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만수 기자
  • 입력 2019.11.11 19:49

[뉴스웍스=최만수 기자] 자치단체장이 체육회장을 겸직 못하도록 하는 국민체육진흥법이 개정되면서 첫 민간 체육회장 선출이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길’에 접어들었다.

법률 개정에 따라 전국 17개 시·도 및 256개 시·군·구체육회는 2019년 1월 15일 관련 법안이 공포된 지 1년이 경과하는 내년 1월 16일까지 민간 체육회장 선출을 마무리해야 한다.

이에 경북지역 각 체육회는 이사회 및 총회를 열어 규약을 개정하고, 선거관리위원회 구성, 선거인 수 배정 등 선거 준비로 부산하다. 덩달아 첫 민간 체육회장을 노리는 인사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체육회장을 민간에 이양하는 시험대인 만큼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 스포츠의 정치적 이용 금지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올림픽헌장에 명시돼 있어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적절한 조치로 평가된다.

우리나라는 대한체육회장을 대의원 투표로 뽑고 있지만 산하 시·도 및 시·군·구 체육회장은 거의 대부분 단체장들이 당연직으로 맡고 있다. 체육 관련 예산이 지자체 예산으로 대부분 충당되기 때문에 단체장이 체육회장을 맡는 것이 관행으로 굳어졌던 것이다.

무엇보다 체육회장 겸임 제한 규정이 없어 체육 예산을 거머쥔 자치단체장이 체육회장을 겸직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때문에 자치단체장 등이 체육단체를 이용해 인지도를 높이거나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체육단체의 정치화가 문제가 되기도 했다.

현행 국회법은 정치와 체육 분리의 원칙에 따라 국회의원이 체육단체장을 맡지 못하도록 규정하면서 수년 전 국회의원 체육단체장들이 줄줄이 명패를 내렸다.

이번에 법률이 통과돼 자치단체장이 체육회장을 겸직 못하도록 못 박음으로써 체육에 정치세력의 입김이 개입할 근거와 여지가 희박해졌다. 정치가 체육을 좌지우지하는 행태가 사라질지는 두고볼 일이다.

그동안 체육회가 사실상 자치단체장의 ‘선거 전위대’로 기능해 온 것을 원천 차단해 정치와 체육을 분리하고, 체육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확립하는 게 이번 법률 개정 취지다.

하지만 새로 선출되는 민간 체육회장과 예산을 쥐고 있는 자치단체장간 관계 설정에 따라 첫 출항하는 민간 체육회가 순항할지, 좌초할지가 가름될 것으로 보인다.

민간 체육회장 선거를 한 달여 앞두고 벌써부터 자치단체장의 의중이 선거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란 관측이 나돈다. 공개적으로 특정인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힐 ‘얼빠진’ 자치단체장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수십, 수백억에 이르는 체육예산이 끼어들면 ‘친(親) 자치단체장 체육회장’ 시나리오가 그럴듯해 보인다.

새로 뽑히는 민간 체육회장이 자치단체장과 관계가 원만할 경우 체육 예산확보와 사업추진이 큰 걸림돌 없이 잘 굴러갈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자치단체장과 ‘코드’가 맞지 않는 체육회장이 들어서면 곳곳에서 갈등이 빚어질 공산도 크다.

경우에 따라 체육과 정치의 분리, 체육의 독립성과 자율성이란 근본 취지가 퇴색되고 체육인들의 분열과 반목만 조장하는, 안 하니만 못한 선거가 될 것이란 우려 또한 짙다. 법률에 따라 처음으로 ‘대의원 확대기구’를 통해 민간 체육회장을 선출하는 만큼 자격이나 인물 검증에 더욱 철저해야 할 것이다.

현재 경북체육회의 경우 서너 명이 자천타천으로 민간 체육회장에 도전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엔 체육회 전·현직 상임부회장들과 기업인도 포함돼 있다. 오랫동안 체육계에 몸담고 있는 일부 종목 회장도 출마를 권유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 과연 ‘웅도(雄道) 경북’ 체육을 이끌 적임자가 있다고 생각하는 체육인들이 얼마나 될지 회의감이 든다. 국회나 정부기관, 지방의회 등에서 잔뼈가 굵은 자치단체장에 비해 현재 거론되는 인물들의 중량감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어느 정도 역량이 갖춰져야 가능한 일이다.

