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정은 기자
  • 입력 2019.11.26 12:08

감소 추세인 일본과는 거꾸로…우리도 '생산성 향상 특별법' 제정해야

(사진출처=픽사베이)
(사진출처=픽사베이)

[뉴스웍스=이정은 기자] 50대 직장인 김 모씨는 최근 마음이 무겁다. 큰 아들이 드디어 취업에 성공했지만, 친구의 아들은 모 손해보험사에서 초임 연봉으로 약 6000만원을 받을 예정이라는 소식을 듣고나서부터다. 그에 비해 중소기업을 다니게 된 김씨 아들의 연봉은 2000만원 중반 남짓이다. 김씨의 아들은 "기업의 크기나 연봉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자 이 기업을 선택했다"고 했지만, 다른 친구들 앞에서는 연봉 얘기를 꺼려하는 듯 했다.

◆최근 5년간 대-중소 간 임금격차 증가...일본은 감소 추세

이처럼 기업 규모간 연봉 차이가 큰 건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문제는 유독 대기업의 대졸초임이 다른 나라보다 월등히 높은데다 중소기업과의 격차가 줄어들기는 커녕 오히려 확대된다는 데 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8년 임금구조기본통계조사에 따르면 500인 이상이 근무하는 우리나라 기업의 대졸초임은 3만6228달러(약 4271만원)로, 지난해 일본의 1000인 이상 근무 기업 대졸초임(2만7647달러, 약 3259만원)에 비해 약 31%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의 1인당 GDP는 2018년 기준 3만9286달러로 우리나라(3만3346달러)보다 17.8%(5940달러) 높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대졸초임이 일본을 크게 앞지른 것이다. 교과서적인 경제논리로는 도무지 설명되지 않을 정도다.

10인 이상 500인 미만 기업의 대졸초임은 2만3000달러~2만6000달러(약 2700~3000만원)대로 일본의 10인 이상 1000인 미만 기업의 대졸초임과 비교했을 때 2% 내외의 적은 차이를 보였다.

역대 정권마다 대·중소기업 임금격차 해소를 부르짖었다. 문재인 정부도 2017년 출범하면서 경제 양극화 문제를 '중소기업 활성화'로 해결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사태는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가 커지고 있다. 반면 일본은 줄어들고 있다. 

지난 4월 중소기업연구원이 발표한 '중소기업 포커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2년부터 2017년까지 우리나라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의 평균 임금 비중은 1~2%포인트씩 모두 떨어진 반면, 일본은 10인 미만 기업 5.3%p, 10인 이상 100인 미만 기업 6.1%p, 100인 이상 500인 미만 기업 2.0%p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500인 이상 임금 변화 추이. (자료출처=중소기업연구원 '중소기업 포커스' 보고서, 고용노동부, 일본 후생노동성)
500인 이상 대기업 대비 평균임금 비중 변화 추이 표. (자료출처=중소기업연구원 '중소기업 포커스' 보고서, 고용노동부, 일본 후생노동성)

◆임금격차 확대 원인은 하도급 불공정거래·상생 방안 부재

전문가들은 기업 간 임금격차가 갈수록 확대되는 주된 원인으로 하도급 과정에서 벌어지는 불공정 거래와 대-중소기업 간 상생 부재 등을 손꼽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중소 제조업의 44.5%가 하도급 기업이며, 하도급 중소기업은 회사 매출액의 80.8%를 위탁기업에 의존하고 있다.

지난 7일 중기중앙회가 발표한 설문조사에서 대기업과의 거래에서 하도급 대금을 부당하게 감액당한 경험이 있는 중소기업 중 60%는 감액에 대해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했으며, 이 중 88.9%의 응답자가 “거래가 끊길까 우려돼서” 대응하지 못했다고 답변했다.

또한 지속적인 물가 및 인건비 상승으로 하청업체들의 비용은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납품단가에 이를 제대로 반영받지 못하고 있었다.

