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2.05 10:36
북송(北宋) 때의 유명한 관리 포청천의 초상이다. 그는 엄정한 법도에 따라 시비를 분명히 가린 판관으로도 유명하다. 시비를 제대로 가리지 못하는 사회에는 큰 위기가 닥칠 수 있다.

한국을 늘 뜨겁게 달구는 단어가 시비(是非)다. ‘옳음’을 의미하는 ‘是(시)’와 ‘그름’을 뜻하는 ‘非(비)’라는 두 글자가 함께 병렬해 있는 상태다. 이렇듯 서로 뜻이 반대인 글자를 나란히 놓아 상황에 대한 판단 등을 묻거나 가리키는 식의 단어는 즐비하다.

위냐 아래냐를 따지자는 게 상하(上下), 낮과 밤을 가리키는 주야(晝夜), 밝음의 여부를 묻는 명암(明暗), 추위와 더위를 표현하는 한서(寒暑), 꽃 등이 피고 짐을 따지는 영고(榮枯) 와 성쇠(盛衰) 등이 있다.

이 번 글의 주제는 그러나 ‘시비(是非)’다. 이와 비슷한 새김의 단어는 곡직(曲直)이다. 굽었는가(曲), 아니면 제대로 뻗었는가(直)를 묻는다. 정확한가, 아니면 틀렸는가를 가리키는 단어로는 정오(正誤)가 있다. 색깔을 동원하는 경우도 있다. 우선 흑백(黑白)이다. 검은 쪽이냐 아니면 흰 쪽이냐를 묻는다. 나아가 파랑이냐 빨강이냐를 따지는 청홍(靑紅)도 있다.

다 ‘시비’와 관련이 있는 단어들이다. 시비는 옳고 그름의 새김을 떠나 그 따지는 행위로 생겨나는 혼란과 분규도 가리킨다. ‘곡직’이라는 단어는 ‘이런 저런 사정 따지지 않고…’라는 의미의 ‘불문곡직(不問曲直)’이라는 성어 때문에 우리에게는 매우 친숙하다.

‘정오(正誤)’는 출판업계에서 자주 사용했던 정오표(正誤表)의 용례가 대표적이다. 책을 만든 뒤 잘못 쓴 오자(誤字)나 누락한 탈자(脫字) 등을 바로잡아 만든 표다. 색깔이 등장하는 ‘흑백’이나 ‘청홍’은 때로 사람을 압박한다. 당신은 어느 편에 서있는가를 묻는, 이른바 ‘진영(陣營)의 논리’로 몰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가와 사회의 틀 안에서 벌이는 시비가 제대로 방향조차 잡지 못한 채 진흙 밭 강아지 싸움만으로 흐르는 경우다. 차분하게 시비를 따지는 자질은 우리에게 애당초 없는 덕목일지 모른다. 국가의 발전을 위해 모아져야 할 중지(衆智)는 경제적인 사안에서조차 작고 보잘 것 없는 다툼에 쉬이 흩어지고 만다. 뭐가 옳고 그른지를 가르는 손쉬운 ‘정오표’ 작정마저 불가능해 보인다.

잘함과 잘못함의 ‘잘잘못’, 즉 시비를 가르는 일은 어엿한 법과 제도를 갖춘 우리 사회에게 불가능한 작업이 결코 아니다. 그러나 정파적 이익에서 벌이는 다툼이 아주 그악해 시비가 흑백의 다툼으로 이어지다가, 결국 ‘너 죽고 나 살자’ 식 선악(善惡)의 정쟁으로까지 번지니 한심하기만 하다.

콩과 보리를 제대로 가리지 못하는 사람이 숙맥(菽麥)이다. “이 숙맥 같은 인간아!”라고 하면, 그는 똥인지 된장인지 구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우리사회가 그와 같다. 분명한 시비조차 가리지 못하면 커다란 위기가 닥친다고 했다. 그 점이 정말 두렵다.

 

<한자 풀이>

是(이 시, 옳을 시): 이, 이것. 여기. 무릇. 옳다, 바르다. 바르게 하다. 옳다고 인정하다(시인). 다스리다.

非(아닐 비, 비방할 비): 아니다. 그르다. 나쁘다, 옳지 않다. 등지다, 배반하다. 어긋나다. 벌하다. 나무라다, 꾸짖다. 비방하다, 헐뜯다.

曲(굽을 곡, 누룩 곡): 굽다, 굽히다. 바르지 않다. 불합리하다. 정직하지 않다. 공정하지 않다. 그릇되게 하다. 가락. 악곡.

直(곧을 직, 값 치): 곧다, 굳세다, 옳다. 펴다, 곧게 하다. 꾸미지 아니하다.

榮(영화 영, 꽃 영): 영화, 영예, 영광. 피, 혈액. 꽃. 무성하다. 싱싱하다.

枯(마를 고): 마르다, 시들다. 말리다. 약해지다. 쇠하다, 야위다. 마른 나무. 해골.

菽(콩 숙)

麥(보리 맥)

 

<중국어&성어>

是非曲直 shì fēi qū zhí: 잘잘못, 즉 시비 또는 그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 曲은 ‘굽다’라는 새김에서는 qū, 음악 등의 악곡 등을 가리킬 때는 qǔ 로 발음한다. 성조에 차이가 있다.

青红(紅)皂白qīng hóng zào bái: 파랑과 빨강, 검정(皂=黑)과 흰색. 이를 테면 어떤 상황 안에 숨어 있는 시비와 곡절, 이유, 원인 등이다. 앞의 是非曲直 shì fēi qū zhí와 맥락이 같다.

不分青红皂白 bù fēn qīng hóng zào bái: 우리 식 성어 ‘불문곡직(不問曲直)’과 같은 뜻이다.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의 의미다.

不辨菽麦(麥) bù biàn shū mài: 콩과 보리를 잘 가리지 못하는 사람.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숙맥’, 또는 그럴 정도로 어리석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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