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만수의 하프타임] 스러지는 포항스틸러스, '축구명가' 간판 내리다
[최만수의 하프타임] 스러지는 포항스틸러스, '축구명가' 간판 내리다
  • 최만수 기자
  • 승인 2019.07.22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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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웍스=최만수 기자] 승부의 세계에선 극적인 상황이 많이 일어나지만 이번 주말 K리그1에서 뚜렷하게 대비되는 장면이 연출돼 눈길을 끌었다. 전북으로 간 ‘포항 프랜차이즈 스타’ 김승대는 이적 첫 경기 만에 결승골을 터뜨려 팀 승리를 이끌었다. 반면 김승대를 떠나보낸 포항은 같은 날 안방에서 ‘꼴찌’에 덜미를 잡히는 수모를 당했던 것. 김승대는 푸른 유니폼에 입맞춤하며 ‘최강’ 전북의 일원이 된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김승대가 없는 포항은 후반 막판 결승골을 내주며 고개를 숙였다.

불과 닷새 전 전북현대로 이적한 김승대는 20일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과의 원정경기에서 후반 21분, 3-2로 앞서가는 결승골을 터뜨려 자신의 가치를 입증했다. 김승대의 골이 터지자 포철중, 포철공고(현 포철고), 영남대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1년 후배 손준호는 물론이고 로페즈 등 전북 선수들은 골 세리머니를 함께하며 ‘새 식구’ 김승대를 반겼다.

같은 시각, 포항은 스틸야드에서 열린 최하위(12위) 인천유나이티드와의 홈경기에서 종료 직전 이제호에게 통한의 헤딩골을 내줘 1-2로 무릎 꿇었다. 전북(승점 48)은 김승대의 골에 힘입어 3위 서울(승점 42)과 격차를 벌리는 ‘6점짜리’ 승리를 거두며 1위로 치고나갔다. 포항은 ‘약체’ 인천에 패하며 1경기 이상의 패배감을 맛봤다.

이날 한 경기가 전북과 포항의 현주소를 드러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북은 2009년 포항에서 ‘라이언킹’ 이동국을 영입한 것을 신호탄으로 10년 간 과감한 투자를 이어가 국내 최고 명문구단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반면 ‘전통명가’란 수식어를 자랑스럽게 달고 다녔던 포항은 최근 몇 년 사이 프랜차이즈 스타들을 줄줄이 떠나보내 지방의 한낱 군소 팀으로 전락했다.

포항에서 초·중·고를 나온 프랜차이즈 스타들인 이동국, 손준호, 김승대는 전북의 푸른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다. 이들이 수년간 입고 뛰던 포항의 상징인 ‘검빨(검정빨강 줄무늬)’ 이미지는 전북의 거대한 푸른 물결에 파묻혔다. 과거 국가대표 산실로 찬란한 팀 역사를 자랑하던 포항이 '전통명가'에서 그런저런 팀으로 전락한 것은 전북, 서울 같은 ‘빅 클럽’들의 물량 공세에 밀린 측면이 있다. 특히 전북은 포항출신들을 선호한다. 전북이 K리그 톱클래스로 올라선 데는 이동국, 박원재, 신형민, 손준호 등 포항출신들의 활약에 힘입은 바 크다.

이들 외에도 군 복무중인 이명주, 고무열(이상 아산무궁화)과 신진호(울산현대) 등 포항에서 잔뼈가 굵은 선수들이 꾸준히(?) 팀을 떠났다. 거슬러 올라가면 황진성, 신화용, 신광훈(강원), 문창진(인천) 등 팀을 떠난 포항 유스들로만 팀을 꾸려도 K리그 최고 조합이 가능할 정도다. 포스코교육재단 산하 초·중·고교에서 ‘먹고, 입고, 자고, 배우며’ K리그 주축으로 성장한 ‘포항의 아이들’이 차례로 팀을 떠나갔다. 포항은 ‘실컷 키워서 남 주는’ 구단이 됐다. 이들은 왜 포항을 떠나야만 했을까.

