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5.12.29 15:15
춘추시대 월나라 구천을 도와 국난을 타개했던 정치가 범려(范蠡)의 초상. 그는 "날쌘 토끼가 죽으면 사냥개는 삶아 먹힌다"는 말을 남겼다. 주구(走狗)라는 낱말이 여기서 등장한다.

 

동물에게 우리는 가끔씩 엉뚱한 화풀이를 한다. 제 심사를 동물의 한 특성에 빗대 반영하는 사례 말이다. 본래 그런 사람의 심사와 상관이 없는 동물의 입장에서는 복장이 터질 일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강아지다. 주구(走狗)라는 말이 우선 눈에 띈다.

원래 이 말은 나쁜 뜻이라고 볼 수 없다. 달리는 개, 즉 사냥을 위한 강아지라는 게 본래의 뜻이다. 이어 강아지를 풀어 놓는 일도 가리켰다. 그러나 주인을 위해 사력을 다 하면서 사냥감을 쫓는 개의 ‘충정(忠情)’은 어느덧 나쁜 일에 앞장서는 사람을 비유하는 용도로 자리 잡고 말았다.

그에 버금가는 표현이 응견(鷹犬)이다. 매와 개를 가리키는 낱말이다. 이 역시 사냥에 나선 주인과 그를 돕는 조력자의 뜻으로 자리를 잡았다. 주구(走狗)처럼 결코 좋은 뜻이 아니다. 나쁜 일에 나서는 사람을 적극적으로 돕는 사람이다.

호랑이는 의젓한 이미지다. 그를 직접 빗대는 경우보다는 호랑이를 등장시키면서 그를 옆에서 돕는 존재를 가리키는 말이 있다. 창귀(倀鬼)라는 낱말이다. 倀(창)이라는 글자가 퍽 낯설다. 갈팡질팡하다, 쓰러지다, 미치다(狂)의 새김을 지닌 글자다. 창귀(倀鬼)는 늘 호랑이와 함께 등장한다.

예로부터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는 일은 두려웠다. 그런 호환(虎患)은 조선에서는 매우 빈번한 ‘사고’에 해당했다.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사람의 영혼은 이승을 떠나지 못한다고 봤다. 그 넋은 호랑이의 시중을 드는 귀신으로 변한다고 했다. 남을 끌어들여 호랑이의 먹이가 되도록 유도한 뒤에야 그 굴레를 벗는다는 존재가 바로 창귀(倀鬼)다.

따라서 창귀(倀鬼)는 호랑이의 부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갖 꾀와 술책으로 다른 이를 제물로 삼아야 한다. 그러니 못된 짓을 일삼는 아주 나쁜 존재라는 뜻을 얻었다. 爲虎作倀(위호작창)이라는 성어는 게서 나왔다. 주구(走狗), 응견(鷹犬)과 같은 맥락이다.

족제비도 나온다. 같은 산에서 사는 족제비(또는 담비)라는 뜻의 성어는 一丘之貉(일구지학)이다. 같은 곳에 어울려 지내면서 함께 나쁜 짓을 일삼는 무리들을 일컬을 때 쓴다. 살려고 애쓰는 족제비가 꽤 억울할 듯한 성어다. 족제비의 날쌘 형상을 사람들이 엉뚱하게 푼 대목이다.

당우(黨羽)라는 말도 있다. 동물이 직접 등장치는 않으나 새의 날개(羽)가 나온다. 무리, 혹은 집단(黨)의 날개라는 뜻이다. 특정한 이해를 두고 모인 집단, 그룹의 총수는 당괴(黨魁)다. 그를 제외한 나머지 이해 추종자들을 가리키는 단어가 당우다.

나무에 몰려 사는 원숭이들도 있다. 그러나 나무가 넘어지면 그 원숭이들은 어찌 할까. 그냥 흩어지고 만다. 중국식 성어 樹倒猢猻散(수도호손산)이다. 제 이해에 따라 모이는 집단은 이런 원숭이들처럼 정처가 따로 없다. 이익 있는 곳이 내가 머물 곳이라며 늘 제 부와 명예만을 좇아 분주하게 이곳저곳을 떠다닌다.

이른바 ‘친박(親朴)’이라고 내세우는 사람이 요즘 시사의 초점 중 하나다. 대통령의 권세를 등에 업고 제 권력과 부를 이어가려는 이들이다. 호가호위(狐假虎威)라는 성어의 적용 대상이면서 앞에서 열거한 흐름 속 여러 동물의 이미지와 꼭 맞는다.

그 어려운 정치공학의 속내는 알고 싶지 않다. 단지 권력의 주변에서 부나비처럼 떠도는 인간의 군상이 처연(悽然)함마저 풍겨 적어본 글이다. 제 명리(名利)가 맞지 않으면 뜬구름처럼, 나무의 원숭이처럼 흩어질 사람들에게 대의(代議)의 대임(大任)을 맡겨야 한다는 점이 그저 씁쓸할 뿐이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