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고종관 기자
  • 입력 2019.09.05 11:25

'의사의 환자선택권' 인정 않는 현행 의료법 개선 가능할까

진료지연 등의 이유로 의료인을 폭행 폭언하는 행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뉴스웍스=고종관 기자] 의사가 환자의 진료를 거부할 수 없는 현행 법체계는 타당한가.

대한의사협회가 "지금과 같이 진료를 강제하는 의료법은 의료인 직업행사를 부당하게 침해해 다른 환자의 건강권을 침해할 수 있다"며 이에 대한 개선을 주장해 관심을 끌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는 5일 ‘진료거부금지 의무의 현황과 과제’ 보고서를 통해 애매모호한 법조항으로 의료현장에서 수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의료인의 진료거부금지 조항과 처벌조항을 삭제해 선진적 의료계약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에서 의료인 또는 의료기관 개설자는 의료법 제15조 제1항에 따라 진료나 조산 요청을 받으면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지 못한다. 환자에게는 의사 선택권이 있지만, 의사에게는 환자 선택권이 없는 이같은 법조항이 의료현장에서 폭력과 폭언, 업무 방해로 인한 다른 환자의 피해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일본은 의사법에서 진료거부금지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처벌 조항이 없어 선언적 규정으로만 기능한다.

미국 및 유럽에서도 의사의 환자선택권을 인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환자가 폭력을 행사하거나 마약 처방 등 부적절한 치료를 요구할 때는 진료를 거부할 수 있다. 특히 환자와 의사의 신뢰관계가 단절된 경우에도 의사의 판단에 따라 진료를 거부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진료거부 문제는 병원의 퇴원조치 같은 상황에서 환자가 불만을 제기할 때 발생한다. 이때 법원은 의사와 환자 측 사정과 기타 정황을 종합해 진료거부금지 의무위반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 명확한 기준과 근거가 없다보니 상황에 따라 법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연구책임자인 이얼 연구원은 국내외 사례를 참고해 의사가 진료를 거부할 수 있는 12가지 유형을 선별했다.

예컨대 의료인력이나 의약품 등이 부족하거나 부재한 경우, 해당 질환에 대한 경험 부족으로 다른 환자가 다른 병원을 이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경우, 환자가 마약류 등 부당한 요구를 하거나 폭언 등으로 업무를 방해를 하는 경우 등이다.

물론 이 연구원은 이러한 상황에서 사유를 환자에게 설명해야 하며, 필요에 따라 환자 또는 보호자에게 타 의료기관으로 전원을 권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응급환자에 대한 진료거부와 인종・성별・종교・성정체성 등을 이유로 진료를 거부하는 행위는 여기에 포함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이 연구원은 “진료거부는 신속하게 진료를 받아야 하는 다른 환자 건강을 지키는데도 유용하다”며 “진료거부 범위를 우리나라 의료현실에 맞게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의료정책연구구소가 선별한 의사가 환자를 거부할 수 있는 12가지 유형이다.

① 의사가 부재중이거나 질환 등으로 인해 진료할 수 없는 경우 ② 병상・의료인력・의약품・치료재료 등 시설 또는 인력이 부족해 새 환자를 진료할 수 없는 경우 ③ 외래진료의 경우 예약환자 진료 일정 등으로 당일 방문 환자를 진료할 수 없는 경우 ④ 해당진료가 의료인의 전문영역과 다르거나 전문지식, 경험이 부족해 다른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라 판단한 경우 ⑤ 다른 의료인이 환자에게 이미 시행한 치료(투약, 시술, 수술 등) 내용을 알 수 없어 적절한 진료를 하기 어려운 경우 ⑥ 환자가 적극적으로 마약류 의약품을 요구하는 것 등과 같이 부적절한 치료 방법을 요구하는 경우 ⑦ 입원치료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의학적 판단에 따라 퇴원을 지시하는 경우 ⑧ 환자가 의사의 치료방침에 협조하지 않는 경우 ⑨ 의사의 양심에 따라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의 이행을 거부하는 경우 ⑩ 의사가 양심에 따라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거부하는 경우 ⑪ 환자가 의료인 또는 동료에게 모욕・명예훼손・폭행・업무방해 등의 행위를 하는 경우 ⑫ 환자가 의료기관을 점거하거나 기물을 훼손하는 경우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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