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1.22 17:13
옛 문서 작업에서 교열이라는 행위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인형이다. 도자로 만든 옛 중국 유물로 두 사람이 치열하게 문서 교정작업을 하는 장면을 묘사했다. '원수'라는 단어와도 관련이 있다.

쓰인 글에 잘못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는 일이 바로 교정(校正)이다. 글자 ‘校(교)’에 그런 행위를 가리키는 새김이 있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게 ‘바로잡다’의 의미를 지닌 ‘정(正)’이다. 그러나 이 단어의 뿌리를 좇아 올라가면 우리는 이상한 글자와 마주친다. 바로 원수(怨讐)를 뜻하는 ‘讐(수, 또는 讎라고도 쓴다)’라는 글자다.

교정이라는 글다듬기 작업과 ‘원수’는 도대체 어떻게 어울릴까. 과거 중국에서는 글 교정 작업을 수서(讐書)라고 적었다. 교정을 맡은 사람 둘이서 서로 마주 보며 앉아 한 사람은 읽고 한 사람은 내용을 보면서 매우 치밀하게 글을 다듬는 작업이었다. 원래 그 뜻에서 출발한 ‘讐(수)’라는 한자는 글을 다듬는 두 사람의 태도가 마치 적을 대하듯 심각하게 다투는 모습을 닮았다는 이유로 ‘원수’의 의미를 얻었다고 보인다.

종이를 발명하기 이전에는 대나무 등을 쪼개 만든 죽간(竹簡)이나 얇은 비단 등에 글을 썼고, 다시 그 내용을 다른 죽간이나 비단 등에 옮겼다. 그런 작업을 수행하는 사람들이었으니 한 글자 한 글자를 다루는 신중함이 보통이 아니었으리라. 따라서 한 글자에 쏟아 붓는 주의력과 그로부터 나오는 스트레스는 현대의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온 단어가 수교(讎校) 또는 교수(校讎)다. 아울러 교서(校書), 두 사람이 마주 앉아 글을 다듬는다고 해서 대서(對書) 또는 대교(對校)라는 단어도 나왔다. 교감(校勘)과 교열(校閱)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다. 이 모두 정확하며 그르침이 없는 결과를 얻기 위한 치열한 노력의 과정이다.

종이가 세상에 선을 보여 글 쓰고 다듬는 과정이 좀 나아졌겠으나 교정에 관한 노력은 여전했을 법. 그러나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글을 만지고 다듬는 과정은 매우 수월해졌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다가 틀리면 지우개나 뭐 그런 것 없이도 그냥 지우고 다시 쓰면 그만이니까 말이다.

우리 행정당국은 가끔 그런 흐름에 빠진다. 세법 개정안을 발표한 청와대 경제팀이 중산층으로부터 사실상 증세를 시도했다가 여론의 질타에 밀려 입장을 바꾼 일을 보면 말이다. 물론 글을 다듬는 작업은 아니었으나, 막바지에 그를 세심하게 따져보는 ‘내용의 교정’에서는 실패한 셈이다.

얼굴을 붉혀 가면서 원수를 대하듯 글을 다듬고 다듬었던 옛 동양의 교정자들로부터 정부는  아무래도 크게 배워야 할 듯하다. 국민을 상대로 내놓는 정책의 무게에 비춰 그를 다듬고 고치며, 마지막 순간까지 검토하고 또 검토하는 치열함은 어디에도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자 풀이>

校(학교 교): 아무래도 학교(學校)의 새김이 우선이다. 그러나 군대 또는 그들이 머무는 군영(軍營)의 뜻도 있다. 옛 동양 군인의 직위에 이 글자가 자주 들어간다. 요즘 군대의 ‘장교(將校)’도 이 글자를 붙인다. 교위(校尉) 등의 옛 군인 장교 명칭이 유명하다. ‘헤아리다’ ‘따지다’ 등의 의미도 있다. ‘교정’ 등의 단어에서 나오는 쓰임새다.

讐(원수 수): 讎와 같은 글자다. 원수라는 의미가 우리에게는 워낙 강하다. 그 초입에서는 본문에서 소개했듯이 글을 다듬는 두 사람의 의미였을 것이다. ‘대답하다’, 또는 ‘갚다’ 등의 새김도 있다.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怨讐)’라는 말은 우리에게 쓰임이 많다. 함께(俱) 같은 하늘(天)을 이고(戴) 살 수 없는(不) 원수라는 의미다.

 

<중국어&성어>

校正 jiào zhèng: 학교의 의미를 나타낼 때 校의 발음은 xiào다. 고치다, 다듬다 등의 ‘교열’ 이라는 의미일 때는 발음이 jiào다. 주의하자.

校阅(閱) jiào yǖe: 우리가 흔히 쓰는 교열과 같다. 중국어에서는 문자를 다듬는 교열의 의미를 넘어 남을 감독하거나, 일의 오류 유무를 체크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경우도 많이 보인다.

校勘 jiào kān: 조사하는 행위다. 뒤의 勘이라는 글자도 조사, 감독 등의 행위를 의미한다.

校对(對) jiào duì: 교열작업을 가리키는 단어다.

校雠(讎) jiào chóu: 위와 같다.

雠(讎)와 讐 chóu: 같은 글자다. 그러나 현대 중국어에서는 ‘仇(원수 구)’라는 글자로 이 의미를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발음은 같다. 원수에게 사무친 한을 ‘仇恨 chóu hèn’이라고 적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同仇敌忾(敵愾) tóng chóu dí kài: 많이 쓰이는 성어다. 같은 적을 두고 함께 대항한다는 의미다.

冤家路窄 yuān jiā lù zhǎi: ‘冤家’는 역시 원수를 가리킨다. 원수와 마주치는 길(路)이 좁다(窄)는 의미인데, 우리말로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와 같은 의미다. 잘 쓰는 성어다.

‘왜 하필 또 저 녀석이지…’라며 속으로 끌탕을 칠 때 많이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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