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만은 꼭⑦] 온라인 쇼핑 1년 새 25% 급성장…대형마트 쉬더라도 재래시장 쇼핑 연 0.9회 그쳐
복합쇼핑몰까지 적용하면 지역상권 '찬물'…문상일 "유통산업 경쟁력 확보 위해 '대·중·소 유통기업 대 소비자' 패러다임 재구성해야"
[뉴스웍스=김남희 기자] "코로나로 거리에 사람이 없어요. 그나마 복합쇼핑몰 때문에 주변에 사람이 몰리고, 우리 가게도 손님이 오는 거에요."
경기도 고양시 삼송 스타필드 인근에서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A씨는 복합쇼핑몰 의무휴업 규제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누굴 위해 이런 법을 추진하는지 진짜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최근 여당은 재래상권을 살린다는 명분을 내세워 스타필드 등 복합쇼핑몰 의무휴업 규제를 포함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재추진하고 있다. 당초 여당은 올해 초부터 본격적인 논의를 진행했다. 유통업계 등의 반대에 부딪히면서 개정안은 국회 상임위원회에 표류했다.
법안의 주요 내용은 복합쇼핑몰의 월 2회 의무휴업 지정 등이다. 이를 통해 소비자들을 골목상권이나 전통시장 등을 유인하겠다는 취지다.
A씨 같은 골목상권 상인들을 포함한 자영업자들은 이를 두고 '재래시장의 적은 대형상권'이라는 구시대적 사고에 갇힌 법안이고 일갈했다.
◆선진국에서 찾아볼 수 없는 규제에도 전통시장 매출 뒷걸음질
온라인 유통의 확대로 골목상권과 대형마트의 대립 구도는 모호해지고, 골목상권을 포함한 오프라인 시장 전체가 이미 위기에 빠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영양가 없는 규제라골목는 것이다.
지난 2012년 월 2회 의무휴업, 24시간 영업금지 등의 대형마트 규제를 포함한 유통산업발전법이 시행된 이후 이러한 규제가 골목상권을 살리는 데 별다른 효과가 없다는 연구 결과는 꾸준히 나오고 있다.
2012년 전통시장 매출액은 20조1000억원이었는데, 규제 시행 1년 뒤인 2013년에는 19조9000억원으로 약 2000억원이 감소했다. 전통시장 매출액은 현재까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대형유통산업 규제로 인해 전통시장으로의 소비자 유입효과는 미미한 것이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선진국에서도 유통규제는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의 경우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연방법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일본의 경우 유통규제의 효용성이 없다는 것을 파악하고 2000년 이후 영업시간 제한규제를 완전히 철폐했다. 영국이나 독일은 도시 활성화 목적으로 대형유통업체의 도심 외 출점을 규제하고 도심부나 특별상업구역에의 입점을 장려하고 있다.
대형마트의 문이 닫혔다고 소비자들의 발길이 전통시장으로 향하는 것도 아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소비자들이 대형마트 휴업으로 전통시장에 방문한 횟수는 연간 0.9회로, 1회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들은 되레 이로 인한 생활에 불편함을 토로하고 있다. 직장인 B씨는 "평일에 직장이 늦게 끝나는데 집 근처 대형마트는 일찍 문을 닫아서 필요한 게 있어도 사기가 어렵다"며 "그래서 그냥 온라인으로 제때 필요한 물품을 주문한다"고 말했다.
문상일 인천대 법학부 교수는 "법률에 의해 소비자들의 소비활동을 심각한 수준으로 제한하는 내용의 유통산업정책들이 과연 공정한 것인지, 국내 유통산업을 효율적으로 진흥시키기 위함인지 등에 대해서는 입법부 및 관련 정책당국에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대형마트 잇단 폐점으로 고용 불안 심화
소비자들은 B씨처럼 대형마트도, 전통시장도 아닌 온라인 상권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거리의 가게들을 위협하고 있는 것은 대형상권이 아닌 온라인 유통업계라는 소리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온라인 쇼핑 거래액은 46조8885억원으로 전체 소매 판매액 중 28.1%에 달한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외부활동 감소는 온라인 쇼핑 증가세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온라인 쇼핑 거래액 규모는 지난해 동기 대비 25% 늘었으며, 이는 2001년 통계 집계 이래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통계청은 "온라인쇼핑 시장 자체가 계속 커지고 있는 데다 코로나19 사태가 온라인쇼핑 증가의 촉매 역할을 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대형마트조차 이에 밀려 문을 닫고 있다. 지난해 12개 점포를 정리한 롯데마트는 올해 3월 추가 폐점을 실시했으며, 이마트도 올해 3개 점포를 정리할 계획이다.
