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만수 기자
  • 입력 2019.04.12 08:19

[뉴스웍스=최만수 기자]

우리 정치판에서 감동이 사라졌다. 살벌한 증오만 가득하다. 사사건건 날선 공방만 난무한다.

정치인들의 입은 경쟁적으로 거칠어졌다. 상대에 대한 배려는커녕 최소한의 예의마저 실종된 후안무치가 판을 친다.

달라진 언론환경도 한몫 거든다. 종합편성채널(종편)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선 하루 종일 뉴스가 넘친다. 요즘은 정치를 하거나, 하려는 자들이 SNS를 통해 아무 말이나 쏟아낸다. ‘아니면 말고’식의 무책임한 주장이 객관의 형식(알려진다, 보인다, ~인 것 같다 등)으로 그럴듯하게 포장된 채 유통된다.

불량식품이 몸을 해치듯 불량언론은 정신을 병들게 한다. 민주국가에서 언론·표현의 자유는 필수불가결하다. 하지만 중학생도 알만한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금언을 잊은 듯하다.

문재인 정권의 반대편에 있거나, 불만이 많은 야권 인사들이 최근 한 기업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정권 탓이라고 몰아붙인다. 사망의 원인이 숙환(폐질환)이라고 해도 그들은 정권의 수사 스트레스와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가 고인의 죽음을 앞당겼다고 단정한다. 개인의 죽음을 정쟁 도구로 삼고자 하는 불순한 시도가 엿보인다. 극심한 스트레스가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이 될 수 있지만, 굳이 정권 탓으로 몰고 가려는 의도가 불건전하다.

한 개인의 죽음을 정쟁 도구로 삼아선 안 된다. 조 회장의 사망원인을 규명하는 특위라도 구성해야 직성이 풀리겠는가. 정치인들이 정권 탓하기보단 고인을 추도하는데 정성을 더 기울이는 게 국민 정서에 이로울 것이다.

정치가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삶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자기가 중요한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다. 국회의원, 자치단체장은 물론이고 지자체 의원만 돼도 안하무인이 된다. 그들은 입만 열면 국민(주민)을 들먹이지만, 그 주인들은 머슴들에게 낙제점을 매긴지 오래다.

‘해외연수 추태’로 캐나다에서 망신살이 뻗친 예천군의원들이 법원에 제명처분 취소소송을 냈다. 이들은 지난 2월 1일 제명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비난 여론이 숙지자 “술 먹으러 가자고 한 게 의원직에서 제명될 정도로 큰 잘못이냐”고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여성 접대부를 요구하고, 화가 나면 가이드를 폭행할 수도 있다. 문제는 그들이 의원의 신분으로 세금을 들여 해외연수를 다녀왔다는 사실이다. 엄격한 도덕적 잣대가 요구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게 불편하고, 억울하면 의원을 그만두고 일반인으로 돌아오면 될 일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자녀를 잃은 슬픔에다 “너무 많이 요구한다”는 일부의 부정적 시각 때문에 더욱 아팠다. 끔찍한 지진의 공포를 경험한 포항시민들도 마찬가지다.

포항시민들이 정말 바라는 것은 물질적 보상이 아닌 정부의 진심어린 사과다. 문재인 대통령이 “정부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지 못해 정말 죄송하다”란 말을 먼저 했어야 했다. 특별법 제정이나 배·보상, 도시재건은 차후의 일이다.

지진공동조사단이 포항지진은 지열발전으로 인한 촉발지진이라고 발표한 이후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 조정식 정책위의장이 “지열발전사업은 이명박 정부 때의 일이다”며 전 정권 탓으로 돌려 커다란 실망감을 안겼다. 이명박 정부의 국민이 다르고, 문재인 정부의 국민이 다르단 말인가. 국민은 영원하고, 정권은 유한한데, 한참 잘못 짚었다. 집권여당의 원내대표의 발언치곤 너무 옹졸했다.

10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포항을 방문해 “지열발전이 어느 정부에서 시작됐건 책임은 승계의 원칙에 따라 현 정부에게 있다. 집권여당으로서 공동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늦었지만 오래 만에 듣는 책임 있는 발언이다. 조금만 일찍 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다.

정치지도자의 언행은 국민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지난 3월 뉴질랜드 이슬람 사원에서 총기난사로 50명이 숨지는 참사가 빚어졌다.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는 히잡을 쓰고 사건 현장을 찾아 유족을 위로해 이민자들을 포용하는 리더십을 보여줬다. 아던 총리는 “목숨을 앗아간 남자의 이름 대신 목숨을 잃은 이들의 이름을 불러 달라”고 호소해 깊은 울림을 남겼다.

분노하기는 쉽다. 그러나 성숙한 대응은 어렵다. 아던 총리는 악명이라도 떨치려는 테러리스트들의 의도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던 것이다. 우리 정치판에서도 이런 절제되고 감동적인 장면을 한번쯤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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