포항 구단의 선수관리 시스템이 부실하다는 방증이다. 운영자금이 궁해지면 주축선수들을 팔아서 메우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에 젖어 있는 것 같다. 포항구단은 선수를 길러서 적당한 시기에 파는 것을 정상적인 선수 마케팅이라고 착각하는 게 아닌지 의문이다. 명문구단은 팀의 정체성이나 전통을 중요시한다. 아무리 재정적으로 어렵더라도 팀을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 1, 2명쯤은 보유해야 정상이다. 팬들이 애정을 갖고 경기장을 찾을 수 있도록 유인하는 스타가 필요한 것이다. 포항 팬들 중에는 “포스코 다리를 건너기 싫지만 좋아하는 선수들이 뛰는 모습을 보고 싶어 기꺼이 경기장에 간다”고 말하는 이가 적지 않다. 팬들이 길 막히고, 여전히 주차하기 어렵고, 매캐한 냄새까지 맡아가며 포스코 다리를 건너는 이유를 포스코 경영진은 알기라도 할까.

이번에 김승대도 마찬가지지만 ‘포항의 아이들’은 정든 팀을 떠나면서 애정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듯 했다. 포항에서 어느 정도 ‘대접’만 해주면 떠나지 않겠다는 메시지가 어김없이 흘러나온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팀을 떠났다. ‘빅 클럽’의 베팅에 흔들릴 수밖에 없는 취약한 구단 재정이 근본 이유다. 구단 살림에 여유가 없다보니 ‘상품성 있을 때 팔고 보자’는 조급함이 작동한다. ‘포항의 아이들’은 구단 운영자금 확보라는 현실에 떠밀려 팀을 속속 떠나갔다.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인정하고 싶다가도 너무 많은 ‘포항의 아이들’이 팀을 등지고 있는 상황을 접하면 답답해진다. 단기적 이익과 장기적인 관리 시스템이 조화롭게 돌아가는 팀 운영의 묘를 살리는 게 해답이다.

사실 이명주를 제외하면 ‘포항의 아이들’을 타 팀으로 보내면서 받은 이적료는 구단을 ‘먹여 살릴’ 정도로 큰 액수가 아니다. 이명주는 2014년 아랍에미리트(UAE) 알 아인으로 이적하면서 포항에 50억원이란 거액을 안겨줬다. 당시 구단 살림이 빠듯했던 포항은 이명주의 이적료로 적자 폭을 메우며 재정 자립도를 높였다. 돈을 벌어 재투자(특급선수 영입)하지 않고 빚 갚는데 주로 썼다. ‘큰손’ 포스코의 지원 축소로 긴축 재정을 짜야 하는 경영자의 입장을 이해 못할 바 아니지만 프로구단은 스타가 없으면 존재의미가 약해진다. 경영성과도 중요하지만 적절한 투자가 이뤄져야 함은 당연하다.

이번에 김승대를 전북으로 보내면서 포항은 10억원대의 이적료를 받았다. 김승대는 6개월 후면 FA(자유계약) 신분이 되기 때문에 포항으로선 전북의 ‘달콤한’ 제안을 거절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전북은 ‘주포’ 김신욱의 중국(상하이 선화) 이적으로 공격진 보강이 절실해 두툼한 봉투를 내밀었다. 게다가 포항은 김승대를 붙들기 위해선 내년부터 10억원대의 연봉을 줘야하는 압박을 느꼈다. 김승대는 올 시즌 후 제대로 평가받겠다는 입장이었다. 해외 이적도 고려했다. 김승대가 팀에 남을지 불투명한 상황에서 포항으로선 고액 연봉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이적료까지 짭짤하게 챙겼으니 표면적으로 남는 장사를 했다. 그러나 팀 주축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장면을 바라보는 팬들의 상실감은 금전으로 환산하기 어렵다. 몇년 뛰다가 다른 팀으로 갈 게 뻔한데 어느 누가 충성스럽게 응원하겠는가. 팬 대거 이탈의 조짐이 감지된다.

포스코의 긴축 기조도 선수들의 '탈(脫) 포항'을 부채질하고 있다. 김승대 이적료인 10억원은 서민들로선 평생 손에 쥐어볼 수 없는 거금이지만 포항의 메인스폰서인 포스코의 입장에서 보면 ‘푼돈’이라 할 수 있다. 필요 없는 돈은 단돈 1원도 아껴야하지만 필요하다면 10억원쯤은 투자할 수 있어야 포스코답다. 포스코는 올 2분기 영업이익(연결기준)이 1조800억원을 달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원재료인 철강석 가격 급등에도 불구하고 8분기 연속 1조원의 영업이익 달성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 포스코의 영업이익은 5조5426억원에 달했다. 포스코가 김승대를 잡으려고 마음만 먹으면 영업이익의 0.018%에 불과한 10억쯤은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 최근 잇단 외국인선수 실패에 따른 손실을 줄였더라도 10억원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액수다. 마른 수건을 억지로 짜면 손목만 아프다. 재정 누수를 막는게 더 효율적이다.

