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지훈 기자
  • 입력 2020.06.20 12:00

4대 은행, 상반기 100곳 이상 문 닫아…근무처·승진 기회 줄어
영업점 최소 하나, 상반기 폐점은 최다…2년간 행원B 200명 감축

서울 중구 소재 하나은행의 외국인 특화점포 모습. 직원과 고객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고 평소와 달리 한가하다. (사진=박지훈 기자)
서울 중구 소재 하나은행 영업점 창구. (사진=박지훈 기자)

[뉴스웍스=박지훈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탄력이 붙은 디지털 전환에 은행권 '2등 정규직'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시중은행들이 사태 이전보다 디지털 역량을 강화하고 영업점을 줄이면서 이들이 설 곳이 줄어든 것이다.

하나은행은 지난 15일 보도자료를 통해 은행 측의 2등 정규직(행원B)에 대한 처우 개선을 촉구했다. 

이른바 2등 정규직은 특성화고교 혹은 보훈 전형으로 입행한 행원으로 일반 대졸공채로 들어온 행원보다 직급상 한단계 낮다. 임금 수준이 낮고 여성이 절대 다수를 이루고 있다. 10년을 근무해도 연봉이 대졸 행원 초봉과 비슷하다는 말도 나온다.

하나은행은 행원B에 대한 처우 개선을 위해 근속년수 5년 이상 등의 자격 획득시 3년 이내 시험을 거쳐 행원A로 승진하는 제도를 운영 중이나, 노조 측은 은행이 제도 취지와 다르게 시험 난이도를 크게 높여 노골적인 직급 차별, 남녀 차별을 시행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2등 정규직 문제는 비단 하나은행만의 일이 아니다. 국민은행은 하나은행 행원B와 같은 L0직급을 운영 중이며 신한은행은 RS직급, 우리은행은 개인금융서비스직군이라는 이름으로 쓰고 있다.

2019년 1월 국민은행 파업의 원인 중 하나는 L0직급 경력 문제였다. 국민은행은 L0 직원의 직급 승진시 L0 근무경력 1년당 3개월만 인정했고 노조는 보다 대폭적인 경력 인정을 요구했다. 파업 사태를 끝낸 국민은행 노사는 그해 6월 인사제도TFT를 출범하고 L0의 경력 산정 문제 등을 논의하고 있다. 하지만 관계자에 따르면 TFT는 현재 운영 중이나 구체적인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과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도 지난해 8월 일반정규직과 2등 정규직으로 대표되는 저임금직급 간 임금격차 축소를 위한 세부 방안을 마련키로 했으나 아직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로 평소보다 2배 빠른 영업점 폐쇄

문제는 코로나19에 따른 디지털화 심화로 2등 정규직에 대한 처우가 개선되기는커녕 악화될 위험이 크다는 점이다. 이들이 근무하는 개인고객 방문 중심의 영업점이 빠르게 문을 닫고 있기 때문이다.

4대(신한·KB국민·하나·우리)은행에 따르면 이들 은행이 올해 1월부터 6월 중순까지 폐쇄한 영업점 수는 모두 106곳이다. 통상 4대 은행의 영업점 수가 최근 10년간 매해 100~150곳씩 줄었는데, 올해는 상반기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폐점 수가 100곳을 넘겼다.

소재지 주민의 생활수준이 높고 낮음을 떠나 개인고객 비중이 높은 영업점부터 폐점 대상이 됐다. 신설 영업점은 대학가나 신도시 시 내에 위치했다.

은행권 2등 정규직은 우리은행의 개인금융서비스직군이란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개인고객으로부터의 수신업무를 주로 담당하기 때문에 대규모 점포 폐쇄 흐름 속에 다른 직군 종사자보다 지위가 위태로운 상태다.

A은행 관계자는 “은행업계에 있어 코로나19라 할 수 있는 인터넷은행이 확장하면서 영업점 수가 크게 줄었는데, 이젠 코로나 사태로 인한 디지털 확산이 이 같은 경향을 확대하고 있다”며 “비(非) 공채 행원의 입지가 축소된 만큼 이들의 생존 경쟁 또한 한층 더 심화됐다”고 설명했다.

B은행 관계자는 “생활수준이 높은 판교나 강남에 있는 영업점도 문을 닫는 추세다”라며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은행들은 폐점을 추진하기 좋은 대의명분을 갖게 됐다. 코로나 때문에 저금리로 대출을 내주어야 하는 상황이라 수익성 유지를 위한 점포 정리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하나은행 2등 정규직, 승진 어려움 가장 클 듯

그동안 업계는 영업점 감축으로 2등 정규직의 입지가 가장 크게 줄어들 곳은 국민은행이라고 생각해왔다. 국내 최다 영업망을 가진 국민은행이 가장 많은 2등 정규직 직원을 데리고 있어서다. 

국민은행은 2018년 9월 기준 2등 정규직이 2593명으로 체급이 비슷한 신한은행(2376)보다 200명 이상 많다. 4대 은행 중 2등 정규직이 가장 적은 하나은행(1955명)보다는 무려 600명 많다.

최근 동향을 보면 하나은행 2등 정규직의 승진 어려움이 가장 클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상반기 폐쇄된 영업점 수가 가장 많은 곳이 하나은행(50곳)이기 때문이다. 국민은행은 37곳으로 두 번째였고 이어 우리은행(15곳), 신한은행(4곳) 순이었다.

C은행 직원은 "이제 예적금뿐만 아니라 환전 역시 대부분 비대면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비공채 행원들의 역할은 축소되면서 직급 승진의 기회는 줄고 있고 퇴사한 행원B도 매우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재 하나은행의 행원B 직원 수는 1600여명으로 2년 전보다 200명 가량 감축됐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