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윤주진기자
  • 입력 2015.12.10 11:53

대기업 가운데 시장에서 경쟁력을 상실해가고 있는 한계기업의 비중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9일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따르면 우리나라의 지난 2009년 한계기업 비중은 전체 대기업 중 9.3%였으나, 5년이 흐른 2014년에는 14.8%로 치솟았다. 중소기업의 경우 지난해 한계기업 비중이 15.3%까지 올라섰다.

저유가와 중국을 포함한 신흥국의 경기둔화는 우리의 주력 수출업종인 건설, 조선, 철강의 실적부진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에 시의적절한 기업의 사업재편과 구조조정을 촉진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시민단체와 경제 전문가들의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지난 9일 맥없이 끝난 정기국회에서 나타났듯 정치권은 묵묵부답이다. 기업활력제고특별법(원샷법)의 통과가 무산된 것은 물론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작업)의 제도 일몰시한도 연장하지 못했다. 한계기업은 늘어나는데 정작 입법부가 두 손 놓고 있는 셈이다. 

◆ 기촉법 연장 실패로 워크아웃은 ‘아웃’

워크아웃은 현재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보다 효과적인 기업 구조조정을 하기 위해 2001년 마련된 법으로 채권단 자율협약보다 강도가 다소 높으면서 절차는 간소한 기업구조조정 절차로 꼽힌다.

채권단의 만장일치가 필요한 자율협약에 비해 75% 동의만 얻으면 워크아웃이 더 신속한 반면, 법률적 강제성이 부과되기 때문에 완전한 자율에 맡기는 자율협약보다 강도가 높다. 

당시 기촉법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제도가 자연 소멸되는 ‘한시법’으로 제정됐다. 하지만 그 필요성이 계속해서 인정 돼 네 차례나 일몰이 연장돼왔다. 2005년 12월에 1차적으로 일몰하자 2007년 11월에 다시 부활됐고, 2011년, 2014년에 각각 재연장 됐다. 

정부와 여당은 애초 기촉법의 상시화와 중소기업도 포함시키는 범위 확대 등을 주장했다. 효과적인 구조조정 수단인만큼 적극적으로 활용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야당이 위헌요소 등을 문제 삼으며 차라리 법정관리를 보완해서 쓰자는 내용의 대안법을 내놓자 정무위는 교착상태에 빠졌다. 도산법은 연말이 되어서야 제안이 돼 연내에 논의하기는 이미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러자 임종룡 금융위원장을 비롯해 정부와 여당은 기촉법의 일몰 시점을 2년 반을 연장하는 임시방편이라도 합의해달라며 야당을 설득했지만 야당은 이마저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버텨 결국 19대 정기국회에서의 처리가 불발되고 말았다. 

채권단 100%의 동의를 얻는 것이 쉽지 않아 재활 가능성이 높은 기업마저도 사실상 ‘파산’ 절차나 다름없는 법정관리를 받게 돼, 경쟁력있는 기업을 상실할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 기촉법 연장 실패에 따른 부작용은 이미 사례로도 입증돼있다. 2007년 연말 연장이 무산되자 당시 현대LCD와 VK모바일 등이 자율협약에 의존하게 됐으며 결국 제때 신속한 자금지원을 받지 못해 부도를 맞이하고 말았다. 

12월 임시국회에서 기촉법 일몰연장이 재논의 되지 않을 경우 당장 내년부터 워크아웃제도는 활용할 수 없게 되며, 이 같은 부작용이 재발할 가능성 또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 '원샷법'... 日은 여야 만장일치 통과, 우리는 상임위 문턱도 못 넘어

지난 2일 여야가 정기국회 내에 처리하기로 합의했던 기업활력제고특별법(원샷법) 역시 9일 마지막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공급과잉 해소 차원에서 사업재편 간소화를 위해 마련됐지만 그 대상에서 제기업을 제외해야 한다는 야당의 주장 때문이다. 

원샷법은 사업재편을 추진하려는 기업에게 상법상 절차간소화, 공정거래법상 규제유예기간 연장 및 세법상 세제 지원 등 한시적 특례를 부여하는 것이 법안의 골자이다.

지난 1999년 일본은 여야 만장일치로 산업활력법을 제정, 기업의 선제적·자발적 사업재편을 지원하였으며 2014년엔 지원범위를 확대하는 산업경쟁력 강화법 개정을 통해 제도의 실효성을 높였던 사례를 벤치마킹한 법안이다. 실제 국내 사업재편 관련 제도는 선진국들에 비해 매우 까다로운 편으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야당은 이와 같은 제도가 재벌기업의 편법 승계와 일시적 재무고조 개선 등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며 반대하고 나섰다.

하지만 이미 방지장치는 4개나 마련이 돼있다. ▲민관합동 심의위원회의 심사 ▲승계 목적의 사업재편 시 승인 거부 ▲당국을 속이고 경영권 승계에 이용할 경우는 사업재편 계획 사후 취소 ▲문제 발생시 3배에 달하는 과징금 부과 등이다.

야당이 주장하는 소액주주 권리 침해 우려 역시 글로벌 스탠다드에 비추어봤을 때 기우라는 지적이 많다. 규모가 작은 소규모 합병의 절차를 간소화하는 제도는 이미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 대부분이 도입했다. 

하지만 야당은 여전히 ‘재벌특혜법’이라며 반대 의견을 고집했고 상호출자제한집단, 즉 대기업을 해당 법안의 대상에서 제외할 것을 조건으로 제시해 결국 상임위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 과잉공급으로 불황이 장기화되는 철강, 건설, 조선 등 주요 업종들이 대부분 대기업들이 하고 있는 사업인데 대기업을 제외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결국 법의 실효성을 막자는 것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이제 공은 임시국회로 넘어가게 됐지만 여야는 임시국회 소집 일정마저 합의하지 못한 상황이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15일 임시국회 개의를 제시했지만 이종궐 새정치민주연합이 이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당이 단독소집을 추진하겠다고 하지만 국회법상 여당에 의한 단독 법안 처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한 노동개혁 5대 법안을 논의하기도 벅찬 상황이어서 구조조정 관련 법제를 다룰 여유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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