중기중앙회가 지난 3월 발표한 '2018년 중소제조업 하도급업체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하도급거래 중소제조업체 507개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제조원가(재료비, 노무비, 경비)가 상승했다고 답한 업체는 53.8%였으나 납품단가가 올랐다고 응답한 업체는 18.5%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이 생산성 향상 등으로 자체 노력으로 수익을 늘리기보다는 하청 중소기업 '쥐어짜기'를 통해 이익 증대를 도모하면서 그 피해가 재직중인 중기 근로자에게 돌아가고 있다는 얘기다.   

◆'중소기업 생산성 향상 특별법' 제정 필요성 제기

노민선 중기연구원 연구위원은 대-중소기업간 임금 격차를 좁히기 위해 ① 중소기업의 생산성 향상 정책 마련 ② 성과보상기금 등 소득 확대 지원 ③ 협력사 임금 향상 목적 대기업 인센티브 지급 등의 방안을 제시했다. 

지난 19일 중기중앙회에서 열린 '2019 근로시간 단축과 중소기업 영향 토론회'에서 노 연구위원은 주제발표를 통해 "‘중소기업 생산성향상특별법’을 한시법으로 제정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중소기업 생산성향상특별법은 일본이 지난해 6월 중소기업의 노동생산성 강화를 위해 제정한 ‘생산성향상특별조치법’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들어진 법안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의 발표에 따르면,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노동생산성의 격차가 점점 증가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임금 인상률도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산성은 중소기업의 노동생산성이 대기업에 비해 낮은 원인으로 생산설비의 노후화를 지적했다. 이를 감안, 중소기업의 생산설비 지원금을 강화하는 법을 마련한 것이다. 

(자료출처=일본 경제산업성, 재무성)
일본 경제산업성과 중소기업청이 지난해 7월 발표한 대-중소기업간 노동생산성의 변동과 그에 따른 임금인상률 변동 추이 그래프. 대-중소기업 간 노동생산성의 증가율과 임금인상률의 격차가 점점 확대되는 것을 보이고 있다. (자료출처=일본 중소기업청, 경제산업성, 재무성)

경산성에 따르면 해당 법안은 "중소기업 운영자가 계획 기간 내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도입하는 설비가 사업장 소재지에서 정한 '도입 촉진 기본 계획'에 해당하는 경우, 설비 도입시 금액이나 세제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또한 기술 관련 규제 창구를 일원화해 중소기업의 편의를 더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이어 노 연구위원은 지난 4월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만기 1억원의 중소기업 성과보상기금 상품’을 신설해 중소기업 재직자들의 실질적인 소득 확대를 지원하자”고 제안했다. 이는 현재 중견기업 이하 근무자를 대상으로 시행되고 있는 '청년내일채움공제'와 '청년재직자 내일채움공제'에 연계 가입해 얻을 수 있는 최고 추가소득 금액이 6000만원인데, 이를 1억원으로 늘리는 상품을 마련하자는 방안이다.

노 연구위원은 "청년내일채움공제는 자산형성, 청년재직자 내일채움공제는 목돈마련과 장기재직의 목적을 가진다"며 "정부가 두 제도를 연계해 만기 1억원짜리 상품을 만들고 홍보하면, 중소기업 근로자들의 추가 소득을 높이면서 재직기간도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대기업이 협력 중소기업 근로자의 임금 또는 복지수준 향상을 위해 지출하는 비용에 대한 인센티브를 확대하는 방안이다. 해당 비용을 '최저한세' 적용 대상에서 제외해 세금 절약 혜택을 주자는 내용이다. 또한 협력 중소기업의 내일채움공제 부담금을 대기업이 대신 납입해주는 경우, 대기업에 '동반성장지수' 가점을 부여하는 방법도 제시됐다.

전문가들은 중소기업의 '노동생산성 향상'과 '이윤 창출 능력 강화'을 임금격차 해소의 근본적인 열쇠로 보고 있다.

전병유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6월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주최한 '대·중소기업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한 대안 모색' 간담회에서 "생산성의 격차가 지불 능력의 격차를 낳고, 이것이 곧 임금 격차를 크게 하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노 연구위원은 "주52시간 제도 도입으로 근로시간이 단축돼 1인당 노동생산성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며 "중소기업의 노동생산성 향상을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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