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윤주진기자
  • 입력 2016.01.28 14:08
윤주진 뉴미디어 에디터
순식간에 불이 번졌다. 건조할대로 건조해진 초목에 작은 성냥불도 아닌 횃불이 떨어졌으니 그 불길이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불과 며칠전까지만해도 국회선진화법 개정을 두고 찬반론에 휩싸여있던 국회는 이제 여당 내부의 책임 공방으로 그 논란이 옮겨갔다. 김무성 대표의 이른바 ‘권력자’ 발언 때문이다. 

사실 여당 내부에서는 불편한 진실 중 하나였을 것이다. 어쨌든 당시 국회선진화법을 통과시킨 주체는 새누리당이었다. 170석 이상의 절대 다수를 점하고 있었던 새누리당이 동의하지 않았다면 국회선진화법은 오늘날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당을 이끌던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었고, 아직 19대 국회가 개원을 하지는 않았지만 주류는 친박이었다. 김무성 대표의 권력자 발언이 전혀 틀리지는 않았다는 시각도 그래서 나온다. 

하지만 김 대표가 국회선진화법을 두고 ‘박근혜 책임론’을 들고 나올리는 만무하다. 어차피 선진화법은 개정의 대상이지, 정권 타도의 수단은 아니다. 김 대표가 대통령과 맞설만한 명분이 있는 이슈도 아니다. 어차피 대통령이든 김무성 대표든 선진화법 개정에 대해서는 한목소리다. 그렇다면 왜 김 대표는 권력자 발언을 했을까. 단순한 말실수일까, 아니면 계산이 깔린 발언일까. 그리고 왜 그는 즉각 철회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을까.

결국은 4월 총선을 앞두고 공천권과 관련된 여당 내부의 갈등 기류와 엮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한동안 잠잠했던 친박·비박의 갈등이 인재영입, 전략공천 등을 중심으로 불거져 나오면서 자연스레 ‘김무성 포위’ 구도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야당에서 너도나도 인재 영입에 서두르면서 적잖은 흥행 효과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보니, 김 대표의 입지는 줄었을 수밖에 없다. 

김 대표는 무조건 상향식 공천을 추진하겠다며 그 어떠한 경우도 공천을 염두에 둔 인재영입이나 거물급 인사에 대한 단수추천, 즉 전략공천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다른 원내 지도부는 김 대표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 듯 인재 영입이 필요하다는 주장과 함께 심지어 별도로 인재를 영입하고 있는 듯 한 발언까지 했다. 

친박의 실세 중 실세라 불리는 최경환 의원은 특사 자격으로 다보스포럼에 다녀온 후 귀국하자마자 김무성 대표의 인재 영입이 부실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홍문종 의원은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각종 인터뷰를 통해 전략공천의 필요성을 언급해왔다. 안대희 최고위원과 오세훈 전 시장에게 권유한 ‘험지출마론’에 대해서도 꾸준히 비판해왔다. 게다가 함께 원내 지도부를 구성하고 있는 원유철 원내대표도 공천을 염두에 둔 인재영입이 필요하다며 김 대표를 압박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권력자 발언은 김무성 대표의 ‘항의 표시’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정치권 관계자의 전언이다. 한 여권 관계자는 “김무성 대표의 상향식 공천에 대한 집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면서 “친박 의원들이 상향식 공천을 반대하는 것을 두고, ‘원칙을 무너뜨리는’ 행위로 받아들여서 선진화법 당시 정국에 빗대어 비판한 것 같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한편 김무성 대표는 서청원·김태호·이인제 등 다른 최고위원들의 공개적 비판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사과나 철회 의사를 밝힌 바 없다. 그간 당청 갈등이 불거지면 곧바로 몸을 숙이던 과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그만큼 김무성 대표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김무성 대표가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질만한 이유도 있다. 한 여권 관계자는 "총선은 박 대통령과 청와대 입장에서도 결코 가벼이 볼 수 없기 때문에, 어쨋든 당권을 쥐고 있는 김무성 대표와의 전면전을 하기에는 이미 시기적으로 늦었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다소 높은 수위의 반박을 내놨던 청와대가 27일 언급을 아낀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무성 대표의 이 같은 ‘버티기’가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 여권 관계자 다수의 시각이다. 무엇보다도 김 대표의 발언 자체가 정확하지 못했다는 점 때문이다. 박근혜 비대위원장 체제에서 선진화법을 통과시킨 것은 맞지만, 당시 최경환 의원이나 윤상현 의원, 유기준 의원 등 친박계 의원들도 반대 혹은 기권했었고 당시 18대 국회 막바지였기 때문에 친박계 의원이 다수였던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천관리위원회가 구성되면서 자연스럽게 이번 갈등이 봉합되고 당분간은 선진화법 개정 압박에 행보를 맞출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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