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윤주진기자
  • 입력 2016.04.13 18:00

남발한 포퓰리즘 공약, 이제 주워담아야 할 때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일정이 4월 13일 투표일을 맞아 함께 막을 내렸다. 단체로 무릎을 꿇고, 절을 하고, 눈물을 흘리는 정치인들의 면면도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된다. 이제는 각 당이 내건 공약들을 얼마나 잘 지킬 것인지 차분히 지켜볼 때가 왔다.

하지만 정치권이 공약 이행을 말하기에 앞서, 공약의 현실 가능성과 적합성을 다시 한 번 따져봐야 한다.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남발한 공약들은 ‘약속 파기’라는 비판을 감수하고서라도 폐기해야 한다. 치열한 선거를 치르는 정치인들 입에서 나오는 약속들은 자칫 국가와 국민에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반드시 정치권이 반성하고 재검토 해야 할 공약이 바로 ‘기업’ 관련 공약이다. 지역구민들의 표를 얻기 위해 각 당은 기업 유치 또는 활성화를 약속했지만 이른바 ‘관치 경제’라는 해묵은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비현실적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기업의 자율성을 해쳤다는 질타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 더민주 ‘삼성 미래차산업 광주유치’ 황당공약...'이에 질세라' 국민의당도 가세
총선을 7일 앞둔 지난 6일,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국회에서 ‘광주경제살리기 특별기자회견’을 열어 “광주에 삼성 미래차 산업을 유치해 5년간 2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사전에 삼성 측과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한 일종의 ‘폭탄 선언’이다. 

김대표가 발표한 내용은 이미 광주 서구을에 출마한 양향자 더민주 후보가 약속한 것이기도 하다. 국민의당과 호남에서 혈투를 벌이고 있는 더민주가, 최근 삼성전자가 광주에 있는 가전라인을 베트남으로 옮기기로 결정한 점을 활용해 선심성 공약을 던진 것이다. 

삼성전자는 즉각 “구체적 추진방안과 투자 계획은 검토한 바 없다”며 부인했다. 이제 막 사업성 여부를 계획하고 추진 방법을 고민하고 있는 삼성전자로서는 황당한 상황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전장산업은 초기 단계에 주로 R&D 관련 업무가 대부분이어서 김 대표가 약속한 5년간 2만개 일자리는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 이에 질세라 국민의당은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100만대 생산 공약을 내걸었다. 김 대표 기자회견 바로 다음날 기아차 광주공장을 찾은 천정배 후보가 양향자 후보에 맞불을 놓은 것이다.

그나마 현실성이 높고 실제 광주시와 시민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사안이어서 더민주의 삼성 미래차 유치보다는 낫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천 후보 역시 선심성 공약을 남발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기본적으로 생산량을 결정하는 고유 권한은 기업에 있고, 정치권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경영환경 조성뿐이라는 지적이다. 

◆ “해고 막아주겠다” 노동개혁 추진 정당 대표의 말 바꾸기
새누리당도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노동관련 규제 해소와 노동유연성 제고를 골자로 하는 노동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온 새누리당의 대표가 갑작스럽게 “쉬운 해고를 반드시 막아주겠다”고 약속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 11일 울산 동구를 찾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해당 지역구에 출마한 안효대 후보를 지원하면서 “쉬운해고를 반드시 막아주겠다”며 “현대중공업 구조조정도 막겠다”고 약속했다. 노동개혁 자체를 반대한다는 안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이다.

조선업이 불황에 빠지면서 현대중공업이 위치한 울산 동구는 더 이상 ‘여당 텃밭’일 수 없다는 위기감이 팽배하기 시작했고, 노조의 절대적인 지지를 등에 업은 무소속 김종훈 후보가 여당 후보를 위협하고 있어 어쩔 수 없이 노동개혁 철회를 외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여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하지만 당 대표까지 나서서 기존의 당론에 위배되는 발언을 한 것은 지나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고위원회의는 물론 교섭단체 대표 연설 등에서 수차례 노동개혁의 당위성을 주장해왔으며, “노조가 쇠파이프 안 휘둘렀으면 소득 3만불 됐을 것”이라고 하는 등 노조를 집중 비판해온 당사자가 바로 김 대표이기 때문이다. 

특정 기업을 지목해 구조조정을 막겠다고 한 것이 기업에 대한 정치권의 지나친 개입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세계적인 업종 불황으로 현대중공업은 9분기 연속 적자를 내고 있고,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업계 전반의 시각이다. 그런 사정을 외면한 채 표를 얻기 위해 구조조정을 막겠다고 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거세다. 

◆ 기업 자율성은 헌법적 가치...헌법기관인 국회의원부터 존중해야
여야 할 것 없이 정치권 모두가 기업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공약을 남발한 것을 두고 전문가들은 각성과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 헌법이 보장하는 가치인 기업의 자율성을, 한 명 한 명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침해하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기아자동차, 현대중공업 등 총선에서 언급된 기업들 모두 황당하다는 반응일 것”이라며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데에는 소극적인 정치권이 일방적으로 투자와 일자리를 늘리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현진권 자유경제원장은 “기업의 사업계획 수립과 비용-편익 분석 등은 치밀한 사전 검토와 수십번의 회의 끝에 결정되는 것”이라며 “정치권이 표 한 장, 의석수 한 개를 더 얻기 위해서 기업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은 곧 기업을 죽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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