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시, 퇴직공무원만 기간제 근로자로 채용…'끼리끼리 문화' 선 넘었다
감사원 '공직비리 점검'…시장은 방송사 배제하려 2차례나 "입찰 취소" 지시
[뉴스웍스=박광하 기자] 순천시가 기간제 근로자를 채용하는 과정에서 퇴직 공무원들만 채용하는 꼼수를 부리다 적발됐다. 공개채용 절차 없이 전화 한 통으로 21명을 모집하고, 이듬해에는 서류심사 점수를 조작해 퇴직 공무원 20명을 또 뽑았다. 순천시장은 무슨 이유였는지 입찰에 방송사가 참여했다며 화를 내고선 개찰 1시간 전 입찰을 취소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감사원은 25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감찰정보 등 공직비리 점검(Ⅱ)' 감사보고서를 공개했다.
감사 결과 순천시는 퇴직공무원을 특정해 재단법인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조직위원회 기간제 근로자로 채용하고, 순천만잡월드 위탁운영사 선정 과정에서 입찰을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순천시장에게 관련자에 대해 징계나 주의 조치할 것을 요구했다.
◆카페에서 명단 주고받고 월 50만원 수당 요구
"오천그린광장을 관리할 인력이 필요한데 선배님의 도움을 받고 싶다."
2023년 3월 조직위에 파견 근무 중이던 K 국장은 부하직원 L 팀장에게 "오천그린광장을 관리할 인력이 시급하게 필요한데 공고 등 공개채용 절차를 통해 채용하면 박람회 개장까지 인력을 확보하지 못할 수 있어 퇴직 선배님을 활용하는 것이 좋겠다"며 전 순천시 의회사무국장 M에게 연락해 순천시 퇴직공무원으로 관리단을 만들도록 지시했다.
L 팀장의 연락에 M은 "한번 찾아보겠다"며 이를 받아들였다. 며칠 뒤 M은 자신을 포함한 순천시 퇴직공무원 21명을 모았다며 L 팀장에게 전화했다. 두 사람은 조직위 사무실이 아닌 인근 카페에서 만나 수기로 작성된 21명의 인적사항 명단을 주고받았다.
이 자리에서 M은 자신이 관리단장을 맡을 것이며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근무할 것이므로 월 50만원의 활동 수당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K 국장은 L 팀장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M의 요구대로 수당을 주고 적정한 액수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L 팀장은 관리단이 조직위 내규상 임기직 직원에 해당해 특별채용할 수 있고 박람회 기간에 위촉 형식으로 운영하는 것처럼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운영계획을 작성했다. K 국장은 기간제 근로자 채용이 이사회 의결사항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채용의 공정성이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방지한다며 L 팀장에게 이사회 의결도 추가로 받도록 지시했다.
◆낙찰차액 1억원 인건비로 전용…150일 무단결근 방치
관리단 인건비 예산이 없자 L 팀장은 다음 연도로 이월해야 하는 박람회장 운영대행 용역 낙찰차액 중 1억원과 추가경정예산 기타보상금 1억2000만원을 인건비로 집행하도록 운영계획을 작성했다. 이 내용을 이사회 안건에 첨부하면서 낙찰차액을 인건비로 지급한다는 부분을 임의로 삭제했다.
관리단은 공무원연금 감소를 막기 위해 근로계약서를 체결하지 않았고 건강보험 등 4대 보험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급여는 근로소득이 아닌 기타소득으로 처리했다. L 팀장은 M이 선배공무원으로 관리단을 통솔할 수 있다며 근무상황 지도·감독 업무를 M에게 맡겼다.
감사원이 확인한 결과 M은 근무하기로 한 시간보다 적게 근무한 일수가 최소 75일이었고, 관리단은 2023년 4월부터 12월까지 총 150일을 무단 결근했는데도 급여 삭감이나 지도·감독 등 적정한 조치가 없었다.
M 등 순천시 퇴직공무원 21명은 관련 법령에 정한 채용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조직위 직원으로 채용돼 2023년 4월부터 12월까지 무단결근 등을 하면서 총 2억7924만원의 급여를 받았다. M과 N은 지급근거 없이 수당 720만원도 추가로 받았다.
◆서류심사 점수 조작해 퇴직공무원 20명 채용
순천시는 박람회 종료 후인 2024년 2월에도 오천그린광장 질서유지 등이 계속 필요하다는 사유로 관리단과 동일한 업무를 하는 순천시 소속 기간제 근로자를 채용했다. 이 과정에서 관리단 출신 퇴직공무원에게 유리한 채용계획을 작성했다.
