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차상근기자
  • 입력 2015.11.23 16:45

“지난해 차명거래에 대한 법 규정을 강화함에 따라 20년 이상 이어져온 ‘반쪽’ 금융실명제는 비로소 제 역할을 하게 됐다”

국회 정무위 진정구 수석전문위원(사진)은 지난 1993년 도입된 금융실명제법이 그동안 차명거래부분의 맹점을 갖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금융실명제법은 전두환 정권 초기인 1982년 처음 논의되기 시작했고 정권이 두 번 바뀌는 동안 몇차례 좌초된 끝에 1993년에 ‘깜짝 쇼’처럼 전격 시행됐다. 그만큼 정치권이나 대기업 등 기득권층의 반발이 심했다는 뜻이다.

그 이후 21년동안이나 차명거래를 사실상 용인하는 반쪽 제도로 존재했던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금융실명제를 시행하며 허명계좌만 규제했을 뿐 계좌의 실소유자와 이름만 빌려주는 명의자가 합심해서 만드는 차명계좌에 대한 규율은 명확하게 담지 않았다. 은밀한 거래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차명거래의 퇴로를 열어준 셈이다.

진 수석 전문위원은 “당시 금융실명제법을 만들면서 관계자들이 완전 실명거래를 검토는 했겠지만 차명거래까지 한꺼번에 법으로 규제할 경우 터질 기득권층의 반발과 그에 따른 부작용을 생각했을 것”이라며 “지금이야 실명거래가 당연한 것으로 인식될 정도로 여건이 성숙됐지만 당시 시대상황에서 차명까지 막는 것은 너무 급진적이란 생각을 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면 실명의 당위성에는 대체로 동의했겠지만 차명이나 허명계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엄격하지 않던 당시의 시대상황과 경제상황 등이 순차 시행으로 방향을 잡게 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선의의 차명거래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막지 않은 차명계좌는 재벌가와 정치권의 불법.편법 비자금 관리창구로 사용돼온 사실이 계속 드러나면서 여론의 반발이 커졌다. 결국 지난해 재산은닉, 자금세탁 등 불법행위 목적의 차명거래까지 강력하게 처벌하는 개정법이 시행되면서 금융실명제법이 22년여만에 이름값을 하게 됐다는 지적이다.

금융실명제법의 변천과정은 현재 논란이 되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이 현 우리사회 상황에서 즉각 수용가능할 지 여부와도 비슷한 맥락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진 위원은 “핀테크 시대를 앞두고 통장개설을 위해 고객이 은행을 직접 찾아야 하는 지에 대해 논란이 있었는데 결국 비대면 실명확인을 허용한다”며 “시대상황에 맞게 금융실명제 관련 규정은 변천해갈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