대형마트 점포정리의 심각성이 커지면서 마트노동자들도 고용 불안을 토로하고 있다. 마트산업노조는 "유통업이 온라인 사업 중심으로 옮겨가며 기존의 대형마트 등 유통업체들은 오프라인 매장을 대폭 축소하고 있다"며 "업계 전반에 저강도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유통산업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유통산업에서의 당면과제나 경쟁력 강화 방안은 여전히 대·중·소 유통 간의 상생협력 등에 머물러 있다”며 “정부는 이러한 거시적 관점에서 유통산업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일침한 바 있다.
더욱이 대형마트에 대한 규제가 애꿎은 마트노동자들의 고용 불안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대형마트에 대한 역차별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정이 이러니 여당 내에서도 기존 규제도 폐지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6월 이를 폐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당은 정작 복합쇼핑몰에 대한 의무휴업을 시행하는 등 규제를 더하려 하니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복합쇼핑몰의 집객 효과로 골목상권과 상생 가능
온라인 쇼핑의 확대로 길거리 상점에서 물건을 사는 사람이 줄어든 마당에 복합쇼핑몰이 만들어내는 유동인구가 인근 상권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목소리도 크다. 복합쇼핑몰은 단순한 유통시설이 아닌 놀이시설, 영화관, 식당, 문화 배움터 등이 한데 모인 여가를 즐기는 생활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아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있기 때문이다. 집객효과로 인근 골목상권과의 발전적 상생이 가능한 셈이다. 대형마트가 문을 닫았을 때 주변 3㎞ 내 상권 매출은 오히려 감소했다는 지난해 한국유통학회가 발표한 '대형 유통시설이 주변 상권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서용구 전 한국유통학회 회장(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은 "많은 실증 연구가 증명하듯 대형마트 영업시간 및 출점 규제는 상권 침체를 이끌고, 중소매장과 음식점에 마이너스 촉매제로 작용하고 있다"며 "전통시장과 중소상인은 새로운 생존방법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에 왔는데, 10년 전 상황에서 만들어진 규제가 오히려 중소상인들에게 악법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형마트에서도 실패한 규제를 주말 유원지 역할을 하는 복합쇼핑몰에 적용하려는 시도 역시 지역 1번지 상권을 쇠퇴시키는 시대착오적 규제"라며 "해당 지역구 상인표를 의식한 정치적인 동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잘못된 규제 대신 온라인 중심으로 급변하는 유통환경에 알맞은 상생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문상일 교수는 "새로운 규제틀을 구성할 때 무엇보다 유통채널의 최종 단계에 위치하고 있는 국민, 즉 유통소비자들의 입장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데,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추진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은 반대하는 부정적인 우려의 목소리가 대부분이며 이를 찬성하는 의견을 거의 찾기 어렵다"며 "소비자로부터 외면받는 유통시스템은 법이나 정책으로 강요하더라도 결국에는 시장에서 경쟁력을 상실하고 도태된다는 것이 경험으로 입증된 시장원리"라고 말했다.
이어 "급변하는 글로벌 경제환경에서 국내 유통산업이 경쟁력을 회복하고 세계시장의 치열한 경쟁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현행 유통산업정책의 방향성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향후 지속가능하고 미래지향적인 유통시스템을 구축·운영하려면 기존과 같은 대기업 대 중소기업이라는 시각에서 벗어나 대·중·소 유통기업 대 소비자라는 관점에서 유통규제 패러다임의 큰 틀을 재구성하기 위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