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 뜯어고치자] ⑫ 과거에 집착말라
[2부 새로운 정치 - 문제 원인 근절하고 경제위기 다스려 미래 맞이해야]
[뉴스웍스=김벼리기자] 인간의 탐욕과 부패를 에둘러 꼬집은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은 혁명 ‘이후’의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앞서 자신들을 핍박하던 인간을 쫓아낸 동물이 폭력의 주체가 된다는 것. 이 역설은 곧 혁명 ‘이후’를 내다보는 것이야말로 혁명의 ‘완성’을 위한 길이라는 메시지로 이어진다.
혁명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최근 대한민국은 국민들의 분노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분위기만큼은 혁명의 한복판이다. 주말마다 한목소리로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이들의 운집규모를 두고 ‘100만’, ‘200만’ 등 미증유의 숫자들이 쏟아져 나온다.
역사적으로 큰 오점이자 동시에 가능성으로 남을 나날들. 그러나 ‘동물농장’이 주는 교훈이 그렇듯 지금, 여기에만 매몰돼선 안 된다. ‘촛불 이후’, 즉 대한민국의 미래를 다방면으로 궁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 온고지신(溫故知新) 정신 필요…“박정희 패러다임 청산하자”
그러나 ‘미래의 대한민국’을 논하면서 ‘새로움’을 강조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반대다. 드러난 문제의 원인을 철저하게 돌아보지 않은 채 ‘언 발에 오줌누기 식’으로 제시한 대안이란 사실상 문제를 덮는 것일 따름이다.
‘옛 것을 알고 새 것을 하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자세가 필요한 이유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인과의 틀에서 인식하고, 현재의 문제와 미래의 희망은 과거와 떼놓을 수 없다는 인식이 필요한 것이다.
정치적 성향을 떠나 여러 전문가들은 현재 드러난 문제들의 원인을 불완전한 ‘민주화’의 과정에 돌린다. "민주화 이후 30년간 박정희 모델을 청산하지 못한 결과가 최순실 게이트"라는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나 "국가·재벌 동맹을 근간으로 하는 박정희 패러다임의 종말을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분석한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대표적인 예다.
특히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문제에 천착해온 최 교수는 ‘중앙일보’와 ‘박근혜 이후’를 논하는 자리에서 다시 한 번 과거 ‘미완의’ 민주화를 끌어온다.
그는 “민주화 운동을 잘했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나는 것이 아니다. 민주화 이후 선출된 정부들이 좋은 정치를 통해 정부를 잘 운영하고 좋은 정책을 통해 시민들의 사회경제적, 문화적 삶의 질과 국민적 자긍심을 향상시키는 것이 민주주의의 또 다른 절반”이라고 역설한다.
그에 따르면 민주화 이후 여전히 잔재로 남은 ‘박정희 패러다임’은 90년대 말 신자유주의와 결합하면서 한국만의 특이한 경제체제로 이어졌다. 최 교수는 이를 ‘신자유주의적 발전국가’라고 지칭한다. 국가의 역할 및 규모를 최소화하는 서구의 신자유주의와는 정반대로 한국에 특화한 신자유주의는 민영화된 사적영역까지 국가권력이 손은 뻗치는 계기로 작용했다. 이번 사태는 다른 무엇도 아닌, 바로 ‘국가권력의 과잉 및 사적 영역의 자율성 부족’이 낳은 인과적 필연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최 교수는 앞으로 새로 들어설 정부에 60년대 이후 한국의 경제운영원리로 작용해온 ‘박정희 패러다임’의 극복과 관치경제의 종결을 제1의 과제로 내세워야 한다고 주문한다.
◆ 침몰하는 한국경제도 챙겨야…“경제 컨트롤타워 세우자”
한편 이와 더불어 ‘최순실 게이트’의 메가톤급 파워에 묻힌 다른 현안도 놓쳐선 안 된다. 비유컨대 물이 새는 큰 구멍만 온 힘을 쏟아 막는다고 그 벽이 무너지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다른 구멍들을 놓친다면 벽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최순실 게이트’에 묻힌 현안들 중 가장 시급하고 대표적인 것이 경제 영역이다.
최근 국내외적으로 장기적인 불안과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 경제는 깊은 수렁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불확실성과 경기침체는 소득은 줄고 소비는 침체되는 우리의 생활경제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3년 연속 2%대에 머물고 있다. 우리나라 소득 소비의 핵심주체인 40대의 가구소득이 감소하고 있다. 가계부채는 1300조원에 달하며 3분기 가계부채 대출비중 증가율은 최대치를 경신했다. 부동산 시장의 현재와 같은 하락세가 계속된다면 앞으로 개인의 자산은 더욱 줄고 임대료는 인상될 것이다. 이는 곧 영세상인의 몰락으로 이어질 것이다.
전문가들은 경제 분야에서 리더십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관련 전문가는 “경제 분야 국정 시스템 복구가 시급하다”며 “이 상황에서 위기가 온다면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보다 더 큰 충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정치적 위기가 막중하다곤 하지만 경제정책이라도 차질 없이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외 상황을 둘러싸고 시나리오별로 대응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내년 우리 경제는 디플레이션과 내수 침체가 더욱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국정 공백 상태로 인해 경제정책이 혼선을 빚을 소지가 있다. 여야 합의하에 경제 컨트롤타워를 세워 상황에 대한 시나리오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