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노트] 1500원 바라보는 환율…코스피 '5000' 의미 되새길 때

2025-11-25     김아현 기자

[뉴스웍스=김아현 기자]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겨누고 있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고 올해 초 탄핵 사태 이후 네 번째로 1480원대를 재차 돌파했다는 점에서 시장이 체감하는 불안의 깊이는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최근 외환당국이 구두개입에 돌입하고, 한미 간 '팩트시트'에 외환시장 안정 문구가 포함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그만큼 환율은 한국 경제 심리의 바로미터다. 문제는 이처럼 환율이 흔들릴 때마다 가장 먼저, 가장 크게 타격을 받는 곳이 언제나 개인 투자자의 지갑이라는 점이다.

올해 국내 주식시장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대한 기대감에 반도체 랠리를 앞세워 '호황'처럼 보였다. 증권가에서는 내년 코스피 전망으로 '7500포인트'를 제시하는 곳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그 속을 들여다보면 활기를 체감하는 투자자는 많지 않다. 11월 들어 외국인은 코스피에서 10조원 넘게 순매도하며 매일같이 매물을 쏟아냈다. 그 빈틈을 개인이 온몸으로 받아내는 모양새다. 

최근 개인 투자자의 신용융자 잔액은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고,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잔고 역시 연중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빚을 내서 주식과 ETF를 사고, 반도체 대형주를 사들이는 '빚투' 열기가 재차 고개를 들었다. 

그럼에도 코스피 지수는 오히려 하락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외국인 매도 공습에 연일 흔들렸고, 결국 3900선이 무너졌다. 개인만 돈을 태우며 시장을 떠받치는 구조는 다시 반복되고 있다.

여기에는 또 다른 역설이 숨어 있다. 바로 '해외주식 급증'이다. 올해 내국인의 해외주식 투자액은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며 원화 약세를 부추긴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금융당국이 "애국투자하자"고 말할 정도로 유출 규모가 커졌다. 물론 해외주식 투자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원화가 약할 때 외화 자산을 대거 사들이는 것은 본질적으로 높은 비용을 치르는 행위다. 원화값이 떨어진 만큼 개인은 더 비싼 가격에 해외주식을 매수하고, 나중에 환율이 정상화되면 상대적인 손실을 떠안게 된다. 전문가들이 '환율이 흔들릴 때마다 개미 지갑만 얇아진다'고 지적하는 이유다.

앞서 한국은행과 국제결제은행(BIS)은 이미 한국의 '환율 구조적 약화'를 경고했다. BIS가 발표하는 실질실효환율(REER)은 한국 원화 가치가 2000년대 이후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고 평가했다. 이는 단순히 달러에 대한 약세가 아니라 한국의 무역상대국 전체 대비 원화 실질구매력이 약해졌다는 뜻이다. 

환율이 높게 유지될수록 수입 물가가 오르고, 소비는 위축되며, 시장은 외국인 수급에 더 휘둘릴 수밖에 없다. 원화가 약할 때마다 한국 금융시장이 이유 없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재확인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환율' 그 자체에 있지 않다. 환율이 오르면 외국인은 더 비싼 원화 자산을 팔아 달러로 바꿔 나갈 유인이 커진다. 지수가 하락하니 개인은 빚을 내 매수한다. 개인이 매수하면 외국인은 더 판다. 지수는 다시 흔들린다. 이 악순환의 끝에서 개인 투자자만 손실을 본다. 

이재명 정부가 공약한 '코스피 5000시대'의 핵심은 이와 다르다. 단순히 지수의 숫자를 높이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한국 경제와 자본시장의 구조가 건강해져 개인들도 시장의 온기를 함께 나눌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메시지였다. 지금의 환율 불안 속에서 우리는 이 의미를 다시 되새길 필요가 있다. 

외국인 수급에 좌지우지되는 구조, 지수는 오르는데 개인은 못 버는 구조, 빚을 내 투자해야만 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는 '코스피 5000'과 거리가 멀다. 코스피 5000은 숫자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원화 가치가 안정되고, 외국인 매도에 시장이 휘청이지 않으며, 개인이 환율·수급에 휘둘리지 않고도 자산을 늘릴 수 있는 시장. 이것이 진짜 '5000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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