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1.14 18:08
역사적으로 유명한 문학과 예술 영역의 거장들이 퍽 많다. 그들이 남긴 작품이 이른바 '명품'이다. 그로부터 번져 뛰어난 장인정신이 돋보이는 일반 물건도 이제는 '명품'으로 불린다.

한국에 루이뷔통과 샤넬 등 이른바 ‘명품’이 발을 디딘 지 30년이라는 한 일간지의 보도가 있었다. 처음부터 고가의 이런 비싼 제품들이 ‘명품’이라는 이름을 얻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일반적으로 사치품(奢侈品), 고가의 제품, 호사품(豪奢品) 정도로 불렸을지 모른다.

‘명품’이라는 단어로 정착한 계기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이들 해외 유명 브랜드의 제품 구입에 나서면서 그런 이름을 얻었던 것으로 보인다.

단어 중의 ‘품(品)’이라는 글자는 원래 ‘많은 사람’의 뜻으로 출발했다고 보인다. 동양의 초기 사전격인 <설문해자(說文解字)>에는 ‘여러 사람’을 뜻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입을 뜻하는 ‘구(口)’라는 글자가 세 개 모여 있으니 그런 의미를 획득한 모양이다.

나중에 ‘물건’ ‘제품’ 등의 뜻이 보태져 물품(物品), 식품(食品), 제품(製品), 상품(商品) 등의 무수한 명사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글자의 본래 뜻은 ‘여럿’에서 점차 번져나가 ‘여럿이 의논하는 일’, 더 나아가 ‘감상(鑑賞)’ 또는 ‘평가(評價)’의 뜻을 얻는다.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게 ‘품평(品評)’이다.

‘계급’이나 ‘서열’을 의미하는 경우도 있다. 경복궁 근정전 앞마당에 늘어서 있는 품계석(品階石)이 그 예다. 옛 조선의 관료들이 왕이 주관하는 조회(朝會)에 참석할 때 자신의 벼슬을 새긴 비석 앞에 서도록 하기 위해 만들었던 것이다. 그들의 서열은 벼슬의 높낮이를 가리키는 각자의 ‘품계’에 따라 정해졌다.

‘품위(品位)’도 사실은 그와 같은 뜻이다. 서열(品)의 자리(位)를 가리키는 말인데, 요즘은 “품위를 잘 지켜라” 등으로 쓴다. ‘품격(品格)’이라는 단어도 다를 게 없다. 제 처지에 맞는 격이 곧 품격이다. 역시 제 처지를 잘 모르고 까불거리면 옆의 사람은 “품격도 없이…”라며 끌탕을 친다.

중국은 이 명품을 ‘명패(名牌)’로 표기한다. ‘유명 브랜드’라는 의미다. 왜 같은 품자를 써서 ‘명품’으로 표현하지 않았을까. 여러 답이 있겠으나, 현대 중국어에서는 이 글자를 ‘평가’의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감상한다는 뜻의 단어 ‘품상(品嘗: 우리도 사용한다)’, 맛을 본다는 의미의 ‘품미(品味)’ 등 그런 용례가 매우 발달했다. 우리처럼 ‘물건’ ‘제품’ 등의 뜻도 없지는 않으나, 그렇게 물건을 직접 지칭할 경우에는 ‘화(貨)’라는 글자를 오히려 많이 쓴다.

그나저나 너무 지나치면 부족함만 같지 못한 법이다. 그래서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도 나오지 않았을까. 명품이나 명패나 그에 사족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미쳐버리면 탈이 날 법하다. ‘명품’은 ‘유명 고가품’이라는 의미에 앞서 ‘제대로 만든 물건’이라는 의미다. 국내의 장인(匠人)들이 피나는 노력을 기울여 만든 진짜 ‘명품’에도 눈을 돌려보자.

돈 좀 있다고 비싼 해외 유명 브랜드 제품 마구 사들인다고 해서 품격과 품위를 갖춘 사람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빚을 내면서까지 허영을 좇으려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품격을 제대로 갖춘 사람이라고 하지 않는다. 과시를 위해 제 몸 치장하는 ‘명품’은 그 사람의 품격을 허무는 독소(毒素)이기도 하다.

