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현건 기자
  • 입력 2019.12.22 10:15

 [뉴스웍스=전현건 기자] 저금리 시대에 매달 일정 금액을 적립하면 원금의 5배가 넘는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청년내일채움공제'라는 제도가 있다. 정부가 중소·중견기업 등에 취업한 청년들의 장기근속을 유도하기위한 마련한 '청년취업 지원 사업'의 핵심이다.

 2~3년 동안 10여만원을 매달 적립하면 기업과 정부의 지원금을 합해 목돈을 손에 쥘 수 있다. 대기업 근로자와의 현격한 임금 격차를 줄일 수 있어 특히 중소기업에 재직 중인 사회초년생들로부터 인기를 얻고 있다.

내년부터 지원대상 인원이 늘어난다고 한다. 정부는 지난 19일 '2020 경제정책방향'을 내놓으면서 청년내일채움공제 지원대상을 올해 25만 명에서 34만2000명으로 늘리는 등 청년일자리 지원을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대상만 확대되는 정책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중소·중견기업 청년들은 2~3년 동안 근무해야만 만기공제금을 받을 수 있다. 열악한 근로조건과 일부 악덕 사업주 때문에 상당수가 약정기간을 지키지 못하고 중간에 그만두는 실정이다. 실제로 만기를 채워 돈을 수령해간 인원은 2019년 1월 기준으로 500명에 불과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말까지 예상했던 1400명에 반도 되지 않는 수치인 것이다. 직장인들에게 '데스 밸리'라고 할만한 기간을 버티지 못하고 제 풀에 지쳐 쓰러지는 현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보완 대책없이 가입 인원만 늘리는 것은 보여주기 정책의 표본이 아닐 수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청년내일채움공제가 사업주에게 '갑질' 환경을 제공하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청년내일채움공제를 신청하려면 회사는 직원 임금과 지급 방법, 근로시간, 4대 보험, 시간외 수당 내역 등을 담은 표준계약서를 마련해야 한다. 해당 사업장에서 노동자 해고 등 고용 조정이 발생하면 지원이 중단되는 요건도 뒤따른다. 직원을 해고하면 정부지원금이 끊기는 규정 때문에 일부 사업주는 노동자들을 괴롭혀 스스로 그만두게 만들고 있다. 정부지원금만 타내려고 자진 퇴사를 종용하는 사례가 적지않다는 것이다.

노무사와 변호사 등이 주축이 된 시민단체인 직장갑질119는 지난 10월 20일 공개한 '정부지원금 제도와 직장 내 괴롭힘 보고서'를 통해 정부 지원금을 받기 위해 일부 기업에선 고용 형태나 기간 등 노동조건을 위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를 보면, ▲회사가 청년내일채움공제 신청 서류에는 무기계약직 근로계약서를 첨부했으나 실제로는 계약직으로 고용 ▲회사가 내일채움공제를 가입한 직원에게만 최저임금 보장▲최저임금을 초과하는 금액은 나중에 교육비 명목으로 돌려달라고 요구 등의 사례가 있다.

이처럼 선의의 정책을 악용하는 사업주가 버젓이 존재하면서 새는 돈이 늘고 있다. 독에 밑이 빠져 줄줄 물이 새는데도 정부는 구멍을 확실히 막겠다는 조치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대상 늘리기에만 급급하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청년들의 표심을 잡기 위한 조치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 이유다. 주인공이 빠졌는데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는 것인가? 

내일채움공제를 적용받는 중소·중견기업들의 청년 근무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고 그에 알맞은 제도를 입안하는 것이 절실하다. 내부 실정을 보지 못한 채 섣불리 내놓는 정책은 오히려 청년들의 목을 더욱 죄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청년들은 한시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2~3년 동안 발을 묶어두어야만 찾을 수 있는 곗돈을 마련하기위해 직장을 선택하지 않는다. 다니는 회사와 같이 본인도 성장하기를 바란다. 이런 비전을 포기하기 만드는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보조급 지급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아울러 높은 보수와 정년 보장이란 '이중 매력' 때문에 공공부문에 몰리는 청년 인재들이 중소·중견기업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정부는 중장기 대책을 마련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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