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고종관 기자
  • 입력 2021.02.08 12:01

열차시간 늦춰 뇌사자 심장 대구에서 서울로 이송…수술 골든타임 지켜

은평성모병원 장기이식팀과 이식을 받은 환자 서씨.
은평성모병원 장기이식팀과 이식을 받은 환자 서민환 씨.

[뉴스웍스=고종관 기자] 열차 운행시간을 늦춰 적출된 심장을 이송하도록 도운 한국철도공사와 탑승객들의 미담이 뒤늦게 알려졌다. 생명이 꺼져가던 환자는 골든타임이 넘지 않는 시간에 심장을 이식받아 생명을 구했다.

지난 1월13일 오후 7시 무렵. 가톨릭의대 은평성모병원 장기이식센터 심장이식 적출팀은 대구 영남대병원에서 뇌사자가 기증한 심장을 적출했다. 이들에게 주어진 미션은 생명을 구할 수 있는 4시간 내에 적출한 심장을 이식수술팀에게 전달하는 것.

문제는 당일 저녁 중부지방의 기상 악화로 헬기이송이 갑자기 무산된 사실이다. 의료진이 선택할 수 있는 교통편은 동대구역에서 저녁 8시13분에 서울역으로 향하는 KTX가 유일했다. 의료진은 동대구역까지 앰뷸런스의 이송시간을 계산했다. 하지만 아무리 서둘러도 의료진이 열차 시간에 맞추기란 쉽지 않은 듯 했다.

병원측은 동대구역에 전화를 해 무조건 출발시간을 늦춰달라고 도움을 요청했다. 역으로서는 난감한 일이었다. 예정시간을 변경한다는 것은 철도 운행스케줄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승객들의 항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동대구역 담당자는 결단을 냈다. 지연될 열차 운행시간을 각 역사에 알리고, 승객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출발시간을 넘긴 상황에서 긴장을 하며 의료팀을 기다리던 역사 직원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예정시간 3분여 지났을 때 흰 가운을 입은 의료팀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나타난 것이다.

이 시각, 서울 은평성모병원 장기시식센터 의료진도 애가 타긴 마찬가지였다. 해당 열차를 놓치면 다음 KTX까지 1시간을 더 기다려야 하고, 이렇게 되면 수술 계획은 무산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열차에 몸을 실었다는 적출팀의 연락을 받은 이식팀은 곧이어 수술준비에 들어갔다.

장기적출팀이 병원에 도착한 것은 밤 10시20분. 대구에서 출발해 2시간30분 만에 뇌사자의 기증된 심장이 무사히 심장이식팀에 전달됐다. 의료진은 곧 수술에 들어가 다음날 오전 1시10경 무사히 이식과정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심장 수혜자인 서민환 씨는 서울 종로소방소에서 근무하는 현직 소방관이다. 2019년 10월 건강검진에서 확장성 심근병증을 진단받아 약물로 생명을 이어갔지만 지난해 12월 급격하게 상태가 나빠져 체외막산소공급(에크모, ECMO)에 생명을 의존하고 있었다.

그는 이식수술 후 7일간 중환자실을 거쳐 일반 병동으로 옮겨졌고, 20여일 만인 지난 5일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했다.

서씨는 “심장을 기증해주신 분과 최선을 다한 의료진은 물론 이송에 도움을 준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며 “이 분들의 뜻을 이어받아 소방대원으로서 소중한 생명을 구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전국 소방대원과 동료들은 수혈에 필요한 헌혈증 500여 장을 전달해 서씨의 투병을 도왔고, 서씨는 헌혈증을 다른 이식환자를 위해 사용해달라며 병원에 기증해 생명나눔과 실천에 의미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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