특히 포항스틸러스가 포항시민들과 포스코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차원에서 접근하면 10억원의 가치는 더 높아진다. 더구나 최정우 포스코 회장이 취임 일성으로 선언한 ‘기업시민’의 역할을 다하겠다면 10억원쯤은 ‘시원하게’ 쓸 수 있어야 한다. 벌써부터 시민과 함께 하겠다는 ‘위드 포스코(with posco)'란 슬로건이 구호에 그칠 것이란 회의가 든다. 과거 포항스틸러스는 포항시민의 자랑이고, 자존심이었다. 1973년 창단 이래 숱한 스타들을 배출했고, K리그 우승 5회, FA컵 우승 4회(최다), AFC챔피언스리그 우승 3회, FIFA클럽월드컵 3위 등 빛나는 금자탑을 쌓았다. 인구 50만에 불과한 포항이 한국의 ’축구수도‘로 군림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포항은 국내 최초 축구전용구장(스틸야드) 건립, 국내 최초 클럽하우스 조성, 국내 최초 유소년클럽시스템 구축, 축구계에 신선한 반향을 일으킨 ‘스틸러스웨이’ 주창 등 인프라 분야에서도 한국축구를 선도해왔다. 이는 고(故) 박태준 포스코 회장의 각별한 축구사랑에 기인한 측면이 있지만 역대 차동해, 박정우, 김현식, 김태만, 장성환 사장이 굵직한 프로젝트를 성공시켜 명문구단의 위상을 지켜왔다. 그러나 최근 포항의 경영진은 선배 사장들에 비해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포스코 경영진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맨 파워가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무엇보다 명문구단의 위상을 유지해야겠다는 경영진의 의지와 추진력이 과거에 비해 강하지 못한 것 같다.

‘글로벌 기업’ 포스코가 지원하고 있는 포항스틸러스와 전남드래곤즈가 과거의 명성을 이어가지 못하고 지방의 평범한 축구단으로 추락하는 것을 보고 싶은 팬들은 없을 것이다. 화난 팬들은 “포항-전남의 ‘제철형제 더비’를 2부 리그(K리그2)에서 봐야 할 판”이라고 분노하고 있다. 포스코 경영진은 ‘승부를 떠나 멋진 축구’를 할 순 있지만 ‘지는 축구에 감동할 팬은 없다’는 점을 깊이 새겼으면 한다. 차라리 어중간하게 두 팀을 운영하는 것보다 통합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수 있다. 포스코가 현재 한 팀에 매년 100억원씩, 200억원을 지원하는 것을 통합팀에 몰아주면 단번에 '빅 클럽' 반열에 올라설 수 있다. 지금처럼 하위 스플릿 추락을 걱정하고, 강등될까 좌불안석인 '제철가 형제'를 지켜보는 것 자체가 양 팀 팬들에겐 고통이다. 홈경기는 포항, 광양에 적절히 분배해서 열면 된다. 역설적이지만, 통합 논의가 크게 번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양 팀 모두 나름대로 존재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가장 쉽고, 분명한 해결책은 포스코가 지갑을 더 여는 것이다.

포항과 광양에 세계적 규모의 일관제철소를 운영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 포스코라면 축구단 운영도 세계지향적이어야 한다. 축구단을 단순히 볼거리 제공, 여가선용이나 시민과 기업의 가교 역할이란 좁은 시각에서 탈피해 '글로벌 파트너십‘ 구축의 일환으로 활용하는 원대한 비전이 요구된다. 형식상 시민구단이라서 포스코와 별개란 억지논리를 거두고 '제2의 창단’을 각오로 새판을 짜야한다. 혁신은 특별한 게 아니다. 낡은 사고방식, 패배주의, 매너리즘을 걷어내는 역동적이고 참신한 리더십으로 바꾸면 된다. ‘월드 베스트’를 지향하는 포스코가 세계무대를 휘어잡지는 못할망정 최소한 아시아무대를 호령해야 체면이 서지 않겠나. 말로만 ‘기업시민’ ‘위드 포스코’를 외쳐봐야 허공의 메아리일 뿐이다. 관중 없는 경기장은 무의미하다. 돈 쓰고도 욕먹는 길로 가서는 안 된다. 방법은 간단하다. 현대가(家)가 전북, 울산을 K리그 최고 명문구단으로 도약시킨 것을 벤치마킹하면 된다.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닐텐데, 결국 최고 경영자의 의지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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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만수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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