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지훈 기자
  • 입력 2020.04.04 16:40

중소 사업주, 최대 1만달러 빌릴 수 있을 뿐…적자 나도 나중에 못 구할까봐 해고 못해

(사진제공=앤서니 킴)
흑당버블티 가게인 타이거 슈가는 코로나 사태 초기 미국 텍사스 북부에 처음 생길 때만 하더라도 줄서서 사가는 곳이었으나 3일(현지시간) 오후 대기줄이 없다. 교민 앤서니 김 씨는 "개점 후 2주 정도 지났을 때 방문했지만 구매까지 2시간 기다렸다"고 말했다. (사진제공=앤서니 킴)

[뉴스웍스=박지훈 기자]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한 후부터 한인들은 정말 고통 받고 있어요. 불법체류자 단속에 따른 인력난으로 한 번, 코로나19 사태로 두 번 울고 있죠".

미국 텍사스주에 거주하는 한인(韓人) 앤서니 김씨는 미 정부가 감염병 대처에 최선을 다해도 사망자가 24만명 발생할 수 있다는 뉴스를 보고 이처럼 말했다.

미국은 코로나19 환자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가다. 누적 확진자 수는 3월 26일(현지시간) 8만명을 넘겨 중국과 이탈리아를 제친 후 일주일 만에 20만명을 돌파했다.

인명피해뿐만 아니라 경제적 충격도 상당할 전망이다. 사실상 모든 주에서 생존에 필수적이지 않은 사업이 강제 휴업 상태에 들어간 가운데 지난 3월 22~28일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660만건을 기록했다.

미국 정치권은 지난달 말 2조2000억달러(2700조원) 규모의 경기부양 자금을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대통령 서명을 거쳐 공급하고 있다. 케어법(Cares Act)이라 이름 붙인 부양책에 따르면 정부는 ▲일회성 수당 성인 1인당 1200달러(148만원) ▲대기업 대출 5000억달러(615조원) ▲중소기업 대출 및 보조금 3770억달러(464조원) 등을 지원한다. 

한국에서는 케어법이 이른바 '천조국(千兆國)'이라는 명성에 걸맞는 규모라고 보고 있으나 한인들은 겨우 한 달 버틸 수 있는 수준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중소사업체를 운영하는 한인 사업주라면 미국 중소기업청(Small Business Administration) 홈페이지에서 최대 1만달러(1230만원) 빌릴 수 있는 'SBA론'을 신청할 수 있다. 명목상 대출금리는 존재하지만 직원 급여, 사업 운영자금으로 쓰면 상환할 필요 없다.

텍사스주 갈랜드시에서 중고차 판매업체 사업을 하는 앤서니 김씨는 지난달 코로나 사태로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 한 달간 영업을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임대료 2500달러, 고정 마케팅비 2400달러, 기타 지출비용 300달러, 직원 4인 월급 1만2000달러 등 고정비용으로 1만7200달러(2117만원)를 지출했다.

김 씨는 "최대 대출한도가 1만달러인데, 이를 받아도 직원 4명의 월급을 주기에 모자라다"며 "게다가 임직원이 400명이더라도 중소기업 취급 받는 미국에서 우리 같은 작은 업체는 대출이 1000달러(123만원)라도 나오면 다행"이라고 하소연했다. 정부가 SBA 대출 신청 후 3~7일 내로 지급하겠다고 장담했으나 실제 언제 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게 김 씨의 생각이다.

한국처럼 '착한 임대료 운동'과 같은 지원은 없냐는 질문에는 "미국 랜로드(건물주)는 임차인의 상황이 어렵다고 돈을 안 받는 자비를 보여주지 않는다"며 "당장 버는 돈이 없으면 임대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법이 있긴 하나 면제를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내야 한다"고 답했다.

경영이 어렵다고 직원을 당장 해고하기도 어렵다. 최근 2주간 실업수당 청구 건수가 1000만건에 달한다는 정부 발표와 동떨어진 이야기가 한인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소규모 운송업체를 운영하는 한인 A씨는 "미국에서 작은 사업체를 운영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인력난"이라며 "지금 힘들다고 직원을 자르면 나중에 언제 구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한인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위대한 미국'을 재건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어 당선된 후 불법체류자를 대거 내쫓았을 때 직격탄을 맞았다. B씨는 "트럼프 집권기에 어렵게 뽑아 열심히 가르친 직원을 그냥 내보내기 어렵다"며 "한국에서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한인 청년들은 교육수준이 높아 대도시로 나가고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임금 수준의 히스패닉들은 트럼프가 이미 많이 내쫓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미국 경제의 대부분이 감염병 사태로 멈춘 가운데서도 한인 커뮤니티에서는 구인글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물론 사태 이전보다는 줄었지만 인력난이 워낙 심각해 경제위기에 준하는 현 상황에도 사람을 구하려는 노력이 따른다.

초밥집을 운영하는 한인 B씨는 "한인들은 함께 아메리칸 드림을 쫓아 미국으로 들어온 히스패닉들과 함께 일하면서 자리 잡고 번창했지만 지금은 사람 한 명 구하는 것도 어려워 사업을 키우지 못하고 서민 수준으로 주저앉고 있다"고 설명했다.

B씨도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외부활동 감소로 매출이 10% 수준으로 떨어졌다. 평소 매출의 30%인 본전도 못 하고 있는 셈이다. B씨는 "그래도 지금 테이크아웃 방식으로 장사하는 이유는 그나마 적자를 줄여보려는 것"이라며 "빚더미에 허덕여 죽으나 병에 걸려 죽으나 똑같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정부가 코로나19 확산에 적절히 대응하고 있다는 소식이 한인사회에도 퍼졌으나 '한국에 돌아갈까'라는 말은 그저 '한 번 해본 말' 수준에 불과하다.

김 씨는 "미국 생활이 어려워도 한인들은 한국에 절대 안 돌아가는 이유는 간단하다. 누가 '돌아갈까'라고 하면 '가서 뭐 먹고 살아'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저렇게 지지리 똑똑한 애들(한국사람)도 백수로 전전긍긍하는 나라에서 우리 같이 많이 못 배운 사람들(한인)이 어떻게 한국에 살겠냐"며 자조적으로 웃었다.

텍사스주 캐롤턴시 소재 마트는 평소 사람이 붐비지만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진 후 방문객이 드물다. (사진제공=앤서니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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