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고종관 기자
  • 입력 2019.03.11 11:52
고어사가 개발한 가볍고 강한 폴리머 폴리테트라플루오로에틸렌(PTFE). 의료용 등 다양한 용도로 쓰인다.
고어사가 개발한 가볍고 강한 폴리머 폴리테트라플루오로에틸렌(PTFE). 의료용 등 다양한 용도로 쓰인다.

[뉴스웍스=고종관 기자] 소아심장질환 수술에 필요한 제품의 공급 여부를 놓고 상당기간 불편한 관계를 보였던 정부와 외국기업과의 줄다리기가 정리가 돼 가는 모양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보건복지부는 11일 국내 시장 철수로 한동안 중단됐던 고어사(社) 인공혈관의 국내 수급을 위해 관계 공무원들이 현지를 방문해 공급재개를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의 발단은 2017년 10월 고어사의 한국시장 철수에서 비롯됐다.

당시 고어사는 국내 대학병원과 공급 대리점에 공문을 보내 미국 본사의 이 같은 제품 결정을 통보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당장 국내 환자들과 병원의 반발과 분노가 이어졌다. 소아심장 수술에 쓰이는 인조혈관은 고어사 제품이 유일해 어린 환자들을 사지에 몰고가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은 불보듯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어측의 결정은 바뀌지 않았다. 당시 관련 학회에 따르면 철수 배경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가격구조다. 다른 나라의 공급가보다 우리 정부가 인정한 가격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배경이다. 예컨대 미국의 경우 인조혈관 공급 단가가 80만원이지만 우리나라는 약 40만원에 불과해 이익구조가 형성되지 않는다는 것.

두 번째는 법적인 요건과 감시장치다. 신제품 수입등록 시 식약처가 요구하는 서류와 자료에 기업비밀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학회 관계자는 "식약처의 현지 의료기기 시설을 점검하는 GMP 제도 역시 철수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이번 사태를 두고 대안 없이 가격 후려치기와 규제의 칼자루를 휘둘렀던 정부의 대응 미숙이라는 평가를 내리는 이유다.

이번 정부의 요청에 고어사가 한번 틀어진 결정을 바꿔 제품 공급을 재개할지는 미지수다.

이미 지난 2월 8일 정부는 소아심장수술에 필요한 인공혈관과 봉합사에 대해 고어사에 공급 재개를 요청했다. 하지만 고어사는 지난 8일 국내에 타사 대체품이 있다는 이유로 공급이 불필요하다는 회신을 했다. 물론 이 같은 거절 사유는 성인용과 달리 소아용은 고어사 제품이 유일하다는 점에서 핑계에 불과하다.

식약처 관계자도 “폰탄수술(우심방·폐동맥 우회술)에 쓰이는 PTFE(폴리테트라플루오로에틸렌)재질 10㎜ 이상 인공혈관은 고어사만 생산하며, 같은 직경 타사제품은 재질이 달라 사용이 어렵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번에 고어사의 모든 계약조건을 수용한다는 방침이다. 고어사를 방문해 국내 소아심장병 환자들이 겪고 있는 상황을 설명하는 한편 그동안 치료재료 가격제도 개선 등을 설명하고, 회사가 제시하는 조건을 적극 수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학회 관계자는 “지금에 와서야 머리를 수그리고 고어측의 모든 결정에 따르겠다는 식의 정부의 어리숙한 대응이 안타깝다"며 ”더 이상 무모한 밀어붙이기식 행정으로 환자가 피해를 보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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