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고종관 기자
  • 입력 2018.12.26 13:32

서울성모병원 채민석ㆍ허재원 교수팀
수술 성공사례 드물어 국제학술지에 소개

채민석(왼쪽)교수와 허재원 교수
채민석(왼쪽)교수와 허재원 교수

[뉴스웍스=고종관 기자] 숙련된 마취과 전문의가 심장 기능이 저하돼 수술이 어려운 환자의 간ㆍ신장 동시이식수술을 맞춤형 마취관리로 성공시킨 사례가 국제학술지에 보고됐다.

서울성모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채민석·허재원 교수팀은 장기이식센터 간이식팀 김동구·유영경·최호중(간담췌외과)교수와 신장이식팀 윤상섭·박순철(혈관이식외과), 조혁진(비뇨의학과) 교수 등과 함께 간과 콩팥을 동시에 이식 받아야 하는 60대 남성환자를 살려내 최근 퇴원시켰다고 26일 밝혔다.

이 사례는 심장초음파를 확인하며 마취 중 환자의 생리적 변화를 면밀하게 관찰한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또 혈액형 일치 간이식과 혈액형 불일치 신장이식을 한 첫 수술례로 기록됐다.

현재 세계적으로 동시 장기이식 수술 중 환자의 마취관리 매뉴얼은 없다. 따라서 이번 연구결과는 앞으로도 유사한 사례의 중요한 의학 참고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환자는 간경화와 만성신부전을 동시에 앓고 있었다. 환자는 수술 전 심장기능이 저하돼 심한 좌심방 확장 및 좌심실 비대(심장이 정상에 비해 커져있는 상태)였다. 심장의 전기적 활동을 측정하는 심전도 QT 간격도 연장돼 수술 중 실신과 경련은 물론 심할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간을 먼저 이식받은 환자는 우려대로 재관류증후군이 심하게 발생했다. 새로운 장기가 이식되고 나면 혈압이 ‘0’에 가까운 저혈압이 되며, 심장이 거의 멈추는 상태까지 간다. 일반 장기이식 매뉴얼대로 심장기능을 살리는 에프네프린 약제를 사용하였지만, 오히려 중심정맥 압력과 평균 폐동맥 압력이 위험수준까지 증가해 이대로는 환자의 심장이 수술을 버틸 수 없었다.

채민석 교수팀은 일반적인 수술에서 사용하지 않는 ‘응급사혈요법(phlebotomy)’을 택했다. 즉 환자의 중심정맥관을 통해 혈액을 빼내 심장 크기가 정상보다 커져 위험해진 환자의 심장기능을 정상으로 하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미 간이식 때 출혈이 심한 상황이라 환자의 생리적 변화를 정확하고 면밀하게 관찰해야 했다. 다행히 채 교수의 판단대로 몸에서 200cc가량의 피를 빼자 환자의 심장기능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환자의 상태가 안정된 것을 확인하고 추가 수혈을 진행하였다.

한편의 드라마 같은 고비를 넘긴 뒤 바로 진행된 신장이식수술도 만만치 않았다.

이는 두 수술의 수액요법이 상반되기 때문이다. 간이식은 수술 후 간이 붓는 간 부종으로 간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수액을 덜 공급해야 하지만, 콩팥은 수액을 최대한 많이 공급해야 한다. 이식수술 후 신속하게 기능을 회복해야 소변을 만들 수 있기 때문.

특히 심장기능이 심하게 저하된 환자의 적절한 수액요법 매뉴얼도 없고, 게다가 환자의 혈액형과 불일치하는 기증자의 콩팥을 이식해야 해서 그야말로 산 넘어 산이었다.

의료진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신장만 단독으로 하는 수술법과 다른 수액요법을 결정했다. 환자가 신장 이식수술을 다 마칠 때까지, 많은 양의 수액을 투여하기보다, 기존 환자가 가지고 있던 수액의 양 만큼만 적절하게 유지해 부족하지 않도록 정확하게 수액을 공급한 것이다.

신장 관류압 증가를 위해 단독 신장이식 수술 때처럼 신장이식편 문합(吻合) 전에 많은 양의 수액을 투여하면 이식된 간에 부종을 초래해 간기능 회복을 저하시킬 수 있을 것이고, 결국 수술 후 예후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마취과 전문의로서의 판단이었다.

신장이 환자에 성공적으로 이식되고, 혈관으로 이어지면서 소변이 나오는 것을 본 후 그때 부터 수액량을 늘리기 시작했다. 환자는 12시간30분이라는 긴 수술 끝에 중환자실에 입원, 수술 후 7일째 호전된 상태로 일반병동으로 옮겨졌으며, 수술 후 6개월이 지난 지금 건강한 생활을 하고 있다.

채 교수는 “여러 장기를 동시이식할 경우, 마취관리에 대한 지침은 세계적으로 드물다”며 "이를 위해선 복잡한 환자의 병태생리에 맞춰 여러 혈역동학적 마취관리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춰야 수술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장기이식 국제학술지 ‘이식회보(Transplantation Proceedings)’ 인터넷판에 먼저 소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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