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문병도 기자
  • 입력 2020.10.01 09:41

회전 용매로 손쉽게 합성 제어 가능…페나세틴·딜록사니드 추출 성공

서로 다른 용매가 채워진 회전하는 원통 (사진제공=과학기술정보통신부)<br>
서로 다른 용매가 채워진 회전하는 원통 (사진제공=과학기술정보통신부)

[뉴스웍스=문병도 기자] 기초과학연구원(IBS) 첨단연성물질 연구단 바르토슈 그쥐보프스키 그룹리더(UNIST 특훈교수) 연구팀은 하나의 반응 용기에서 여러 화학 공정을 손쉽게 처리할 수 있는 새로운 화학 합성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1일 밝혔다.

연구진은 서로 섞이지 않는 용액들이 밀도 순서대로 쌓이는 것에 착안, 용매 층별로 화학 합성을 조절하는 회전하는 원통 시스템을 고안했다.

원통이 빠르게 돌 경우 원심력 때문에 밀도가 높은 액체가 바깥쪽으로 쏠린다. 이를 이용하면 용매들을 시험관처럼 사용해 반응물을 이동·분리시키고, 화학반응을 순차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이는 기존 화학합성 과정을 크게 단순화할 수 있어 화학 산업에서 희귀금속 추출과 다양한 화합물을 합성하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통증과 발열 완화제로 널리 쓰였던 페나세틴을 회전하는 용매 층에서 합성.(사진제공=과학기술정보통신부)

화합물 합성 과정은 석유화학공장처럼 특정 물질에 맞춰진 대형 공정이 아니라면 손으로 한 단계씩 진행해야 하므로 생산 시간과 생산량에 한계가 있었다.

그간 이러한 화학 합성을 일괄 처리하는 방법으로 크게 두 가지 시스템이 이용돼 왔다. 여러 플라스크와 밸브들을 기계적으로 연동하는 방법과 연속된 액체 흐름을 제어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 방법들은 자동화 장치를 제작하고 반응물의 흐름을 조절하는 데 고도의 공학 기술이 필요하다는 한계가 있었다.

연구진은 회전하는 용매로 손쉽게 합성을 제어하는 화학 시스템을 새롭게 고안, 반응물의 혼합·분리·추출을 하나의 반응 용기에서 정밀하게 조절할 수 있음을 규명했다. 개발한 시스템에서는 반응물이 확산을 통해 인접한 용매로 이동한다. 연구진은 원통 회전속도를 주기적으로 변화시켜 확산 속도를 높일 수 있었다. 또 용매 층 성질에 따라 인접한 용매를 분리하는 것도 가능했다. 

연구진은 이를 이용해 과거에 널리 사용했던 진통제 페나세틴과 항-아메바 약물인 딜록사니드 등 실제 의약 화합물들을 3~4단계에 걸쳐 합성하는데 성공했다. 아울러 혼합물에서 p-니트로벤조에이트 나트륨, 페닐알라닌 등의 특정 유기물을 추출했다. 이는 계면활성제로 대상 분자를 감싸서 분리하는 기존 추출방법과 달리 모든 과정이 용기 하나에서 이뤄져 합성 전 과정에 드는 시간을 크게 단축했다. 계면활성제는 세제의 주요 성분으로 물과 기름에 동시에 붙을 수 있는 분자이다.

연구진은 나아가 분자보다 큰 박테리아나 나노입자도 회전하는 용매에서 제어할 수 있음도 밝혀냈다.

이번 연구는 회전속도와 용매층의 두께를 회전 도중에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용매가 섞이는 시점과 속도를 조절하는 등 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제어도 가능하다. 매장량이 한정되었지만 여러 산업에서 널리 쓰이는 희귀 금속들을 추출하는데 쓰일 수 있다. 이같은 분리 과정들을 단순화하고 자동화한다면 산업적으로 높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연구진은 중소규모 화학 합성시간과 비용을 줄일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르토슈 그쥐보프스키  교수

공동 제1저자인 바르토슈 그쥐보프스키 교수는 “이번에 개발한 시스템은 합성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변수들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고 용매 층 사이 작용을 조절해 기존에 추출이 어려웠던 화합물까지 추출할 수 있다. 활용성이 무궁무진하다”고 전했다. 그쥐보프스키 교수는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를 지냈다. 2014년부터 UNIST 자연과학부 특훈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10월 1일자로 게재됐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