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고종관 기자
  • 입력 2021.04.12 18:52

과학적 근거 없이 접종나이 설정 나라마다 들쭉날쭉…새로운 논란거리 제공할 듯

노인병원에 근무하는 의료진이 코로나19 백신을 맞고 있다.
노인병원에 근무하는 의료진이 코로나19 백신을 맞고 있다.

[뉴스웍스=고종관 기자]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혈전생성 원인이 밝혀지면서 나이에 따른 접종기준이 어떤 과학적 근거에 의해 설정됐는지에 대한 논란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뉴잉글랜드의학저널(NEJM)은 독일과 노르웨이 연구팀이 백신 접종 후 혈전이 발생한 환자에게서 혈액응고 반응을 유발하는 특이한 항체를 찾아냈다고 9일(현지시간) 보고서를 통해 발표했다. 독일팀과 노르웨이 연구팀이 대상으로 삼은 환자는 각각 11명과 5명으로 이들은 모두 뇌졸중이나 혈관색전증을 일으킬 수 있는 혈전 유발 항체를 보유하고 있었다.

연구팀은 이 같은 현상이 그동안 추정됐던 ‘헤파린유도혈소판감소증(HIT)’이라는 희귀반응과 유사하다는 사실도 보고했다. 헤파린 복합체와 혈소판인자4(PF4)가 결합해 혈액을 뭉치도록 촉발한다는 것이다.

헤파린은 원래 혈전 생성을 막기 위해 투여하는 항응고 치료제다. 그런데 일부 환자에선 오히려 헤파린이 혈전을 만든다. 헤파린이 이들의 혈액 내에 있는 혈소판 4인자(PF4)와 결합하면 면역체계가 이를 이물질로 인식해 항체를 생성하고, 이렇게 만들어진 항체가 혈전증을 유도하는 것이다.

이 같은 헤파린유도혈소판감소증의 특징은 혈소판이 줄면서 혈전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정상적인 생리적 반응으로 보면 혈액이 응고하기 위해선 혈소판 수가 늘어나야 한다. 혈액이 혈관 밖으로 누출되면 혈소판이 활성화돼 응고인자와 함께 반응하며 혈액을 뭉치게 하기 때문이다. 방역당국이 백신의 부작용과 혈전생성의 인과관계를 파악할 때 혈소판 감소여부를 따지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혈전 생성 배경이 밝혀지면서 각국 정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그동안 각국의 보건당국은 백신접종 일정을 연장하는가 하면 접종 대상을 노인집단으로 제한하는 등 들쭉날쭉 혼선을 빚어왔다. 영국과 우리나라는 접종 나이의 기준을 30세로 정했지만, 독일은 60세 , 프랑스는 55세, 호주는 50세 이상에게 다른 백신을 맞도록 권장하고 있다. 과학적인 근거 없이 기존에 발생한 부작용 사례를 근거로 추정해 접종나이를 정한 것이다.

영국의 경우, 7일 현재 백신과 관련돼 조사를 하고 있는 뇌졸중 등 혈전사고는 79건이며, 이중 18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영국을 포함한 30개 유럽국에선 약 3400만 명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접종받았으며, 이중 혈액응고와 관련한 사례는 지금까지 222건으로 집계된다.

문제는 앞으로 접종대상에 대한 논란을 쉽게 가라앉히기 어려울 듯 보인다는 점이다.  미국 과학진흥협회가 발행하는 사이언스는 11일자(현지시간) 칼럼에서 이 같은 상황을 ‘위험한 저울질’로 표현한다. 일부 과학자들은 백신의 문제점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때 겪어야 하는 통증과 사망할 위험보다 상대적으로 낮아 부작용을 정당화하는데 어려움이 따른다고 강조한다.

한편에선 백신 접종량을 절반으로 줄이자는 의견도 내고 있다. 영국에서 실시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임상3상에서 소수의 사람들이 실수로 낮은 용량의 백신을 맞았는데 부작용도 적었다는 것이다.

사정은 이렇지만 유럽의약청(EMA)은 여전히 지금까지의 주장을 견지하고 있다. 특정 연령대로 제한하는 것도 권장하지 않는다. 접종으로 얻는 이득이 위험을 능가한다는 것이다. 영국의 한 통계학자는 20~29세 청년층이 백신으로 인한 심각한 위험에 처할 확률은 10만분의 1이지만 코로나19로 중환자실에 입원할 위험은 10만 명 중 0.8~6.9명에 이를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아스트라제네카의 백신이 싸고 저장하기 쉬워 저소득 및 중산층 국가에 더 많은 백신접종 기회를 준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국내의 한 면역학자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한 접종나이 설정은 과학적으로 근거가 빈약해 앞으로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며 “집단면역을 만들어야 하는 방역당국의 입장과 백신부작용을 우려하는 국민정서가 합의점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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