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윤현성 기자
  • 입력 2021.03.26 21:00

수학 영역, 문과생 과도하게 불리…"달리기 선수-수영선수 함께 경주시키는 셈"
선택형 수능 실패 사례 보지 않은 채 졸속 도입…수험생에게 정확한 정보 줘야

[뉴스웍스=윤현성 기자] 지난 23~25일 올해 첫 전국연합학력평가가 학년별로 분산되어 치러진 가운데 일각에서는 올해부터 시행되는 문·이과 통합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두고 "교육 당국이 과거의 실패 전례를 답습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올해 수능부터는 2015개정교육과정이 적용돼 국어·수학 영역에 공통+선택형 구조가 도입돼 인문계열(문과)와 자연계열(이과)의 구분이 사실상 없어진다. 이번 3월 학력평가는 새로운 체제하에 치러진 첫 공공기관 주관 모의고사였다.

새로운 체제의 수능에서 가장 큰 쟁점은 '독서'와 '문학'을 공통과목으로 하고 '화법과 작문', '언어와 매체' 중에서 한 과목을 선택해 치르게 되는 국어 영역과,  '수학Ⅰ'과 '수학Ⅱ'를 공통으로 '기하와 벡터', '미적분', '확률과 통계' 중에서 한 과목을 선택해야 하는 수학 영역이다.

이 두 영역에서는 인문계열(문과)과 자연계열(이과)의 구분 없이 공통과목은 모두 같은 조건에서 보게 되고, 선택과목 또한 같은 과목을 고른다면 계열 구분 없이 같이 응시하게 된다.

◆수학 영역, 문·이과 공통과목 배점 비율 74%…문·이과 유불리 너무 커

이와 관련, 입시업계는 특히 수학 영역에서 문·이과 구분을 없앤 것이 문과생들에게 너무 과도하게 불리한다고 지적했다.

입시업체 종로학원하늘교육은 선택과목은 애초에 문·이과생들 간 중복이 없을 것으로 예상됐으나, 문·이과생들이 함께 치르게 되는 공통과목이 선택과목에 비해 어렵게 출제되며 문과생들이 크게 불리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학 영역은 30문항 중 22문항이 문·이과 공통과목으로, 배점 비율로 보면 공통과목 74점·선택과목 26점으로 공통과목 비중이 절대적이다. 문과생들의 수학 실력은 이과생들보다 비교적 떨어질 수밖에 없고, 특히 상위권 문과생들의 경우에는 더욱 타격이 될 가능성이 크다.

영어 영역은 이미 절대 평가가 적용돼 변별력이 비교적 적고, 국어 영역 또한 수학 영역에 비해 변수가 적은 만큼 수학 공통과목 한 두 문제 차이로 최상위권 대학 및 학과 진학이 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수학 영역은 상황에 따라 문·이과 유불리가 수험생들이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의 극단적 상황까지도 발생할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임 대표는 "문·이과생들이 똑같은 수학 문제지로 보는 시험은 95학년도 이래로 단 한 차례도 없었는데, 평가원은 걱정없다고 얘기한다"며 "그런데 (3월 학평에서) 문과와 이과의 실력 차가 엄연히 드러난 게 현실이다. 상위권 수학 등급에서 문과생들의 수가 극단적으로 줄어드는 경우가 현실화되면 이 수능 체제가 장기화될 수 있을까라는 근본적 의문이 들 정도의 위험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문·이과 통합 수능, 달리기 선수-수영선수 함께 경주시키는 셈"