순천시 O 팀장은 관리단을 그대로 채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채용공고상 응시자격을 '행정기관 근무 경력이 많은 자' '해당 주요업무 관련 근무 경력이 많은 자'로 정했다. 채용업무 담당자를 서류심사 및 면접시험 위원으로 위촉하고, 서류심사에서 관리단 출신 순천시 퇴직공무원 14명에게는 각각 14점씩을 부여했다.
반면 순천경찰서 등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다른 응시자에게는 정당한 점수 10점이 아닌 4점을 부여했고, 초등학교 경비원 근무 경력이 있는 응시자에게는 정당한 점수 6점이 아닌 2점을 부여하는 등 순천시 퇴직공무원이 아니면서 우대요건에 해당하는 응시자 24명 중 7명에 대한 서류심사 점수를 부당하게 부여했다.
O 팀장은 서류심사 대상 응시자가 75명으로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는 사유로 서류심사 평가 전날 평가항목 중 3개 항목에 대해 엑셀프로그램을 이용해 미리 점수를 산정했다. 서류심사 당일 이 같이 평정한 평가표를 다른 서류전형 심사위원에게 주고 자신이 채점한 그대로 평정하도록 요청했다.
O 팀장은 면접시험에서 응시자에게 시청 근무 경력을 질문해 다른 면접심사위원도 응시자가 순천시 퇴직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알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지난해 오천그린광장 안전관리 기간제 근로자 20명 모두 순천시 퇴직공무원이 채용됐고, 이 중 14명은 2023년 관리단으로 근무했던 M 등 순천시 퇴직공무원이었다.
◆전 시장 "방송사 참가" 화내며 개찰 1시간 전 입찰 취소 지시
순천만잡월드 위탁운영사 선정 과정에서도 비리가 드러났다. 전 순천시장 P는 2021년 1월 투찰 예정일 전날 과 사업담당자 등을 집무실로 불러 방송계열사가 입찰에 참가한 데 대해 불만을 표시하면서 "공고를 취소하라"고 지시했다.
순천시는 투찰 예정일인 2021년 1월 28일 14시 직전 응찰한 4개 업체에 유선으로 연락해 "과업내용 보완 및 재검토 필요"라는 사유로 입찰이 취소됐다고 통보했다.
순천시는 이후 입찰참가자격을 '공고일 기준 최근 5년 이내에 어린이·청소년 체험시설을 단일 건으로 10억원 이상 운영한 실적이 있는 업체'로 변경하고, 위탁운영 용역과 시설 유지·관리 용역을 통합 발주하던 것을 분리 발주해 공동수급을 허용하지 않는 것으로 바꿔 2021년 5월 재공고했다.
그러나 재공고에도 방송계열사가 응찰했다. P는 2021년 6월 15일 과장 Q 등으로부터 입찰참가 결과를 보고받고 "방송계열사가 또 참가했다"며 화를 냈다. P는 감사원 문답에서 "방송계열사가 2020년부터 2021년까지 매년 40억여원의 순천만국가정원 위탁운영 용역을 수행할 때 근로자를 해고해 방송계열사에 대해 개인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순천시 R 팀장은 2021년 6월 18일 제안서를 검토하면서 한 업체의 경우 공고일 기준 최근 5년 이내 어린이·청소년 체험시설의 최대 연매출이 4억2507만원밖에 되지 않는 등 운영실적이 입찰참가자격에 미달하는데도 기타매출 23억4947만원 전체를 해당 실적으로 인정해 입찰참가자격이 있는 것으로 보고했다.
R 팀장은 정량평가 점수를 산정하면서 이 업체의 경우 개관한 체험시설의 위탁운영 용역실적이 전혀 없는데도 '유사시설 개관 경험 유무' 항목에 만점인 3점을 부여했다. 그 결과 입찰참가자격조차 없는 업체가 1순위 협상대상자로 부당하게 선정됐다.
이 업체가 위탁운영사로 선정돼 순천만잡월드를 운영했으나 위탁운영 기간 총매출액은 24억6691만원에 그쳤고, 순손실이 36억246만원에 달해 순천시는 적자액의 일부를 위탁사업비 예산으로 지원했다. 위탁운영 기간이 종료된 후 순천만잡월드는 시설 및 프로그램 보완 등을 사유로 운영을 중단해 올해 5월 말까지 운영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