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
  • 입력 2016.12.27 15:28

껍질을 벗는 일이 탈피(脫皮)다. 앞 글자 脫(탈)은 일반적인 풀이에 따르면 ‘동물의 몸에서 뼈를 제거하다’의 새김이다. 좀 더 자세한 풀이는 글자의 뒷 요소인 兌(태)가 주술적인 행위에서 신기(神氣)가 내려 사람이 환각에 가까운 상태에 접어든 경우를 지칭한다고 설명한다.

그 경우에 다시 육신을 가리키는 ⺼(육)이라는 요소가 붙어 몸에서 떨어져 나간 정신의 상태를 지칭한다고 봤다. 일반적인 풀이나, 좀 더 자세하다는 풀이의 새김은 대동소이하다. 무엇인가가 본체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상황이다. 탈피(脫皮)는 겉 피부, 또는 가죽인 皮(피)로부터 떨어져나가는 그 무엇, 또는 그런 동작을 가리킨다.

탈피는 일반 동물에게는 중요한 생존의 기능 중 하나다. 제 때에 원래 지닌 피부나 겉의 형질(形質)로부터 떨어져 나가지 못하면 생명의 유지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곤충이 그렇고, 뱀을 비롯한 일반 동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적절한 때에 이르러 제가 지녔던 껍질로부터 벗어 나와야 살아갈 수 있다.

탈각(脫殼)은 겉의 딱딱한 껍질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형태를 이루는 일이다. 역시 탈피와는 같은 맥락의 단어다. 단지 겉의 껍질이 두껍거나 깨기 어려운 때를 강조할 경우 이 낱말을 쓸 수 있다. 탈각(脫却)은 곤충 등 동물의 행위와는 상관없이 그저 무엇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상태로 접어드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탈습(脫習)과 탈투(脫套)는 제가 간직했고 머물렀던 습성(習)이나 틀(套)을 벗어나는 일이다. 습성이나 틀은 관성적이다. 그저 그곳에 안주할 수 있지만 더 이상의 경계(境界)로 나아가는 일이 불가능하다. 그런 습성과 관성의 틀을 벗어버리는 일이 탈습이자 탈투다.

느슨한 일이 좋아 안정적인 틀에서 벗어나는 행위는 일탈(逸脫)로 부른다. 여기서 逸(일)이라는 글자 또한 ‘벗어나다’의 새김으로 받아들이면 좋다. 그저 떨어져나가는 행위를 일컬을 때는 이탈(離脫)로 적는다. 무리, 대열, 일정한 틀에서 떨어져서 나가는 일이다.

스스로 벗어나 물러서는 일은 탈퇴(脫退)다. 환경의 요소에 지배당하지 않고 먼저 나서서 물러설 때 이 낱말을 쓴다. 제가 스스로 부정적인 환경을 벗어나는 일은 탈출(脫出)이다. 북한의 엄혹한 인권유린, 압제(壓制) 등을 피해 자유를 찾아 움직인 사람들의 행위는 탈북(脫北)이라고 적을 수 있다.

탈태(脫胎)는 어디로부터 벗어나는 행위 중에서 가장 극단적인 사례를 가리킨다. 여기서 胎(태)는 모태(母胎)를 가리킨다. 태생(胎生)이라는 의미다. 생물의 종(種)을 비롯해 근본을 형성하는 토대다. 그로부터 벗어나는 일이 탈태인데, 근본적인 변화를 가리킨다.

새누리당의 이른바 ‘친박’의 전횡을 벗어나기 위해 그 당에 몸을 담았던 사람들이 떨어져 나왔다. 그런 행위는 탈당(脫黨)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탈피(脫皮)와 탈각(脫殼)까지를 염두에 둬야 한다. 겉껍질을 확실히 벗어야 탈당의 의미를 인정받을 수 있다.

그 나물에 그 밥 정도의 변모로는 탈당의 의미가 퇴색한다. 철저한 혁신, 갱신으로 새로운 보수의 흐름에서 중심을 잡아야 살 수 있다. 그렇다고 탈태(脫胎)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이 사회에 어엿한 보수로서 자리 잡기를 바라는 뜻에서다. 아울러 청와대가 오늘의 사태를 맞기까지 직간접적으로 방조했던 ‘친박’으로서는 이 사회의 보수를 지탱하기가 전혀 불가능해 보여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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