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경보 기자
  • 입력 2018.09.30 06:20

"주목 받으려 총수 혼내기 정치쇼" 여론…국감 취지도 안맞아

지난 2015년 열린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신동빈 롯데 회장이 신동우 새누리당 의원의 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SBS 뉴스화면 캡처>

[뉴스웍스=박경보 기자] 다음 달부터 본격 시작되는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어김없이 대기업 총수들이 불려 나갈 전망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가 매년 기업인을 증인으로 줄소환하면서 국감 목적이 ‘총수 혼내기’로 변질됐다는 재계의 볼멘소리가 나온다. 국회의원들이 국감의 ‘스타’가 되기 위해 기업인을 마구잡이로 불러 실속 없이 호통만 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28일 정치권 및 재계에 따르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정무위원회, 환경노동위원회 등 각 상임위는 다음달 10일부터 열리는 국감에 대기업 총수들을 증인으로 잇따라 소환할 예정이다.

특히 올해는 한진그룹의 각종 경영비리와 갑질 논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기내식 대란,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삼성전자의 노조와해 의혹 등 굵직한 재계 이슈들이 터진 상황이라 기업인 증인요청 규모는 예년보다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매년 연례행사처럼 반복되는 ‘총수 소환’이 국정이 잘 운영됐는지 정부를 감시하는 국정감사의 본래 취지를 훼손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회의원들의 화살이 정부가 아닌 기업으로 엉뚱하게 향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재계 안팎에서는 국회의원들의 자신들의 이름과 얼굴을 알리고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기업인들을 이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정감사의 효율적인 수행을 위해 만들어진 참고인 출석요구 권한을 악용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실제로 지난 2015년 재벌 총수로는 최초로 국정감사에 출석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상당한 곤욕을 치렀다. 당시 박대동 새누리당 의원은 신 회장에게 "한국과 일본이 축구를 하면 한국을 응원하냐"며 뜬금없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지난해 국감에서도 기업인에 대한 증인 출석 요청은 끊이지 않았다. 당시 고동진 삼성전자 사장, 이해진 네이버 전 의장, 장동현 SK 사장, 윤갑한 현대차 사장 등이 정무위로부터 증인 출석 요구를 받았다.

올해도 각 상임위 여야 간사들은 기업인 증인 채택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정무위 소속 추혜선 정의당 의원은 포스코그룹과 조선3사, 현대차그룹, 한화그룹 등의 주요 임원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국회 환노위 소속 이정미 정의당 의원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증인 명단에 올렸다.

특히 국회의 기업인 증인 신청은 매년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18대 국회는 평균 77명의 기업인을 증인으로 세웠지만 19대 국회에서는 124명으로 크게 늘었고 20대 국회 첫 국감에서는 150명까지 늘었다.

증인이 많다보니 정작 국감장에서는 앉아만 있다가 입 한번 열지 못하고 돌아가는 기업인들도 비일비재한 상황이다. 서면질의로도 가능한 내용을 굳이 국감장으로 불러들여 쉴새없이 바쁜 기업인들의 업무를 방해하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국회의 마구잡이식 기업인 호출로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글로벌 기업 경영진이 국감에 자주 출석하면 문제가 많은 기업으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재계에 따르면 국회의원이 기업 경영진을 소환해 꾸짖는 국감은 전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들다. 미국과 영국 등 대부분의 선진국들도 의회에 국정조사권이 있지만 국정조사와 청문회가 섞인 기획형 국감제도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재계 관계자는 "갈수록 국감에 호출되는 기업인 규모가 늘고 있지만 내실 있는 내용보다 소모적인 ’정치쇼‘로 끝나는 것이 현실"이라며 "국정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국감 본연의 목적을 위해서라도 무분별한 기업인 길들이기 관행이 개선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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