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3.17 15:24
광대의 얼굴을 그린 애드벌룬이다. 광대는 작은 속임수로 관중을 즐겁게 만드는 존재다. 그러나 우리 '정치판 광대'들은 단순치가 않다. 기만에 조롱까지 하며 제 이익만 탐낸다. 지켜보며 마음이 불편할 때가 많다.

봄의 기운이 도저하다. 정치판도 봄이다. 정치의 꽃, 여의도의 이른바 ‘선량(選良)’들을 뽑기 위한 선거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치가 국민으로부터 믿음을 잃은 지는 꽤 오래다. 그럼에도 이기거나 지는 게임의 속성이 걸려서인지, 선거를 앞두고 벌써 분위기는 달아오른다.

요즘 정치판의 화두 중 하나는 ‘차도살인(借刀殺人)’이다. 남의 칼로 사람을 죽인다는 뜻의 성어다. 꽤 유명한 모략(謀略)의 하나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삼십육계(三十六計)’에 등장하는, 제법 족보가 있는 성어다. 제 형세가 적에 비해 유리할 때 사용하는 승전계(勝戰計)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손 안 대고 코를 풀다”는 우리식 속담도 있지만, 이 계책은 글자에서 우선 드러나듯이 사람을 죽이는 일이다. 상대를 아예 없애버리거나, 적어도 그 힘을 무력화시켜 제 이익을 꾀하는 일 모두를 일컫는다. 그러니 손을 쓰지 않고 코를 푸는 일은 그저 장난일 뿐이다. 정도와 수준이 훨씬 높은 ‘살벌한’ 꾀다.

요즘 언론이 자주 사용하는 이 ‘차도살인’의 대상은 분명하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앞세운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공천관리위원회를 내세운 새누리당의 이른바 ‘친박’ 진영이다. 언론들은 둘 모두 공천 심사라는 ‘칼’을 써서 잠재적인 걸림돌을 제거하는 데 나섰다고 분석한다.

그런 분석에 동의한다. 나름대로 적절한 인용이다. 그를 탓할 생각은 없다. 문제는 실제 그런 일이 벌어지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정치판이다. 정치가 꼭 그런 식으로 승부를 갈라야 옳은가, 좀 더 나은 방법은 없는가 등의 물음이 도지기 때문이다.

‘차도살인’을 담고 있는 삼십육계의 정신세계는 가혹하다. 제 이익을 취하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일까지 서슴지 않으니까 그렇다. 동양의 병법이라는 것이 대개 비슷하다. 남을 죽이지 못하면 제가 죽는다. 그런 병법이 좁고 어두운 곳을 흘러 마침내 작은 웅덩이에 고인 형태가 삼십육계다.

현실의 이익을 얻기 위해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는 정신세계다. 동양의 병법은 2500년 전 손자(孫子)의 <손자병법(孫子兵法)>에서 정연한 체계성을 획득했다. 그러나 약 2000년이 흘러 삼십육계의 낮고 음습한 ‘잔꾀’로 퇴화했다. 논리가 정연한, 싸움에 관한 긴장감 넘치는 관찰과 사색이 그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어두운 꾀로 좁아진 형국이다.

삼십육계는 그나마 좋게 말해서 ‘꾀’다. 어떤 이는 남을 꺾어 제 자신의 뜻을 이루는 ‘지혜’로 포장한다. 그러나 과도한 치장이다. 그 내용은 잔인하고 야만적이랄 수 있는 사술(詐術)이며, 사술(邪術)이다. 그런 정신세계의 소유자가 꾸준히 보이는 태도는 그치지 않는 기만, 유혹, 트릭, 착취, 편법, 눈가림이다. 아울러 그 속내의 핵심은 거짓이요 위선이다.

언론의 분석이 맞는다면, 오늘날의 우리 정치판은 동양의 정신세계가 보였던 가장 협애한 길로의 퇴행에 이어 마침내 극히 저열한 지경에 봉착한 셈이다. 대의(大義)와 명분(名分)은 저버린 채 눈앞의 조그만 이익만을 늘 탐하는 형국이다.

그러나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라서 진짜 문제다. 늘 그래왔다. 모른 척 했을 뿐이지 우리 정치판은 어제도 오늘도 삼십육계라는 잔꾀의 충실한 집행자다. 그래서 정치판이 남기는 뒷맛은 늘 개운치 않다. ‘원래 그러려니~’ 끌탕을 치고 웃어넘기면 그만일지 모른다. 그래도 늘 섭섭하다. ‘선량(選良)’이라는 그럴 듯한 포장 뒤에 숨은 저들이 나를 줄곧 속이면서 조롱까지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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