또 다른 입시업체 관계자는 이번 문·이과 통합 수능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내놓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국어가 선택과목을 '언어와 매체'(언매)랑 '화법과 작문'(화작)으로 나눴는데 이게 어떻게 부담을 줄여주는지 모르겠다"며 "괜히 점수 체계만 혼란을 주고 수험생들이 이번엔 화작을 택했다가 6월엔 언매로 바꾸고 본 수능 땐 또 화작으로 돌아올 수 있고 애들의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달리기 경주를 한다 치면 4%를 1등급으로 끊는다고만 하고 뛰는 인원이 대체 몇 명인지도 모르는 거고, 수학 영역의 경우는 아예 달리기 선수랑 수영 선수랑 같이 경주를 시키고 있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선택 과목별 응시 인원이 파악되지 않아 전체 인원의 퍼센트(%)에 따라 등급이 산출되는 현 수능 체제에서 수험생들이 본인들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할 수도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문·이과 통합 선택 과목 체제가 적용된 국어와 수학 영역은 시험 이튿날인 26일까지도 명확한 등급컷이 공개되지 않았다. 기존에는 모의고사와 수능 모두 아무리 늦어도 시험 당일 저녁까지는 등급컷이 공개됐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새로운 수능 체제가 얼마나 복잡한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주요 입시업체인 이투스, 대성, 진학사, 유웨이 등이 공개한 3월 전국연합학력평가 등급컷. 시험 이튿날인 26일 오후까지도 국어와 수학 영역의 원점수 등급컷은 공개되지 않은 상태다. (사진=네이버 등급컷 화면 캡처)

이에 대해 이 관계자는 "오죽하면 다른 예측기관·입시업체에서도 이번엔 (등급컷) 발표 안 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이 오기도 했었다"며 "기준도 다 다르고 구분도 안 되는데 아무 데서도 발표를 안 해주니 입시기관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또 발표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올해 같은 경우엔 체제가 완전히 바뀌었으면 바뀐대로 교육 당국에서 뭔가 브리핑을 해줬어야 하는 게 맞지 않나"고 덧붙였다.

◆8년 전 영어 수준별 수능 실패 잊었나…수험생에 정확한 정보 줘야

이 관계자는 이번 선택형 수능 체제가 과거의 실패 사례도 살펴보지 않은 채 중구난방, 졸속 행정으로 도입된 것 같다며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그는 "지난 2014학년도 수능을 돌이켜보면 그때 영어 영역을 쉬운 A, 어려운 B형 선택형으로 나눈 적이 있다. 그때도 중위권 이하 학생들이 A형을 얼만큼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어렵게 공부했던 애들이 피해가 커질 거라고 비판한 바 있다"며 "그 당시에도 평소 2등급 받던 애들이 3등급으로 떨어지는 등 중상위권 학생들의 피해가 현실화되면서 난리가 났고 영어 선택형 체제는 그해에만 실시하고 말아버렸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14학년도 수능에서는 국어·수학·영어 3개 영역에서 쉬운 A형과 어려운 B형으로 구분하고 문·이과 모두 어려운 B형 선택을 2개 이상 선택할 수 없도록 하는 선택형 수능이 시행된 바 있다. 당시 국어와 수학 영역의 경우에는 문과는 국어 B형, 이과는 수학 B형을 선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문제는 영어 영역이었다. 

당초 모든 수험생들이 함께 치르던 영어 영역이 난이도에 따라 2개 유형으로 나뉘면서 중위권 이하 학생들이 A형으로 대거 빠져나갔고, 상대평가라는 수능의 특성상 영어 B형을 선택했던 중상위권 학생들은 전체 응시자 수가 급감하면서 등급이 크게 하락하는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당시 도입됐던 영어 수준별 수능은 많은 비판과 함께 2014학년도 수능을 마지막으로 1년 만에 폐지됐고, 폐지 이후에도 '졸속 수능으로 인한 대참사', '수험생들을 실험 대상으로 쓴 건가'라며 빈축을 샀다.

이 관계자는 "시험의 룰과 정확한 정보를 주는 것이 중요한데 지금 교육 당국은 산출식에 의해 조정을 한다고만 하고 정확한 응시생 수 등에 대한 확답을 주지 않고 있다"며 "평가 기관에서 수험생 혼란을 줄일 수 있는 정확한 통계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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