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다윗 기자
  • 입력 2020.07.12 13:05

불법보조금 지급하는 온·오프라인 판매처 '성지' 취급

일명 '성지'라 불리는 신도림 휴대폰 집단 상가. (사진=전다윗 기자)

[뉴스웍스=전다윗 기자] "휴대폰 싸게 팔았다고 과징금 500억원을 부과하는 나라." 

지난 8일 방송통신위원회가 불법보조금을 지급한 이동통신 3사에 과징금 512억원을 부과했다는 언론보도에 달린 댓글 내용이다. 해당 댓글은 수백개의 공감을 받고 댓글창 최상단에 올랐다. 관련 보도들에도 네티즌들은 비슷한 내용의 댓글을 달았다.

취지는 같았다.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일명 단통법이 유명무실하다는 것. 

◆도입 6년 차 단통법, 유명무실…불법보조금 여전

단통법은 휴대폰 보조금이 지역·경로·시점 등에 따라 차등 지급되는 경우를 없애고자 지난 2014년 도입됐다. 단통법에 따라 이통사는 정해진 공시지원금의 최대 15% 내에서만 휴대폰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다. 아울러 이통사는 홈페이지와 대리점·판매점에 단말기별 보조금 규모 등을 공시해야 한다. 

단통법 시행 전 이통사들은 가입자를 유치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고액의 휴대폰 보조금을 지급해 왔다. 단통법은 이러한 휴대폰 보조금의 상한선을 정해 휴대폰 보조금 '출혈 경쟁'을 막는 역할을 한다. 정부는 이통사의 마케팅 비용을 낮추면 그만큼 이용자 통신요금이 인하될 것으로 봤다. 

이런 기대는 달리 시장에서의 평가는 나빴다. 무엇보다 단통법이 시장의 자유로운 경쟁을 제한한다는 지적이 쏟아져 나왔다. 이통사 간 가격 경쟁이 사라져 휴대폰을 싸게 구입할 방법이 없어졌다는 소비자들의 볼멘소리가 늘었다. 과거에는 정보가 없는 일부 소비자들만 비싼 요금에 휴대폰을 구입했다면, 단통법 이후로는 모든 소비자가 비싼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통사의 줄어든 마케팅 비용이 통신요금 인하로 이어질 것이란 정부의 발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실질적인 가계통신비 절감 효과는 없다'는 게 정부·업계·시민단체 등 이해관계자의 공통적 인식이다. 특히 최근 도입된 5G 요금제는 기존 LTE 요금제보다 2~3만원가량 비싸져 부담이 늘었다.  

휴대폰 불법보조금을 지급하는 대리점, 일명 '성지'의 위치를 공유하는 게시글들. (사진=스마트폰 커뮤니티 '알고사' 캡처)
휴대폰 불법보조금을 지급하는 대리점, 일명 '성지'의 위치를 공유하는 게시글들. (사진=스마트폰 커뮤니티 '알고사' 캡처)

심지어 '불법보조금 억제'라는 목표도 사실상 지키지 못하고 있다. 도입 후 약 6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공짜폰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과거와 달라진 건 더욱 '음지화' 됐다는 점이다.

불법보조금을 지급하는 온·오프라인 판매처는 일명 '성지'라 불리며 공유된다. 이로 인해 보조금 차등 지급 문제는 더욱 심화됐다. 정보가 없는 소비자는 수십만원을 지불해 휴대폰을 구입하는 '호갱(호구+고객)'이 되지만, 불법보조금 관련 정보가 있는 소비자는 공짜로 휴대폰을 산 뒤 '차비' 명목으로 수십만원을 현금으로 받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강조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란 다짐도 단통법 앞에선 무력했다.

◆'5G 때문에'…정부 단통법 규제 미적지근

단통법 개정을 추진 중인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 협의회'는 지난 10일 그간 논의해 온 단통법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협의회는 지난 2월부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 주도로 통신사, 유통협회, 시민단체, 전문가 등이 참여해 단통법 개선 방향을 논의해 왔다. 

협의회는 단통법 개정 방안으로 ▲공시지원금 규제 완화 ▲공시지원금 공시 기간 기존 7일에서 3일로 단축 ▲현행 공시지원금의 15% 수준인 추가지원금 규모 상향 ▲판매장려금 규제 등을 제시했으나, 합의된 내용은 아니었다. 

협의회 내 이통사들은 해당 안건 대부분에 반대의견을 피력했다. 이미 단통법으로 마케팅 비용은 상당히 줄었고, 각 사 점유율은 안정적인 상태로 굳어졌다. 통신사 간 가격 경쟁은 사라진 지 오래다. 이통 3사의 독과점 구조를 깨고자 정책사업으로 추진된 '알뜰폰'도 이통 3사와의 경쟁에 밀려 맥을 못추고 있다. 이통 3사의 알뜰폰 점유율이 35%에 달하는 데다, 최근 KT 스카이라이프도 알뜰폰 시장 진출을 타진한 상태다.

이통사 입장에선 단통법이 현 상태로 남아준다면 유리한 상황이다. '단통법을 손봐 가격 경쟁을 부활시키자'는 의견이 달갑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결국 입장 차이만 확인하고 공은 정부로 넘어간 셈이 됐지만, 정부는 애매한 태도를 취하는 중이다.

문제는 5G다. 정부의 목표는 5G 산업 활성화인데, 단통법에 따라 강력한 단속·처벌에 나선다면 도입 초기인 5G가 난항을 겪을 우려가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인 셈이다. 

지난 8일 방통위가 불법보조금을 지급한 이통 3사에 '솜방망이' 과징금을 부과한 이유도 여기 있다. 방통위는 역대 최대 감경률(45%)을 적용해 업계 예상치보다 200억원가량 낮은 과징금(512억원)을 부과했다.

'봐주기 논란'은 이전에도 있었다. 방통위는 지난해 이통 3사의 5G 불법보조금 지급을 5회 이상 적발했지만, 시정명령만 내렸다. 단말기 유통법에 따르면 방통위는 불법보조금 등 위반사항이 3회 이상 적발된 업체의 신규 영업을 3개월 금지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참여연대는 "방통위는 통신사가 불법 영업으로 얻은 수익에 준하는 과징금 처분을 내려 다시는 불법보조금 영업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아울러 통신사와 제조사가 지급하는 마케팅비를 투명하게 밝히고 비공식적인 마케팅 출혈 경쟁을 줄여 그만큼 가계통신비를 인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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