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재갑 기자
  • 입력 2018.02.02 16:57
뉴스웍스 한재갑 기자

[뉴스웍스=한재갑 기자] "사랑은 아무나 하나 눈이라도 마주쳐야지..."

태진아 노래 ‘사랑은 아무나 하나’의 첫 소절이다. 이 노래는 기자의 기억에 2007년 엄청나게 히트했다. 당시 서울역 광장에 모인 수만 명의 교원들이 이 노래를 목이 터지도록 불렀던 모습이 생생하다.

당시 서울역 광장에 모인 교원들은 ‘사랑은 아무나 하나’를 ‘교장은 아무나 하나’로 고쳐서 불렀다. 2007년 정부가 교장공모제 도입 정책을 발표하자 거리에서 반대투쟁을 하던 교원들은 노랫말로 정부정책을 비꼬았다.

그 후 10년이 흘렀다. 그런데 최근 다시 ‘교장은 아무나 하나’를 놓고 교육계가 찬반으로 몸살이다. 교육부가 교장공모제 전면 확대 정책을 내놨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지난해 12월 내부형 교장공모제 운영학교를 신청학교의 15%로 제한했던 규정을 없앤 ‘교육공무원 임용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원하는 학교는 모두 공모제를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내부형 교장공모제는 교사경력 15년 이상이면 교장자격증 없이도 교장이 될 수 있다. 자율학교와 자율형공립고가 시행할 수 있다. 자율학교는 교육감이 제한 없이 정할 수 있어 사실상 무자격 교장공모제의 전면 확대다. 매우 파격적인 정책이다.

현재 국공립학교 9955개교 중 1792개교는 공모학교로 지정돼 이미 18%가 공모제를 실시하고 있다. 그런데 교육부 방침대로 시행될 경우 교육감 의지에 따라 현재의 교장승진제도는 완전히 무력화될 수 있다.

이를 두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무자격 교장공모는 공정성을 훼손할 수 있다며 폐지청원운동, 거리집회 등을 연일 계속한다. 반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등은 현재의 교장승진임용제도의 폐단을 지적하며, 교장공모제의 대폭 확대를 주장한다.

현재의 교장승진임용제도에 따라 교장이 되려면, 적어도 20년 이상은 성실히 근무하고 연구와 연수를 해야 한다. 남들이 꺼려하는 보직교사나 도서벽지 근무를 통해 점수도 따야 한다. 그러나 무자격 교장공모제를 하면 그럴 필요성이 없어진다. 교사의 교육적 헌신을 끌어낼 수 있는 교원인사정책이 사라진다는 얘기다.

공모를 통해 교장이 되려면, 학교에서 동료교원들과 관계를 잘 맺고 학교운영위원들에게 잘 보이면 된다. 특히 교육감과 코드를 잘 맞추고 선거에 기여하면 금상첨화다. 실제로 자기소개서에 교육감 만들기 역할을 하고, 교육감직 인수위원회 참여를 공개한 특정 노조인사가 무자격 공모교장이 된 사례도 있다. 그런 사람들이 교장을 마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치고 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공모교장의 학교운영 성과를 놓고도 교총과 전교조 주장이 다르다. 문제는 아무리 성과를 내도 도긴 개긴 수준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국가가 교육을 통제하는 구조다. 교육과정, 예산, 인사권 등 교장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공모교장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성과를 낼 수 없는 구조다.

교장을 아무나 할 수 있다면, 교사도 아무나 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가 교원의 질 관리 차원에서 교장 자격을 검증하는 제도를 포기한다면, 교사의 자격도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게 맞다.

국가직 공무원 신분인 교원은 지방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교육감과 교장에게 자율권을 대폭 부여해 교사들의 해고도 가능토록 해야 한다. 그런데 교장공모제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이런 것엔 기를 쓰고 반대한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만 얻겠다는 자세다. 이건 불공정이다.

김상곤 교육부 장관은 새해 신년사에서 ‘소통’을 강조했다. 그러나 김 장관은 교장공모제 반대 목소리엔 귀를 막고 있다. 김 장관은 이 문제에 관해 교총과 단 한 번도 공식적인 대화에 응하지 않았다. 이러다간 ‘장관을 아무나 해서’라는 말이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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