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고종관 기자
  • 입력 2021.03.29 11:58

서울대병원 류지곤 교수팀, 맞춤식 약물 선택으로 생존기간 3배 이상 늘릴 것으로 기대

췌장암 모형도(서울대병원 제공)
췌장암 모형도(서울대병원 제공)

[뉴스웍스=고종관 기자] 국내 연구진이 췌장암의 예후를 알 수 있는 유전자 변이를 세계 최초로 찾아냈다. 이 변이 유전자를 보유한 환자는 특정 항암요법에 효과를 나타내 의료진이 치료방침을 결정하는데 매우 유용하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류지곤 교수팀은 2017~2019년 103명의 췌장암 환자를 대상으로 DNA 손상복구와 관련될 것으로 판단되는 123개 유전자를 탐색한 결과, ‘ERCC6’라는 유전자의 변이가 의미 있게 관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29일 발표했다.

췌장암은 진단받을 때 이미 80~85%의 환자가 수술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예후가 안좋은 암이다. 5년 생존율은 10% 정도. 따라서 수술이 불가능한 췌장암 환자의 예후를 예측하는 것은 치료 방침을 결정하는데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된다.

현재 췌장암 진단은 종양표지자로 단백질 CA19-9 수치를 확인한다. 그러나 이 방식은 정확하지 않다는 한계가 있다.

연구팀은 세침흡인검사를 통해 얻은 췌장암 조직에서 DNA를 추출해 전장엑솜시퀀싱 검사(whole exome sequencing)로 유전자를 분석했다.

그 결과, 예후 및 치료 반응성 예측에 유용한 ‘ERCC6’를 찾았다. 또 연구진은 DNA 손상 복구기전에 관여하는 이 유전자 변이가 있는 환자는 폴피리녹스 항암요법에 좋은 반응을 보인다는 것을 입증했다. 이렇게 치료 받은 환자는 무진행 생존기간이 23.5개월로 나쁜 유전자 변이를 가진 환자의 8.6개월에 비해 3배 이상 길었다.

현재 췌장암의 표준 항암치료는 크게 두 가지로 4종의 약제를 쓰는 폴피리녹스와 두 가지 약제를 쓰는 젬시타빈-아브락산 요법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중 어떤 것을 적용해야 할지 아직 뚜렷한 가이드라인이 없다.

다만, DNA 손상복구 유전자 중 하나인 ‘BRCA 돌연변이’가 있는 경우, 폴피리녹스 요법에 반응이 좋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BRCA 돌연변이는 전 세계 환자 중 약 5%이며, 우리나라 췌장암 환자에서는 빈도가 더 낮다.

이번 연구에서 확인한 ERCC6 유전자 변이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양인에서 변이 대립유전자 빈도가 약 40%로 아주 높은 편이다. 연구팀은 혈액 샘플을 이용한 후속 연구에서 ERCC6 유전자 변이가 있는 경우 폴피리녹스 요법에 좋은 반응성을 보일 지 검증할 계획이다.

류 교수는 “이번에 발견된 유전자 변이는 향후 간단한 혈액채취만으로도 어떤 항암화학요법을 먼저 시행할지 결정하는 중요한 바이오마커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번 연구는 국제학술지인 ‘Cancer’ 최근호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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