 

<한자 풀이>

名(이름 명): 네이버 사전의 뜻풀이는 이렇다. 1. 이름 2. 평판(評判), 소문(所聞) 3. 외관(外觀), 외형(外形) 4. 명분(名分) 5. 공적(功績) 6. 글자, 문자(文字) 7. 이름나다, 훌륭하다 8. 이름하다, 지칭하다(指稱--)/ 이밖에 사람의 수를 세는 데도 사용한다. 한 명, 두 명~/‘명품’이라는 명사에서 이 글자는 ‘이름난 물건’의 형용적인 용법이다.

 

品(물건 품): 네이버 사전의 정의다. 1. 물건(物件), 물품(物品) 2. 등급(等級), 차별(差別) 3. 품격(品格), 품위(品位), 질, 성질(性質) 4. 품계(品階), 벼슬 차례, 벼슬의 등급(等級) 5. 종류(種類), 갈래, 가지 6. 법(法), 규정(規定)

 

奢(사치 사): 제 분에 넘치는 일이나 모양새를 일컬을 때 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게 ‘사치(奢侈)’라는 단어다. 제 형편을 고려치 않고 과도하게 꾸미는 일이 바로 사치다.

 

侈(사치 치): 위의 한자와 어울려 ‘사치’라는 단어를 만드는 글자다. 허장성세(虛張聲勢), 즉 실제의 그것보다 크게 벌려 남에게 과시하는 행위나 그런 생각을 가리킨다. ‘크다’ ‘넓다’라는 뜻도 있다. 동양 초기 고전에서는 ‘많이 사용하는 행위’로 나온다. 지나치게 비용을 지출하는 ‘과소비(過消費)’에 해당하는 글자다.

 

豪(호걸 호): 사람 중의 빼어난 이를 말한다. 기운이 크고 왕성해 어딘가에 묶이지 않는 모양의 새김도 있다. 우리가 많이 쓰는 ‘호방(豪放)’이 바로 그 예다. 그런 기운을 남에게 과시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경우에도 이 글자를 쓴다. 집안이 잘 나가 남에게 떵떵거리는 가족이 바로 ‘호족(豪族)’이다.

 

階(섬돌 계): 계단을 일컫는 글자다. 디디고 올라서기 위해 만든 섬돌을 말한다. 그 뜻이 번져 서열을 일컫는 ‘위계(位階)’라는 새김으로 많이 쓰인다.

 

牌(패 패): 무엇인가를 적거나 새겨 알리는 패. 간판이라는 의미도 있어, 중국에서는 ‘브랜드’라는 새김을 얻었다. 한국에서는 그저 책상 등에 이름을 새겨 올려놓는 패 정도로만 쓴다. 과거 조선에서 열녀(烈女)와 효자(孝子) 등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게 정문(旌門)인데, 중국에서는 이를 牌坊(패방)으로 적는다.

 

<중국어>

名牌 míng paí 이름을 적는 명패, 상점 등의 간판이라는 뜻이 있다. 그러나 요즘 중국에서는 유명 브랜드, 즉 명품을 지칭한다. ‘명품’을 정확하게 표현할 때는 이 뒤에 貨(화)huò, 또는 産品(산품)chǎn pǐn을 붙인다. ‘名牌貨’, ‘名牌産品’이 우리식 명품에 정확하게 대응하는 단어다.

 

品茶 pǐnchá ‘차를 감상하다’의 뜻이다. 좋은 차를 뜻하는 명(茗)을 붙여 品茗 pǐnmínɡ 이라고도 한다.

 

品嘗 pǐncháng 음식의 맛 등을 감상한다는 뜻. 品味 pǐn wèi라고도 하는데, 品嘗은 감상하다는 동작에 중점을 둔 말, 뒤의 品味는 ‘맛’을 강조한다는 차이가 있다.

 

<관련 성어>

品頭評足(品头评足) pǐn tóu píng zú 얼굴과 발을 품평한다는 뜻. 원래는 경박한 의미로 ‘여성의 외모를 평가하다’는 뜻으로 쓰였으나, 요즘은 사람을 이리저리 뜯어본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品頭論足(品头论足) pǐn tóu lùn zú도 같은 뜻의 성어다.

 

品學兼優(品学兼优) pǐn xué jiān yōu 인품과 학업이 모두 우수한 경우에 쓴다. 학생에게 내리는 아주 좋은 평어(評語)다. “품행이 바르고 공부도 잘 한다”는 칭찬이다. 인품(品)과 학업(學)이 모두(兼) 우수(優)하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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