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동수기자
  • 입력 2015.12.30 14:29

현대차 "물리적으로 불가능, 두달전 문의했으나 일주일전 답변들어"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보유중인 현대제철 주식 880여만주(시가 4607억원어치)를 이틀안에 팔아야한다. 물리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데 공정거래위원회의 명령으로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현대차그룹은 아직까지 매각주체는커녕 매각 주간사도 선정하지 못한 상황이다. 대기업이 순환출자고리를 엄격히 규제하는 달라진 공정거래법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이미 두달 전 공정위에 개정된 법에 대해 문의했으나 명확한 답변은 없었다고 한다. 금융당국의 관련법 해석이 늦어지면서 주식매각 통보는 지난 24일에야 이뤄졌다. 주식 처분기간을 일주일 앞두고서였다. 통보가 늦어지면서 법집행을해야하는쪽도 따라야하는 쪽도 모두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공정위는 지난 24일 삼성그룹에 이어 현대자동차그룹에도 계열사 합병 이후 강화된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라고 통보한 것으로 30일 알려졌다.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은 지난 7월1일 현대제철과 현대하이스코 합병으로 늘어난 주식을 유예기간(6개월)이 만료되는 12월 31일까지 매각해야한다.

공정위, "일주일안에 4600억원어치 주식 매각하라"

매각주식은 현대차와 기아차가 보유한 현대제철 주식 881만주이고 지난 29일 종가기준으로 4607억원이다. 현대차그룹은 매각시한이 불과 열흘도 안남은 상황에서 4000억원이 넘는 주식을 매각해야한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그러나 이를 어길 경우 ▲매각해야할 주식가격의 10%를 과징금으로 부과할 수 있고 ▲매각 주체 대표에 대해선 3년이하의 징역 또는 2억원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이는 2014년 7월부터 시행된 '개정 공정거래법'에 따른 것이다.

개정 공정거래법은 이렇다. 자산이 5조원 이상인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대기업집단)의 경우 새로운 순환출자 고리를 만들거나 기존 고리를 강화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합병으로 새로 생기거나 강화된 순환출자 고리에 대해 6개월 내에 해소토록 유예기간을 주고 있다. 일명 순환출자금지제도이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지난 7월1일 그룹내 계열사 구조조정을 위해 현대제철이 현대하이스코를 합병했다. 이 과정에서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보유한 현대제철(존속법인)의 주식이 각각 574만5741주, 306만2553주씩 총 880만8294주가 늘어났다.

기존 현대차그룹의 순환출자 고리상, 현대차와 기아차는 현대제철을 지배하는 구조인데, 합병과정에서 늘어난 현대제철 주식은 개정법에 따라 기존의 순환출자고리를 강화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게 공정위의 해석이다.

공정위, 유권해석 갈팡질팡

그런데 문제는 이미 현대차그룹은 구조조정 직후 공정위에 문의했었으나 명확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공정위도 뒤늦게 관련법을 적용, 현대차그룹에 현대제철 주식매각을 통보했다.

이에 앞서 공정위는 지난 24일 옛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정에서 삼성SDI가 보유한 합병 삼성물산 주식의 늘어난 물량을 매각하라고 통보한바 있다. 삼성그룹의 경우 내년 3월1일이전 통보받은 주식을 매각하면 된다. 당시 공정위는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된 개정 공정거래법이 적용되는 첫 사례라고 밝혔었다.

이 때 공정위는 현대‧기아차의 합병된 현대제철 주식 처분 통보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따라서 공정위 내부에서도 현대차그룹에 대한 개정법 적용 및 통보에 대해 혼선이 빚어졌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이 지난 10월 26일 순환출자 관련 질의를 해왔다"며 12월24일 삼성그룹 문제와 함께 판단을 내려 매각을 통보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법으로 정해진 처분 유예기간(6개월)을 단 일주일 남겨놓고 현대차그룹에 주식 처분을 통보한 셈이다.

졸속입법, 기업 구조조정의 걸림돌

업계의 한 관계자는 “개정 공정거래법이 앞으로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계열사간 사업재편이나 합병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며 “감독당국도 개정 법 적용에 혼선이 빚어지고 있는데다, 대량매물이 나 올 경우 주식시장에도 충격이 가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현대차와 기아차가 유예 기간을 지키기 위해 4000여억원어치의 현대제철 주식을 처분할 경우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는 등 부작용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그룹은 유예기간 연장을 요청할 계획인데, 공정위는 이와 관련한 조항이 법에 명시돼 있지 않아 유권해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다만 주식 처분이 지연되는 것은 위법이지만, 제재 여부를 결정하는 전원회의에서 전반적인 사정을 고려할 수도 있다고 처분기간 유예와 관련 여지는 남겨놓았다.

자산규모 5조원 이상의 대기업 집단에 적용되는 순환출자금지 공정거래법은 박근혜 대통령의 선거공약으로 2013년말 국회에서 통과, 2014년부터 시행됐다.

당시 재계에선 기업들이 인수합병(M&A)에 소극적이 될 수 있는데다, 급변하는 대내외 변수들을 감안할 때 결국 기업의 성장잠재력이 짓밟힐 수 있다는 등을 이유로 법안 상정자체를 우려했었다. 그러나 야당은 대기업의 순환출자구조를 해소해야 한다며 강력하게 법안 통과를 주장해, 순환출자구조의 신규 주식 증가분에 대해 매각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재계 관계자는 “수출부진과 산업계의 지각변동 등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있어 내년역시 생존을 위한 기업의 구조조정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이러한 졸속입법으로 인해 필요한 구조조정마저 위축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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