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고종관기자
  • 입력 2018.02.09 15:49

[뉴스웍스=고종관 의학전문기자] "58, 59, 60…. 그럼 이제 껌을 뱉어 색깔을 보세요."

일본 도쿄도의 어느 복지센터. 노인들을 위한 구강 건강강좌가 한창이다. 강의 내용은 껌으로 저작능력을 확인하고, 기능을 높이는 이른바 ‘오럴 플레이’. 입에 넣기 전 녹색이었던 껌이 분홍색으로 바뀌었다면 잘 씹고 있다는 증거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은 혀를 앞으로 내밀거나 여러 가지 입 모양을 만드는 ‘구강 체조’, 타액분비를 촉진하는 ‘뺨과 턱 마사지’도 배운다. 노인들은 이곳에서 배운 오럴 플레이를 가정에서도 되풀이한다. 강사를 하는 보건소 직원 쿠마가이 준코(치과 위생사)씨는 "구강기능이 떨어지면 전신건강도 나빠진다"며 "노인들에겐 꾸준한 반복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최근 일본의 한 미디어가 소개한 노인 대상 구강교육의 현장 모습이다.

일본 후생노동성과 일본치과의사회는 헤이세이 원년(1989년)부터 전국민을 대상으로 ‘8020 운동’을 꾸준히 펼치고 있다. ‘80세까지 20개의 자기 치아를 유지하자’는 캠페인이다. 성인의 치아 개수는 28개(사랑니를 포함하면 32개)다. 따라서 치아 20개를 유지하면 음식을 씹어 건강을 유지하는데 문제가 없다.

일본 정부가 의사단체와 손잡고 이 같은 운동을 20년 이상 지속적으로 벌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초고령시대의 사회적 부담을 다소라도 덜기 위한 고육책이다. 저작력은 곧 고른 영양이 필요한 노인의 건강과 직결된다. 치아는 치매 발병율에도 영향을 미친다. 치아가 10개 이하인 노인의 치매 발병율은 그렇지 않은 노인의 2.6배에 달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특히 고령층의 치아 상실은 틀니나 임플란트 등 막대한 의료비의 증가를 가져오기도 한다.

이 같은 치아 살리기 운동은 후생노동성이 실시한 '2016년 치과질환 실태조사'에서 성과가 나타났다.

최근 일본 교토(共同)통신에 따르면 75~79세 노인 중 자신의 치아를 20개 이상 보유한 노인은 2011년에 비해 8.5%포인트 높은 56.1%, 80~84세는 15.3%포인트 상승한 44.2%나 됐다. 75세 이후를 후기고령자로 부른다. 일본 정부는 이들의 평균 자기치아수가 50%를 넘은 것은 획기적인 일이라고 자찬하고 있다.

'8020 운동' 후 양치질에 대한 인식 개선도 이뤄졌다. 하루 양치질을 1회 하는' 노인은 18.3%로 6년 전 조사 때보다 3.6%포인트 감소했다. 이에 반해 2회 한다는 노인은 1.5%포인트 늘어난 49.8%, 3회 이상 하는 사람의 비율도 2.1%포인트 증가한 27.3%나 됐다. 80%에 가까운 노인이 적어도 하루 두 번씩 양치질을 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로 눈을 돌려보자.

보건복지부는 2104년 7월부터 75세 노인을 대상으로 틀니와 임플란트에 대해 건강보험 지원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2015년 7월부터 70세 이상, 2016년엔 지원 대상 나이를 65세로 낮췄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의료 보장성은 더욱 강화됐다. 지난해 11월부터 틀니에 대한 보험부담금이 50%에서 30%로 떨어졌고, 올 7월부터는 임플란트 시술에도 같은 혜택이 주어진다. 100만원 이상되던 임플란트 시술 본인부담액이 30만원대로 떨어지면서 치과계는 적극적인 마케팅을 시작하고 있다. 큰 시장이 열리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 같은 정부정책이 잘못됐다는 건 아니다. 가격 부담이 큰 틀니와 임플란트를 지원하는 것도 국민건강권을 보장해야 하는 정부의 책임이다.

하지만 예방할 수 있는 질환을 방치해 막대한 예산을 쓰는 것은 올바른 복지정책이라 할 수 없다.

우리나라도 이제 고령국가로 진입했다. 덩달아 노인질환에 투입되는 의료비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보건정책은 여전히 예방보다 치료중심이다.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을 효율적으로 쓰면서 삶의 질까지 좋아지는 정책이 곧 건강한 습관을 유도하는 질병 예방사업이다. 이미 골든타임을 놓쳤지만 이제라도 정부의 의료보장성 강화정책에 예방사업을 포함시켜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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