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재필기자
  • 입력 2015.12.07 10:31

주최 측 청와대 행진 피하고 경찰 차벽 없애 '충돌요인' 제거

▲ 5일 열린 '2차 민중총궐기' 집회는 쇠파이프와 복면 대신 꽃과 가면이 등장해 '평화시위'로 마무리됐다.

폭력과 충돌은 없었다. 쇠파이프와 복면 대신 꽃과 가면이 등장했다. '차벽' 대신 '인간 띠'가 만들어졌다. 평화시위와 준법보장에 시민들도 박수를 보냈다. 5일 서울 도심에서 정부의 노동개혁과 교과서 국정화 등에 반대하는 진보 진영의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하지만 이들은 5시간여 동안 집회와 거리행진을 평화롭게 마무리했다. 단 한명의 참가자도 경찰에 연행되지 않았다. 

당초 경찰에 의해 금지됐다가 집회 이틀을 앞고 법원의 결정에 따라 치러진 이날 '2차 민중총궐기 대회'는 폭력시위로 얼룩졌던 지난달 14일 '1차 대회'와 전혀 다른 평화적 모습을 보였다.

민주노총과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등이 주축이 된 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 총궐기본부는 이날 오후 3시15분 서울광장에서 경찰 추산 1만 4000명(주최측 목표 5만명)이 모인 가운데 '2차 민중총궐기 대회'를 열었다. 참가 인원은 1차 대회(경찰 추산 6만 8000명)보다 크게 줄었다. 경찰은 집회 장소 인근에 기동대와 의경부대 등 225개 중대 2만여명을 배치하고 살수차도 18대 대기시켜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으나 별다른 마찰은 일어나지 않았다.

집회 참가자들은 '1차 대회' 당시 경찰의 직사 물대포에 맞은 뒤 중태에 빠진 농민 백남기(69)씨의 쾌유를 기원하고, 정부의 '노동 개악 추진' 등을 규탄했다. 

조계사에 피신해 있는 한상균(53)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날 영상을 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폭력으로 공안 광풍으로 민중의 요구를 묵살하는 정권에 우리의 요구를 전달하기 위해 모였다"며 "허가받을 필요도 없는 집회자유를 국가 권력이 통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참가자들은 오후 4시 30분쯤 대회를 마친 뒤 서울광장을 출발, 무교로-모전교-청계남로-광교-보신각-종로2∼5가-대학로를 거쳐 백씨가 입원 중인 서울대병원 후문까지 3.5㎞를 행진한 후 대학로 인근에서 마무리 집회를 갖고 오후 8시 30분쯤 해산했다.

집회에 앞서 불교·개신교·성공회·원불교·천도교 등 5개 종단 성직자와 신도로 구성된 '종교인평화연대'는 광화문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500여명이 모인 가운데 평화로운 집회를 염원하는 '평화의 꽃길 기도회'를 갖기도 했다.

문재인 대표 등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35명도 '평화 지킴이'로 집회에 참가했다. 문 대표와 이종걸 원내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와 소속 의원들은 이날 행사에서 ‘평화 메시지’를 담은 배지와 머플러를 착용한 채 경찰과 시위 참석자 간 충돌을 차단하기 위한 현장 캠페인을 벌였다.

2차 대회가 평화롭게 마무리된 데는 집회 주최 측과 경찰의 배려가 큰 역할을 했다. 집회 측은 행진 목적지를 청와대에서 지난 1차 대회에서 물대포를 맞은 백남기(69)씨가 입원한 서울대병원으로 옮겼다. 청와대 행을 고집했다면 세종대로를 통과해야 하고, 이를 막아서려는 경찰의 차벽과 물대포를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주최 측이 목적지를 바꿈으로써 마찰의 원인 자체를 제거했다. 행진 선두에 풍물패를 앞세우고 초록 바람개비를 든 대학생들이 뒤따르면서 폭력 의사가 없다는 것을 확실히 했다.

경찰도 평화시위를 하는 집회 주최 측을 자극하지 않았다. 우선 집회 현장에서 차벽을 제거했다. 2개 차로를 통제해 참가자들의 행진도 보장했다. 참여 인원이 많아 참가자들이 한때 2개 차선을 넘어서면서 경찰이 경고 방송을 했지만 큰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집회 참가자들이 행진 목적지인 혜화역 2번 출구에 도착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혜화역 근처 장소가 협소해 행진이 늦어지고 집회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자 기존 신고했던 범위보다 더 넓은 공간을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집회 참가자 3분의1가량이 가면을 쓰고 집회에 참가했다는 점이다. 새누리당이 ‘복면금지법’을 추진하는 것에 대한 저항이었다. 

이런 가운데 집회 주최 측은 "오는 12월 19일 전국에서 동시다발 3차 민중총궐기 등 국민행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3차 집회가 평화시위가 될지는 미지수다. 집회 목적에 대한 효율성이 극대화할 수 없어서다. 박영수 세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진보단체 입장에서는 평화집회만을 고집하는 것으로는 집회를 부각시키는 데 한계가 있어 이번보다는 다소 격한 양상이 나타날 수 있다"며 "이럴 때 경찰이 맞대응하기보단 집회의 권리를 보장하고 관리하는 측면에서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진보세력의 집회에 맞서 보수단체들은 곳곳에서 반대집회를 열었다. 퇴직 경찰관 단체인 경우회 회원 2500여명과 고엽제전우회, 어머니회 등은 이날 오후 3시 동화면세점 앞에서 집회를 열어 백남기대책위 등을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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