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2.12 14:48
나이 어린 아이들이 미군으로부터 심문을 받고 있다. 6.25전쟁 때 북한군에 강제 동원된 아이들의 모습니다. 전쟁 자체가 잔인하지만, 어린이들까지 군인으로 동원한 북한의 태도는 잔인의 극점에 닿았던 셈이다.

잔(殘)이라는 글자는 다른 존재 등을 ‘해친다’는 게 으뜸 새김이다. 거기서 다시 본체(本體) 등이 잘려나간 상태, 즉 ‘나머지’의 뜻을 얻는다. 잔여(殘餘), 잔존(殘存) 등이 그 예다. 이어 ‘잔인하다’ ‘잔혹하다’ 등의 새김까지 획득한다.

우리가 자주 쓰는 단어가 ‘잔인(殘忍)’이다. 앞의 ‘殘’이라는 글자는 그 새김이 명확해서 문제가 없다. 뒤에 붙는 ‘忍’이 아무래도 부자연스럽다. 이 글자의 우선적인 의미는 ‘참다’다. 인내(忍耐)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왜 ‘殘’에 이어 붙여 ‘잔인하다’의 조어(造語)가 가능해진 것일까.

그래서 사전을 뒤적인다. 글자 뜻에는 분명히 ‘잔인하다’의 새김이 있다. 그런데 왜 ‘잔인하다’에 ‘참는다’는 뜻의 ‘忍’을 붙였는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거나, 최소한 부족하다. 더 사전을 뒤적이니 이렇게 나온다.

동양 최초의 자전이라고 해도 좋을 『설문해자(說文解字)』의 경우다. 이 책에는 ‘忍’의 새김을 ‘능(能)’이라고 했다. 어떤 경우라도 참고 참아 무엇인가를 이뤄내는 사람을 지칭했다고 보인다. 그렇다면 忍은 ‘참다’의 대표적 새김 말고, ‘모질다’의 의미도 지녔다고 봐야 한다.

마침 한자 사전을 보니 뒷부분에 ‘질기다’의 뜻이 붙어 있다. 상황을 견뎌내 무엇인가를 이루면 그 사람은 모질고 질기다. 그런 뜻에서 殘에 忍을 붙여 ‘殘忍’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던가 보다.

요즘 8세 아동을 숨지게 한 계모가 화제다. 어린 생명을 상습적으로, 아울러 마구 때려 결국 그런 지경에까지 이르게 했으니 잔인하기 그지없다. “소풍만은 보내 달라”며 애원했던 아이의 마지막 소망까지 외면하고 곧이어 그를 죽게 버려뒀다고 하니 망연하기까지 하다. 잔인에 덧붙여 성정이 포악하면 잔포(殘暴), 그래서 독하기 그지없을 정도면 잔혹(殘酷), 더 나아가면 잔악(殘惡)과 잔학(殘虐)이다. 이런 사람의 성정이 곳곳에서 출현한다면 그 사회는 중증에 걸렸다고 할 수밖에 없다. ‘잔혹한 역사’를 줄여 잔혹사(殘酷史)라고 적겠지. 그를 딴 영화 제목이 ‘말죽거리 잔혹사’인데, 말죽거리 정도가 아니라 대한민국 전역이 그리 변해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한자 풀이>

殘(잔인할 잔, 남을 잔): 잔인하다, 흉악하다. 해치다. 없애다. 죽이다, 살해하다. 사납다. 모자라다, 완전하지 못하다. 남다. 나머지. 재앙. 상처.

忍(참을 인): 참다. 잔인하다. 동정심이 없다. 차마 못하다. 질기다. 용서하다. 참음.

暴(사나울 폭, 쬘 폭, 사나울 포, 앙상할 박): 사납다, 난폭하다. 해치다. 모질다. 세차다. 맨손으로 치다. 불끈 일어나다. 업신여기다. 조급하다. 갑자기. (햇볕 등을) 쬐다.

酷(심할 혹): 심하다. 독하다. 괴롭다. 심히.

 

<중국어&성어>

残(殘)暴 cán bào: 잔인하고 흉포하다. 흉악하다.

残忍 cán rěn: 잔인하다.

残酷 cán kù: 잔혹하다.

残年 cán nián: 여생(餘生), 인생의 말년. 殘餘

残余(餘) cányú= 残存 cán cún: 잔여, 잔존.

残年暮景 cán nián mù jǐng: 사람의 인생 말년.

骨肉相残 gǔ ròu xiāng cán: 골육상쟁.

残暴不仁 cán bào bù rén: 잔악하고 포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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