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2.19 15:31
6.25전쟁 도발 전에 촬영한 김일성(오른쪽)과 그 지도부 모습이다. 권력주변에 대한 끊임없는 숙청 등으로 북한 정권의 불안정성이 부쩍 커지고 있다.

발을 헛디디면 넘어진다. 그럴 때 우리는 실각(失脚)과 실족(失足)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냥 땅에 넘어져 낭패를 당하면 그만이지만, 권력의 무대에서 떨어지는 경우라면 상황이 자못 심각하다. 요즘에도 북한 권력 주변에서 실각, 실족에 이어 목숨까지 잃는 사람이 즐비하다.

우리 언론들은 그들을 ‘실각했다’고 표현한다. 발을 잘못 디뎌 넘어진다는 점에서 그 실각과 같은 뜻을 지닌 단어가 있다. 바로 ‘실족’이다. 그러나 이 말의 원래 의미는 단순히 ‘넘어지다’가 아니다. 우리가 보이는 행동거지와 관련이 있다.

처음 등장하는 곳은 『예기(禮記)』다. 예법(禮法)의 근간을 형성하는 책이니, 그 내용은 주로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매너 등으로 이뤄져 있다. 그 구절은 다음과 같다. “군자는 사람 앞에서 실족하지 않는다(君子不失足於人).” 사람 앞에서 넘어지지 말라고? 아니다. 그를 주석한 내용으로 보자면 우리가 아는 일반적 의미의 ‘실족’과 다르다.

남 앞에서 무게 있게 행동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같은 포맷으로 그 뒤를 잇는 단어들이 실색(失色)과 실구(失口)다. 다 사람 앞에서 드러내는 실수를 가리킨다. 앞의 ‘실색’은 용모가 단정치 못한 경우이고, 뒤의 ‘실구’는 끊임없이 주절거리다 남에게 비난을 사는 행위다.

높은 사람 앞에서 비굴한 모습을 보이며 지나치게 처신하면 실족이다. 과도하게 자신을 꾸미거나, 그 반대로 옷매무새 등을 다듬지 못해 “칠칠치 못하다”는 말을 들으면 실색이다. 마땅히 그쳐야 할 때를 모르거나, 아예 그를 무시하면서 제 말만 줄줄이 늘어놓으면 실구다. 따라서 이 세 가지 행위를 거듭하면 그야말로 주책없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실족과 실각은 결국 ‘발을 헛디뎌 넘어지다’의 뜻으로 발전했고, 그 중 ‘실각’은 권력의 자리에서 탈락하는 경우를 일컫는 데까지 나아갔다. 북한 권력층의 인사들은 어떤 헛디딤일까. 최고 권력자에게 지나칠 정도로 아부하다가 그랬을까, 아니면 경솔하게 처신하다가 괘씸죄를 얻은 것일까. 어느 경우든 북한의 권력 내부가 기이한 느낌을 준다는 점은 마찬가지다. 

그나저나, 3대 세습에 이어 주변의 측근들을 마구 제거하는 북한의 왕조권력도 ‘실족’의 상황에 접어들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김정은을 수행하는 북한 핵심 권력자들의 한결같은 비굴함이 TV 화면에 등장하는 모습만 봐도 그렇다. 이 권력도 실족을 넘어 실각을 곧 감수해야 할지 모른다. 역사의 무대로부터 말이다.

 

<한자 풀이>

失(잃을 실, 놓을 일): 무엇인가를 잃는 경우다.

足(발 족): 신체의 다리 부분이다. 그러나 ‘채우다’ ‘충분하다’의 새김도 있다. 만족(滿足), 충족(充足) 등이 그 사례다.

脚(다리 각): 역시 다리를 가리킨다. 물건의 아래, 토대를 이루는 부분이라는 새김도 있다. 몸을 둘 곳이라는 의미도 있다.

色(빛 색): 빛, 빛깔, 또는 색채를 모두 가리킨다. 욕정을 일컫는 글자로도 발전했다. 영화 ‘색계(色戒)’의 경우가 그렇다. 이어 용모, 생김새 등의 새김도 얻었다.

 

<중국어&성어>

失色 shī sè: 부끄러움, 분노, 놀람 등으로 인해 얼굴색이 바뀌는 경우. 그러나 원래의 의미는 본문에 나오는 대로 용모와 꾸밈 등에서 허점을 드러내는 일이다. 시간이 오래 경과해 본래의 색을 잃는 경우에도 이 단어를 쓴다.

大惊(驚)失色 dà jīng shī sè: 너무 놀라서 얼굴빛이 변하는 경우를 일컫는다. 많이 쓰는 성어다. 우리도 ‘대경실색’으로 자주 사용한다.

失足 shī zú: 우리의 쓰임새인 ‘실족’과 같다.

一失足成千古恨 yī shī zú chéng qiān gǔ hèn: 한 차례 실수 등으로 맺힌 천고에 씻지 못할 한.

失脚 shī jiǎo: 우리가 쓰는 의미와 같다. 그러나 현대 중국어에서는 쓰임새가 많지 않다. 일본으로부터 만들어져 거꾸로 들어온 단어라서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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