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윤주진기자
  • 입력 2015.12.10 18:59

“의료산업을 전략산업으로 육성해서 돈이 들어오게 하고 일자리도 만들어 내야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했을 법해 보이지만 사실 이 발언을 한 인물은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2005년 2월 25일 취임 2주년을 맞아 국회에서 행했던 국정연설 중 일부분이다.

당시 노 대통령은 언론과 정치권의 예상과 달리 전체 연설의 30% 이상을 경제에 할애했고 “교육·의료 서비스의 경쟁력을 높여서, 나가는 돈을 막아야 한다”, “개방할 것은 개방하고 규제도 풀 것은 과감하게 풀어야 한다”며 서비스산업의 발전을 강조했다.

1년 뒤인 2006년 초 신년연설문에서도 노 대통령의 생각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대학교육과 의료서비스는 고급 일자리를 많이 창출할 수 있는 분야이므로, 산업적 측면을 외면할 수는 없다. 일자리를 위해서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개방하고 서로 경쟁하게 해야 한다”며 “서비스산업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지난 9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가 불발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의 취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들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참여정부 당시 의료서비스 발전 정책이 오늘날 정부의 계획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 역시 받아들이기 어려운 실정이다. 

2006년 당시 참여정부가 작성한 대외비 문서 ‘제2차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 심의안건’에 따르면, 2005년 말부터 2006년 초까지 네 차례의 의료제도개선소위를 열어 ‘제주도 영리 의료법인 허용, 민간(의료)자본 활성화 방안’ 등을 논의한 것으로 돼 있기 때문이다. '완전히' 다르다는 반박에 쉽게 수긍이 안 간다. 

노동개혁과 관련해서도 비슷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2005년 초 연두기자회견을 가진 노 전 대통령은 대기업 노동조합의 양보와 타협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보름 뒤 개최된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의 당정협의에서는 파견허용 업종을 26개에서 모든 업종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기도 하다.  새누리당이 추진하는 파견법 개정안(6대 뿌리산업에 대한 파견근로 허용)보다 훨씬 더 범위가 큰 법안이다.

1년 뒤 특별연설문에서도 노 대통령은 “대기업 노조는 단체협약상 높은 고용보장을 받고 있어서 일단 고용하면 실제로는 해고가 어렵고, 이것이 시장의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다”며 노동경직성의 문제를 꼬집었다. 또한 “결과적으로 교섭력이 강한 소수의 노동자들은 두터운 고용보호를 받고 있는 반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더욱 늘어나게 되는 것”이라며 노동시장 구조 이중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을 이끌고 있는 인물은 바로 문재인 대표다. 문재인 대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 집권기간 내내 청와대 핵심 요직을 두루 맡았다. 앞서 기자가 소개한 발언들이 나온 기간 동안에는 민정수석의 자리에 있었다. 서비스산업의 발전, 파견근로 업종 확대 등을 추진했던 참여정부의 핵심 참모였던 문재인 대표가 오늘날 정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여야 입장이 바뀌면 정책에 대한 목소리도 바뀌는 것이 한국 정치의 고질적 병폐라는 점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야당의 경제활성화 법안 반대는 아쉬울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 누구보다도 분배에 관심을 갖고 약자 및 소외계층을 돌봐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던 인물로 평가된다. 그런 노 전 대통령마저도 노동개혁과 서비스산업 육성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다는 점은 오늘날 야당으로서 한번쯤 깊게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다.

이제 19대 국회가 법안을 처리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얼마 남지 않았다. 12월 임시국회 동안 만큼은 문재인 대표가 친노의 수장답게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시 발언들과 추진 정책들을 찬찬히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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