체육회장 자리를 노리는 인물들은 ‘경북체육 수장으로 약하다’는 세평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본격 선거전이 달아오르면 선거제의 폐해인 출마자 및 지지자간 갈등과 반목도 첨예해질 전망이다. 선거 후엔 ‘승자독식’ 양상이 더욱 선명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2016년 체육회와 생활체육회가 통합되면서 비대해진 경북체육회를 잘 이끌기 위해선 경륜과 리더십, 경영능력을 두루 갖춘 회장이 필요하다. 특히 체육회와 생활체육회가 중앙의 방침에 따라 물리적으로 합쳐지긴 했지만 화학적 결합까지 갈 길이 먼 상황에서 조직 화합과 공정한 행정을 진두지휘할 ‘바르고 엄정한 리더십’이 요구된다.

법이 민간에서 체육회장을 선출하도록 바뀌었기 때문에 새 회장을 뽑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제대로 뽑아야 한다. 체육인들 앞에 능력과 인품을 갖춘 민간 회장을 선출해야 하는 중차대한 숙제가 던져졌다.

선거는 대의원 투표로 해야 하지만 반드시 경선을 벌일 필요는 없다. ‘후보자가 1명일 경우 투표를 하지 않고 후보자를 당선인으로 결정한다’는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교통정리’가 잘 된다면 추대 형식도 가능하다는 의미다. 기성정치권에서 주로 발견되는 '야합'이 아닌 체육인들이 경북체육 수장으로 수긍할 수 있는 인물을 모시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당선인이 추대 받을 만큼 능력과 인품이 출중해야 함은 물론이다.

만약 추대의 형식을 빌린다면 누가 경북체육 수장에 적합한지 생각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포항에 본사를 둔 포스코 최정우 회장이나 경주가 본사인 한국수력원자력 정재훈 사장 등 경북에 뿌리를 둔 대기업 경영인들이 퍼뜩 떠오른다.

회사 규모는 말할 것도 없고, 포스코는 전통 명문구단인 포항스틸러스(프로축구)와 포스코건설(럭비), 포스코교육재단 산하 운동부를 운영하고 있어 체육·스포츠에 대한 애정이 깊고 운영 노하우가 풍부하다. 한수원 역시 남녀 축구실업팀(내셔널리그)을 운영하고 있어 스포츠와 밀접하다.

여기에 경북생활체육회를 12년간 이끌며 생활체육인들의 화합과 조직 안정에 크게 기여한 황인철 전 회장, 포스코 임원과 계열사 사장, 체육단체장을 두루 거친 차동해 전 포항스틸러스 사장도 경북체육의 위상과 자존감을 감안하면 회장감으로 충분한 인물들이다.

물론 위에 열거한 분들이 체육회장 선거에 나설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경선을 한다면 더더욱 나설 이유가 없어 보인다. 특히 대기업을 대표하는 CEO가 산적한 경영 현안을 제쳐두고 체육회장 일에 전념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중량감 있는 상징적인 인사를 체육회장으로 사실상 추대하고, 체육회는 ‘실무형’ 사무처장을 중심으로 이끄는 방안이 현실적이다.

말이 나왔으니 사무처장도 이번 기회에 퇴직 공무원들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시대착오적 관행을 끊어내고, 전국 공모를 해서라도 체육·스포츠에 전문성과 기획력, 균형감각을 갖춘 참신하고 개혁적인 인물을 앉혀 체육회를 쇄신해야 한다. 어쩌면 체육회장보다 사무처장 인선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최근 경북체육회의 불협화음이나 갈팡질팡 행정을 지켜보면서 사무처장의 역량이 중대함을 새삼 느꼈다.

첫 민간 체육회장 선출을 계기로 '자치단체장-퇴직 공무원 사무처장'의 낡아빠진 체제를 걷어내고 '명망가 민간 회장-전문인 사무처장'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야말로 경북 체육·스포츠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시대적 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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