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고종관 기자
  • 입력 2020.09.29 12:12

세브란스 의료진, 식도·기관지 손상돼 생명 위중한 고난도 수술 성공

회복된 남수단 글로리아 간디와 의료진이 함께 포즈를 취했다.
박성용(뒷줄부터 시계방향으로) 교수와 김경원 교수, 글로리아와 간디 씨.

[뉴스웍스=고종관 기자] 커다란 쇳조각을 삼켜 생사를 예측하기 힘들던 남수단 어린이가 국내 의료진의 도움으로 생명을 구해 화제다.

주인공은 남수단의 글로리아 간디(여아)로 이제 4살이다. 코로나19로 하늘길마저 닫힌 5월, 세브란스병원 초청으로 극적으로 한국을 방문해 수술을 받았다.

당시 간디의 상태는 매우 위중했다. 이미 식도를 뚫고 나온 2.5㎝ 쇳조각이 기관지를 뚫고 대동맥궁 근처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의료진조차도 살아있는 게 기적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아이가 쇳조각을 삼키고 가슴 통증을 호소한 것은 지난해 7월이다. 이후 인근 병원에서 X선 검사결과 이물질이 발견됐지만 수술을 할 만한 의료기관은 없었다.

집안 형편도 좋지 않아 치료를 포기한 가족에게 손을 내민 사람들은 이웃과 교회 성도들이었다. 항공료와 수술비 12만파운드(약 920달러)와 1000달러를 마련해 수단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곳 병원에서 수술에 실패하면서 절망은 깊어졌다. 오히려 글로리아의 오른쪽 옆구리에는 커다란 수술자국만 남겼다.

이제 손에 남은 것은 200달러가 전부였다. 하지만 아빠는 치료를 포기하지 않고 아이를 데리고 이집트로 향했다. 버스로 이틀을 달려 도착한 이집트 병원에서 아빠는 쇳조각이 식도를 뚫고 나와 수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의료비도 많이 들고, 수술에 자신감을 보이질 않았다.

돌아가기엔 아이의 병이 깊어져 갔다. 두 달간 친척집에 머물던 두 사람은 우연찮게 한국인 선교사 얘기를 듣고 그를 찾았다. 그와 함께 이집트 병원들을 전전했지만 모두 머리를 저었다. 병이 너무 깊어 수술이 어렵다는 게 이유였다.

이때 기적처럼 한국으로부터 구원의 손길이 닿았다. 문제는 코로나19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 이번에는 세브란스병원이 바빠졌다. 공항이 폐쇄될 가능성이 있어 최대한 빨리 입국할 수 있도록 서류를 만들어 한국대사관을 찾은 것이다. 글로리아의 상태를 확인한 이집트 한국대사관에서도 비자발급을 서둘렀다. 3월 25일 한국에 도착하는 항공권도 예약했다.

하지만 복병이 다시 나타났다. 출국 이틀 전 이집트 정부에서 공항을 폐쇄하고, 한국 정부도 모든 단기 입국비자를 취소한 것이다.

다시 지루한 한 달이 지나면서 이집트 한국대사관이 취소된 비자를 다시 발급했다. 부녀는 급기야 한국대사관과 이집트 한인회에서 마련한 전세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우연찮게도 이들이 한국 땅을 밟은 날은 5월5일 어린이날이었다.

의료진은 쇳조각이 정확히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알기위해 AI기업 코어라인소프트의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CT결과를 3차원으로 재건해 3D 프린팅으로 재현했다. 진단결과, 쇳조각은 식도를 뚫고 기관지를 밀고 들어가 대동맥궁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었다.

수술은 쉽지 않을 듯 했다. 자칫 대동맥 파열로 이어질 수 있어서였다. 1년 가까이 몸 안에 있던 쇳조각 주위의 염증도 수술을 어렵게 했다. 아이의 상태는 호흡곤란에 식사조차도 불가능했다.

집도는 흉부외과 박성용 교수가 맡았고, 영상의학과와 소아호흡기알레르기과, 소아외과, 소아심장혈외과 등 관련과 의료진이 협진했다. 모든 위험한 상황을 가정해 수술계획을 세웠다. 박 교수는 "한 번의 수술로 쇳조각이 제거되고, 구조물 손상이 완전히 복구될 가능성은 50% 미만이었다"고 추후 밝혔다.

박 교수의 수술은 일사천리 진행됐다. 좌측 개흉술을 통해 주기관지를 절개하고, 대동맥을 비켜 손상된 조직에서 쇳조각을 무사히 제거했다. 드러난 쇳조각은 나사나 볼트를 조일 때 사용하는 와셔(washer)였다. 쇳조각이 식도를 뚫고 나와 주기관지 뒷벽을 완전히 녹였고, 이로 인해 좌측 기관지 대부분이 손상돼 기관지 입구가 좁아진 상태였다.

수술로 제거된 쇳조각. 너트를 이용해 목걸이로 만든 것으로 추측된다.
수술로 제거된 쇳조각. 너트를 이용해 목걸이로 만든 것으로 추측된다.

박 교수는 마지막으로 원상복구가 불가능한 좌측 기관지와 식도와 기관지 사이의 5㎜ 누공(瘻孔)을 봉합했다. 하지만 수술 후 누공 완전히 아물지 않아 음식물이 기관지로 넘어가 반복적으로 흡인이 일어났다. 여전히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박 교수는 다시 2차 수술에 들어갔다. 여기에 소아외과 호인걸 교수가 협업해 기관지 뒷벽을 재건했다. 누공은 기관지 사이 근육을 사용해 봉합하고, 잘린 2㎝ 길이의 식도는 당겨서 이어 붙였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소아호흡기알레르기과 김경원 교수는 “그동안 쇳조각에 눌려 녹아버린 좌측 기관지가 좁고 폐가 약해진 상태였지만 지금은 안정을 찾으면서 모든 장기가 호전되고, 음식도 충분히 섭취할 정도로 상태가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이후 글로리아는 급속히 회복돼 수술 2주 뒤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해졌다.

박성용 교수는 “아이가 한국에 온 것 자체가 기적”이라며 "아이를 치료하기 위한 아버지의 헌신과 선교사 등 이웃, 그리고 의료진의 노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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