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4.26 14:18
기른 누에로부터 실을 뽑는 장면이다. 실의 첫 가닥을 흔히 단서(端緖)로 부를 수 있다. 이를 잘 잡아야 실을 제대로 감을 수 있다. 일의 시작도 마찬가지다. 단서를 잡는 작업이 원칙의 부재, 이해의 엇갈림으로 흐트러지면 일을 크게 그르치는 법이다.

누에에서 실을 뽑을 때 거치는 몇 개의 과정이 있다. 우선 누에의 고치를 삶아야 한다. 누에가 지은 고치를 뜨거운 물에 넣은 뒤 실을 골라내는 작업이 핵심이다. 둘둘 말린 고치에서 명주실의 가닥을 잘 잡아내야 하는데, 이를 한자로는 索緖(색서)라고 적는다.

가닥을 잘 잡았으면 실에 붙어있는 잡티 등을 제거하는 일이 따른다. 그를 理緖(이서)라고 한다. 아울러 실 가닥을 합쳐서 좀 더 야무진 실로 뽑아내야 하는데, 그 작업이 集緖(집서)다. 실 가닥 잡아가는 일을 ‘찾아내다’의 새김인 索(색), 고루는 작업을 ‘다듬다’의 새김인 理(이), 얇고 여린 실 가닥을 합치는 작업을 ‘모으다’ 새김의 集(집)으로 각각 적었다. 그 뒤에 같은 글자 緖(서)를 붙였으니, 우리는 이 글자가 실 가닥 내지는 실의 줄기 등의 뜻을 지닌다고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사전적인 정의에서 이 글자를 설명하자면 ‘실마리’다. 뭉쳐 있는 실타래를 풀어갈 수 있는 실의 꼭지에 해당한다. 이 가닥을 잘 잡아 풀면 타래의 뭉침은 술술 풀어진다. 그래서 문장의 시작을 緖言(서언, 序言과 같다) 또는 緖論(서론), 싸움의 시작을 緖戰(서전)으로 적기도 한다. 사물과 현상 등을 풀어갈 때 앞과 뒤, 왼쪽과 오른쪽 등의 정해진 순서를 제대로 잡지 못하면 우리는 그런 사람을 “두서가 없다”라고 한다. 그 ‘두서’는 한자로 頭緖(두서)다. 이 역시 뭉쳐 있는 타래를 풀기 위한 실마리의 뜻이다. 일의 시작 또는 차례 등을 일컫는 맥락이다.

단서(端緖)도 우리가 자주 쓰는 단어다. 컴퓨터 체계 안에서 맨 끝을 차지하는 게 단말기(端末機)다. “용모 등이 단정하다”고 할 때 ‘단정’의 한자는 端正인데, 그렇게 반듯한 모양을 일컫는 것 외에 이 글자의 핵심적인 새김은 ‘끝’이다. 그러나 단순한 ‘끝’은 아니어서, 어딘가 톡 튀어 나와 있는 부분, 또는 아예 시작과 시초라는 새김도 묻어 있는 글자다.

따라서 단서(端緖)라고 하면 역시 엉킨 실타래를 풀어갈 수 있는 실마리의 한자식 표현이다. 누에의 고치를 풀어갈 때 시작 또는 끝에 해당하는 그 가닥을 잘 잡아야 엉킨 고치의 실을 풀어갈 수 있다. 그 단서를 잡아내지 못하면 엉킨 실타래는 칼로 끊지 않는 한 풀어갈 수 없는 법이다.

이제 구조조정이 큰 화두다. 개선을 넘어 개혁에 가까운 일인데, 이렇게 틀을 뜯어고치는 일에서는 순서를 잘 잡아가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옆에서 감놔라 배놔라 하는 사람에게 휘둘리면 아무런 소득 없이 일을 그르쳐 아까운 시간만 허비할 수 있다. 정치적인 논리를 철저히 배제하고 경제 외적인 흐름이 개입하는 일도 적극 막아야 한다.

마음은 뭉친 실처럼 갈래가 많아 그를 표현할 때 정서(情緖)라고 적기도 한다. 실타래처럼 서로 엉킨 생각 또는 그런 생각의 가닥이 思緖(사서), 우울한 마음이 愁緖(수서)다. 원칙을 튼튼하게 잡아 방향을 제대로 찾아가지 못하면 여러 가지 정서와 사서, 수서의 가닥이 엉키고 떠 엉켜 일을 그르친다. 구조조정에 나설 때 가장 피해야 할 상황이다.  

 

<한자 풀이>

端 (끝 단, 헐떡일 천, 홀 전): 끝. 가, 한계. 처음, 시초. 길이의 단위. 실마리, 일의 단서. 까닭, 원인. 막료. 예복. 조짐. 생각, 느낌. 등차, 등급.

緖 (실마리 서, 나머지 사): 실마리. 첫머리, 시초. 차례, 순서. 차례를 세워 선 줄. 계통, 줄기. 사업, 일. 나머지. 마음. 찾다. 나머지(사).

索 (찾을 색, 노 삭): 찾다. 더듬다. 동아줄, 노, 새끼(삭). 꼬다(삭). 헤어지다(삭). 쓸쓸하다 (삭). 다하다(삭).

 

<중국어&성어>

端绪(緖) duān xù: 단서. =头绪(頭緖) tóu xù =端倪 duān ní.

千头(頭)万绪(緖) qiān tóu wàn xù: 실마리가 너무 많아도 걱정이다. 천 갈래 만 갈래다. 일이 매우 복잡한 상황을 일컫는다.

蛛丝(絲)马(馬)迹 zhū sī mǎ jì: 해석은 몇 갈래가 있다. 우선은 거미줄(蛛絲)과 말 발자국(馬迹). 거미가 드리운 줄과 말이 남긴 발자국을 통해 거미와 말의 소재를 찾는다는 뜻. 어떤 일의 ‘흔적’을 이야기할 때 자주 쓰는 성어다. 말이 그냥 말(馬)이 아니라 부뚜막에 사는 곤충을 이른다는 해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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