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경보 기자
  • 입력 2018.03.13 18:02

민영화 됐어도 정권 바뀔 때마다 수장교체…정치권 고리 끊어야

황창규 KT 회장이 지난 1월 2일 서울 광화문 KT스퀘어에서 열린 'KT그룹 신년 결의식'에서 신년사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KT>

[뉴스웍스=박경보 기자]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의혹을 받는 황창규 KT 회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곧 경찰에 소환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어졌던 KT CEO의 잔혹사를 황 회장 역시 비켜가지 못하는 모양새다. 이 같은 잔혹사를 끝내려면 KT의 근본적인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경찰 지능범죄수사대는 황 회장이 불법 정치자금 전달 과정에 관여한 정황을 포착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13일 밝혔다. 경찰은 불법 정치자금에 대한 황 회장의 구체적 지시가 있었는지 등을 중점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앞서 경찰은 주요 KT 임원진들이 상품권을 ‘카드깡’ 방식으로 현금화해 이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현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건넨 것으로 보고 지난해 말 수사에 착수했다.

특히 KT는 기업의 정치후원금 금지 규정을 빠져나가기 위해 다수의 임원 명의로 쪼개는 방법으로 전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현재 수사선상에 오른 국회의원은 20명 이상이며 실제로는 40명이 넘을 수도 있다는 추측도 나온다.

경찰은 이달 말에서 다음달 초 사이 황 회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하고 불법후원금을 건네받은 국회의원들에 대해서도 사법처리 대상과 수위를 결정할 방침이다. 

지난 2002년 5월 민영화가 됐어도 KT는 정권이 바뀔때마다 CEO가 물러나는 잔혹사를 이어왔다. 다른 대기업과는 달리 총수가 없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의 이용경 전 사장은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며 연임을 포기했고, 뒤를 이은 남중수 전 사장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연임을 시도했다 검찰조사에 불명예 퇴진했다. 그 뒤의 이석채 전 회장 역시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후 검찰 조사를 받고 물러났다.

특히 남 전 사장과 이 전 회장은 정권이 교체된 지 1년도 안돼 각각 납품비리 혐의와 배임‧횡령 혐의로 사임했다. 민영화 이후 16년 동안 이용경 전 사장을 제외한 모든 CEO들이 정치적 외풍을 피하지 못한 셈이다.

이 회장의 뒤를 이어 지난 2013년 11월부터 KT를 이끌고 있는 황 회장도 ‘바람 앞의 등불’ 신세가 됐다. 새 정부가 들어선 지 10개월 만에 불법 정치자금 조성 혐의로 경찰 소환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황 회장은 지난해 3월 주주총회에서 연임이 확정돼 2020년까지 임기가 남아있지만 무사히 임기를 마칠지는 안개 속이다.

이 같은 KT의 CEO 잔혹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지배구조 개선이 절실하다는 일각의 주장이 나온다. KT는 주인이 없어 정권의 입김에 취약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해관 KT 새노조 경영감시위원장은 지난 5일 국회에서 KT 지배구조 개선방안을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KT는 정권의 전리품이라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KT 내부에 늘 가득했다"며 "KT의 CEO 리스크는 보다 근원적 성찰과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추혜선 정의당 의원은 "통신 기업의 CEO가 매번 정치적 외풍에 휘말려 본래의 역할은 못하고 정치적인 활동에만 주력하고 있다"며 "오랜 시간 정권에 귀속된 지배구조의 문제로 인해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고 성토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최근 KT는 회장 추천 권한을 CEO추천위원회에서 이사회로 이관하는 내용을 담은 지배구조 개편방안을 마련했다”면서도 “KT에 대한 정치권 풍토부터 뜯어고쳐야 잔혹사도 끝나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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