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고종관 기자
  • 입력 2019.03.11 19:16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의뢰환자 111명 중 17%…적극 조사하면 더 많은 환자 드러날 듯

산업의학과 김희제 교수.
직업환경의학과 김희제 교수.

[뉴스웍스=고종관 기자] 급성골수성백혈병환자 19명이 작업환경과 관련해 발병한 것으로 새롭게 판명됐다. 이들 환자의 업무환경이 백혈병 발병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법적소송 등 사회적 파장이 예상된다.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혈액병원은 직업 관련 급성골수성백혈병의 규모와 역학적 특성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19명이 업무상 사유로 백혈병 발병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정된다고 11일 밝혔다. 병원측은 또 이들에게 산재보험 신청을 안내하는 한편 19명 중 5명은 업무관련성이 특히 높아 퇴원 후 요양을 할 수 있도록 ‘산재요양소견서’를 발부했다고 설명했다.

이들 환자의 직업은 폐수처리업 종사자, 페인트 도장작업자, 타이어제조업 종사자, 실험실 연구종사자 등이다.

이번 환자들의 산재신청 과정은 종래 방식과 달라 눈길을 끈다. 지금까지 환자들은 증상이 나타난 뒤 병원을 찾아가 진단을 받고, 산재를 신청하거나 회사를 상대로 법적소송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순서였다.

하지만 이번엔 병원이 직접 나서 치료 중인 백혈병 환자를 대상으로 직업과의 관련성을 밝힌 뒤 산재를 안내하는 구조다.

실제 서울성모병원 급성백혈병센터 김희제·조병식·박실비아 교수팀은 지난해 6~12월 급성골수성백혈병으로 새롭게 진단한 환자 중 111명을 직업환경의학과 강모열 교수팀에 조사를 의뢰했다. 강 교수가 의뢰받은 환자는 남성이 56명(50.5%), 여성 55명(49.5%)이었고, 30대 미만이 22명(19.8%), 40대 24명(21.6%), 50대 34명(30.6%), 60대가 24명(21.6%), 70대 이상이 7명(6.3%)이었다.

강 교수는 이들 환자를 대상으로 노출물질, 노출기간, 노출정도, 잠복기 등을 고려해 자체 직업 관련성 예비평가 프로토콜를 구축해 적용했다. 그 결과, 환자의 17%인 19명이 업무상 사유로 질환이 발생했다고 판정한 것이다.

백혈병은 미성숙 상태에서 만들어진 불량혈액이 과다증식하는 질환이다. 급성골수성백혈병은 혈액암 중 림프종에 이어 두 번째로 흔한 악성암으로, 우리나라에선 연 1000~1500명의 새 환자가 발생한다. 하지만 업무와의 발병 연관성 인정은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에 따라 서울성모병원은 직업환경의학과와 연계한 전문 진단시스템을 구축하고 6개월째 운영 중이다.

이렇게 의료계가 급성골수성백혈병 발병의 원인규명에 직접 뛰어들면서 직업과의 관련성 환자가 더 많이 드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급성골수성백혈병을 일으키는 원인은 정확히 밝혀지진 않았다. 다만 다운증후군이나 클라인펠터증후군 등 염색체 구조 이상, 원폭·검사장비에 의한 방사선 오염, 벤젠·페인트·살충제 등 화학물질 노출 등을 추정한다. 

백혈병은 급성과 만성으로 분류되는데 만성골수성백혈병은 다양한 표적항암제가 개발돼 평균 수명을 누릴 수 있을 정도로 치료가 잘된다. 하지만 급성은 뾰족한 치료제가 없어 골수이식에 의존하고 있다. 항암제를 쓰더라도 부작용이 심하고 내성 때문에 생존율이 낮다.

직업환경의학과 강모열 교수는 “의학적 평가를 통해 '직업성 암'으로 판정하면 정당한 보상을 받도록 돕는 것이 목적”이라며 “이 같은 과정으로 유해요인이 파악되면 질병 예방뿐 아니라 국가 의료비 부담을 줄이는 효과도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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