 3년을 뛰어넘어 임원에 파격 발탁될 정도로 두각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삼성전자는 임원 발탁 사유로 "미 조지아텍 전자공학 박사 출신의 SW 플랫폼 전문가로, SLP(삼성 리눅스 플랫폼)개발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SLP 기반 휴대전화 개발에 성공했다"고 설명했다.

향후 단행될 필드 분야 부사장급 이하 인사에서는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 인재와 외부 영입 인재들이 많이 나올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오일선 소장은 "부사장급 이하 인사가 끝나면 내년 2월 이사회에서 이재용 회장 등기임원 복귀 여부에 관해 결정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며 "등기임원을 맡을지 여부와 이 회장이 대표이사를 맡게 될지도 최대 관심사"라고 평가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인사에 대한 아쉬움도 나타냈다. 박주근 대표는 "큰 폭의 인사가 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최소 폭에 머물렀다. 노 사장의 대표이사 임명은 당연한 사안이고, DS 사업본부의 변화가 없었다. 또한 전 부회장은 메모리 사업부장을 계속 겸직한다"면서 "변화에 대한 의지가 부족하다고 읽힐 수 있는 부분"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반도체 사업부가 3분기 좋은 실적을 거둔 것이 결국 인사에 영향을 미쳤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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